에버랜드 직원에서 관광 컨설턴트로, 김성주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지인이 연 돼지박물관에서 돼지를 키우며 산책하는 모습. [사진 김성주]
사회생활을 테마파크에서 시작했습니다. 삼성 에버랜드에 입사해 상품기획팀, 인사팀, 서비스아카데미, 경영혁신팀 등의 부서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어요. 직장생활이 힘들지 않고 즐거웠어요.
1994년 신입사원 시절 상품기획팀에서 일했을 당시 중국에서 판다 두 마리가 들어와서 판다 캐릭터 기념품을 개발하고 판매했는데, 그 판다 인형이 한 해에만 무려 100만개가 팔리기도 했었죠. 자랑 같지만 인사팀에 있을 때는 임직원 복리후생을 담당했는데 직원들에게 인기도 많았습니다. 삼성에서 가장 유쾌한 사원으로 뽑힌 적도 있어요.
사실 저는 원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지만 사회를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직장생활을 해봐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인 삼성 에버랜드에 입사해 16년을 근무했습니다. 16년을 지내고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 건 달인으로 유명한 코미디언 김병만 씨 때문입니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김병만 씨가 달인을 소개할 때 “지난 16년간 000을 하신 달인 김병만 선생”이어서 16년을 채웠어요. 농담 같은 진담입니다. 인사팀에서 근무할 당시 구조조정이 있어 50세가 안 되어 회사를 떠나는 선배를 보면서 나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일찍 하기도 했습니다.
에버랜드 정문에서 신입사원 시절 찍은 사진. [사진 김성주]
저는 지금 관광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관광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테마파크와 농촌관광이 제 전문분야라고 말할 수 있죠. 테마파크 분야에서는 기획과 설계, 운영, 자문까지 수행합니다. 기획과 운영까지 가능한 사람은 국내에 몇 명 없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국내에 이름 대면 알 만한 워터파크를 포함한 테마파크, 리조트에 저의 손길이 닿아 있죠. 지자체의 관광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농촌관광 분야에서는 농촌 마을 개발, 체험농장 개발, 6차산업 활성화 등에 대해 강의하고 컨설팅합니다. 최근 귀농·귀촌에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늘어 도시인들이 지역으로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도 연구하고 자문하고 있죠. 이러다 보니 사무실은 서울에 있어도 일주일에 나흘은 농촌에서 일해요. 이른바 반농반도(半農半都)의 생활을 하고 있죠. 덕분에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귀농·귀촌 칼럼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포근했던 대기업 간부의 삶을 뿌리치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두려웠고,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앞날이 캄캄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질렀지만 몇 년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00의 김성주’가 아닌 그저 인간 ‘김성주’라는 사람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사업은 역시 버티는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사업 초기에 매출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지만 심리적인 부담감은 여전했고, 그런 부담감을 떨쳐내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 탓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슬로우 빌리지’로 지었어요. 최종 목표는 느리게 사는 사람들만 모여서 마을을 만들어 사는 것입니다.
직장인에서 자영업자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신분이 바뀌고 생활 영역이 바뀌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인생은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많고 가볼 곳도 많고 안 먹어 본 것도 많은데, 그것을 모두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