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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밭일로 바쁘실 때죠?” 지난봄 도서관의 한국 역사 강의실에서 70대 어르신과 눈이 마주친 김에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그맘때쯤이었나, 큰 비닐봉지에 한가득 상추를 건네주셨던 기억이 새로워서였다. 그때는 중국 역사 강좌였는데, 밭일을 끝내고 오는 길이라며 잔뜩 가져온 상추를 몇 사람에게 나눠주셔서 감사히 받아먹었었다. “이제는 쬐금만 해요. 요새 밭에 들어가면 흙냄새와 함께 열기가 확 올라오는 게 밭일이 좀 힘들어야지.”

 

내가 속한 독서회 회원 가운데 한 분도 꽤 너른 텃밭을 일구고 사신다. “시간 나면 와서 파 좀 뽑아가요. 뽑을 새가 없어서 파가 그냥 버려질까 아깝네.” 좋아라고 답은 해놓고 결국 못 가고 말았다. 마트에서 그리 싱싱하지도 않은 파 네댓 줄기를 3천 원 가까이 주고 살 때면 밭에서 직접 뽑아 먹는 즐거움을 놓친 게 아쉽다. 하지만 씨 뿌려 키운 수고를 한 분의 아쉬움에 견줄 수 있을까. 지난해만도 상추며 미나리며 이것저것 주셔서 황공했는데 올해는 힘에 부치시나 보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여 거리에 텃밭 딸린 전원주택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하는 언니네와 퇴직한 선배 교수님 댁은 더 고달파 보인다. 텃밭 규모가 작지 않아서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봄엔 더한 듯하다. 남편분들이 밭일을 기꺼이 도맡다시피 하면서도 칠순과 팔순이 코앞인지라 녹록치 않아 한다는 얘길 듣는다. 듣는 것과 겪는 건 천지차일 터, 이따금 수확물을 선물 받는 나 같은 사람은 텃밭을 가꾸는 낭만과 무공해 채소를 먹는다는 즐거움이 앞선다. 땀 흘리는 고됨은 뒷전이기 십상이다.

 

“너두 한번 생각해봐”

 

그런데 홀로 사는 친구는 무슨 맘을 먹고 전원생활을 한다며 서울에서 리 단위의 시골로 이사를 갔담? 30여 년 직장생활을 끝내고 친구는 퇴직금을 쏟아 텃밭이 집 면적의 2배는 되는 전원주택을 지었다. 이미 친구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던 지인의 집 건너에 땅이 매물로 나오자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지난 겨울 친구가 새집에 들자마자 찾아갔다. 자가용으로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경기도란다. 하지만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마중 나온 친구의 차로 동네 끄트머리까지 깊숙이 들어가자니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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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 거실 창으로 보이는 뜰과 산자락의 나무들.

50평 규모의 2층 벽돌집은 친구의 취향대로 단순하고도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다. 천정이 높은 거실, 아일랜드 부엌, 낮은 뒷산자락과 닿아있어서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뜰, 집보다 면적이 2배는 됨직한 텃밭. 바깥일이 없던 철이라 친구가 외롭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돌아왔다. 봄이 되면서 다시 가보려고 카톡을 띄웠더니 친구의 답이 썰렁했다. 안부를 길게 물은 나와는 달리 답이 몇 글자에 불과했다. 외로운 나머지 혹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건 아닌가?

 

웬걸, 친구는 의욕에 차있었다. 오히려 넘치는 게 문제였다. 조금 높은 울타리 관목 밑까지 손보다가 그만 굴러 떨어진 바람에 매일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다니 말이다. “문자 그런 거 보내지 말고 통화로 해. 밭일하다가 흙 묻은 손으로 답 쓰기 어려워.” 답이 짧았던 이유였고, 밭일에 빠져있다는 얘기였다. 그새 뜰엔 어린나무들이며, 밭의 절반엔 묘목들이 줄줄이 서있어 놀라워했더니, 키우기가 쉽대서 일꾼을 불러 블루베리를 심은 거란다. 두서넛이 팀으로 다니는 일꾼의 일당이 1백만 원이요, 웬만한 정원수 또한 그 가격대라는 데 더 놀랐다.

 

친구는 멋모르고 촘촘히 뿌린 씨앗에서 나온 싹들을 솎아서 샐러드를 만들었다. 아직 쌈 채소로는 먹을 수 없었지만, 산에서 뜯어온 취와 두릅, 이웃이 줬다는 실파로 부친 파전으로도 점심상은 푸짐했다. 이사 온 후 가장 아쉬웠던 맛있는 빵도 이젠 직접 구워 먹는다며 내놓은 계피케이크는 디저트로 훌륭했다. 뜰에 마련한 널찍한 나무 탁자에 무공해 음식을 한상 차려 놓고 이웃한 지인 부부와 그들을 통해서 알게 된 이들과 느긋하게 즐기노라면 “이런 게 사는 거구나” 싶다면서 친구는 내 옆구리를 찔렀다. “너두 한번 생각해봐.”

 

 

느긋한 삶의 기쁨 추구 ‘킨포크’

 

그러잖아도 얼마 전부터 등장한 ‘킨포크’에 관심이 가긴 했다. 4년 전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한 남자의 블로그에서 시작된 킨포크는 작가·화가·농부·사진작가 등이 모여 만든 작은 모임의 이름이다. 이들은 텃밭에서 키워낸 것들로 ‘스트레스 없는 요리’를 만들어 함께 먹고 조리법을 공유하며 느긋한 삶을 추구했다. 그 이야기를 담은 잡지 ‘킨포크’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느긋한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대명사가 됐다. 사실 새로울 게 없는 것이, 텃밭을 가꿔 건강한 밥상을 차려 먹는 삶이 예전엔 당연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는 도시생활에 찌든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최고의 삶으로 여겨지면서 킨포크란 낯선 단어로 뜨고 있는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의 세계적인 장수마을 오기미촌 노인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장수의 비결로도 새삼 조명 받고 있다. 그러니 힘들어도 쉽사리 텃밭을 놓지 못하고들 있는가 보다. 더구나 친구는 여자 혼자서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어차피 늙어갈수록 여성 비중이 높아져서 고령 가구 넷 중 하나는 ‘여홀로’ 산다지 않는가. 애초 킨포크 모임처럼 ‘이웃사촌’이 멀리 있는 친지들보다 친구에겐 힘이 되어주고 있는 듯했다.

 

새 생활에 몸이 지치지 않을까, 걱정과는 달리 머리 아픈 게 사라지고, 잠을 푹 자게 됐고 친구의 전원생활 예찬은 끝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 경우는 친구처럼 일 저지르기가 쉽지는 않다. 가족과 함께 움직여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적어도 4가지는 살펴 노후 보금자리를 정하라는 전문가의 조언도 새겨봐야 한다. 첫째가 주택 소유나 임대, 유지 관리비 등의 경제성, 둘째는 의료와 여가, 시장, 교통 등의 지역사회 환경, 셋째는 각종 위기 상황에 대비한 가족과 친지, 이웃과의 거리, 넷째로 생활이 편리한 실내 구성이다.

 

한 은퇴연구소가 60대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40% 이상이 주거지를 옮길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건만 이것저것 생각할수록 어디로 갈지 마음먹기가 쉽지 않을 성싶다. 우선은 친구 집에 가는 것부터 차를 갖고 다니지 않는 나로선 큰맘을 먹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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