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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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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잡고 있다. 

  
세상이 어지간히도 달라지긴 하려는 모양이다. 안팎으로 이런저런 소식이 숨 가쁘게 들려오니 일희일비하기도 바쁘다. 아니, 그보다 당장 내 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려고  애쓰곤 한다. 밥벌이가 더 중요하고, 목표로 삼은 일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코앞에 닥쳐 있으니 거대담론에 휩쓸릴 여유가 없다. 
  
SNS엔 뉴스 하나 전해질 때마다 짧고 굵은 몇 마디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SNS가 피로를 양산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남북 관계에 급물살이 이어지고 미투 운동의 여파는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비밀촬영회 같은 듣도 보도 못하던 현장까지 알게 되는 요즘이다. 그런데 SNS 세상을 여기저기 쓱쓱 한참 넘겨봐도 진지한 성찰이나 전망보다는 마음껏 토해 놓은 감정만 넘쳐난다. 남의 집 쓰레기통이라도 뒤지다 온 듯 속이 메스꺼워진다. 


도덕적 잣대 들이대면 이야기의 메시지 놓쳐

자기화하지 못한 사유를 바탕으로 내뱉는 얄팍한 글 속에서 허우적대며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는 무슨 생각일까 궁금해진다. 이야기를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이나 가치관을 기준을 중심으로 이야기에 비판적인 잣대부터 들이대면 정작 그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놓치고 만다, 이야기 한 편을 다 읽고도 내게는 ‘이야기’가 아닌 ‘나’만 남아 있다. 고집부리고 있는 ‘나’ 말이다. 
  
‘도량 넓은 남편’이라는 이야기를 이 연재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자기가 집을 비운 사이 자기 부인이 옛 연인과 한방에 있는 현장을 덮치고도 그걸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현명하게 처리했기에 도량 넓은 남편이라 표현했다.  
  
이 이야기를 감상한 한 대학생 독자는 남편의 도량에 감동하기보다 무책임한 연인에게 분노를 표현했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사이라면 여자는 다른 곳에 시집가지 말았어야 했고, 남자는 여자를 지킬 수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혹시 그리움을 못 참아 재회했더라도 여자가 이미 결혼한 이상 그냥 보고 돌아왔어야지, 몇 날 며칠 찾아가 밤을 함께 보내면서 꼬리가 길어져 들키는 일 따위 없어야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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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상. [중앙포토]

  
이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덕적 기준을 내세워 이리저리 재단하고 평가하며 비판을 가하지만, 이야기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이야기를 잘못 해석했으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야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메시지대로만 의미를 기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야기의 발생에서부터 결말에 이르는 맥락을 잘 따라가다 보면 남편의 도량 넓음을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임을 쉽게 수용할 수 있다. 철없는 연인의 무책임한 태도만 걸고넘어진다면 이야기 감상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변이형을 낳는 구비설화

구비설화는 특히나 구술로 전승된다는 점에서 다양한 변이형을 낳는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구연자의 기억력, 이야기 구성 능력에 따라 이야기의 미시적 설정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나무꾼과 선녀’에서 나무꾼이 포수에게 쫓기던 짐승을 구해준 덕에 선녀를 배우자로 맞이할 수 있는 비법을 얻게 됐는데, 그 짐승이 노루이기도 하고 사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나무꾼이 도와준 짐승이 무엇인지를 묻는 독서퀴즈 질문은 세상 쓸데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꾼과 선녀’에 대해 수용자는 매우 폭력적인 서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내는 방법으로 결혼에 이르는 것은 선녀의 의사가 완전히 배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판단이 드러나는 변이형이 ‘점쟁이 소강절’의 이야기를 덧붙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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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 한곳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선녀동굴 이다. "선녀와 나무꾼"의 설화에 나오는 선녀가 살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간 노총각이 점쟁이를 찾아가 방법을 물었더니 어느 연못에 가서 날개옷을 훔치면 된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그래서 결혼해서 아이도 셋 낳고 잘 살다가 어느 날 선녀가 집을 나가 버렸다. 
  
나무꾼이 황망해 연못으로 찾아가 보았더니 물속에서 솟아 나온 선녀가 자신은 본래 동해 용왕의 딸인데 득죄(得罪)를 하여 잠시 지상에 머물렀다가 점쟁이 때문에 이리된 것인지라 이제는 본래 자기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노라 한다.  
  
그리고 빨간 병과 파란 병을 주면서 파란 병으론 아직 어린아이들을 먹여 살리라고 하고, 빨간 병은 점쟁이를 갖다 주라고 하였다. 나중에 빨간 병을 건네받은 점쟁이가 병을 열었더니 순간 불길이 확 일어서 점쟁이의 점술서가 모두 불에 탔다는 것이다. 


세상의 진짜 이야기는 맥락 이해가 중요  

개인 간의 문제든, 국제 외교 문제든 관계의 역학을 풀어가는 태도와 방법에 따라 다른 결말을 갖게 된다. 이야기의 서사 진행도 다를 바가 없다. 남북 관계에서 전례 없이 새로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서사의 수용자인 우리는 그 맥락과 상황을 차분하게 잘 파악하고 추이를 지켜보며 결말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일희일비하며 누가 무엇을 잘했네, 잘못했네 따지거나 이제 곧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마구 꿈 같은 희망에 빠져들어선 곤란하다. 
  
구전 이야기는 즐기고 싶은 대로 즐기면 그만이기에 선녀가 억지로 인연 맺기에 골몰했던 점쟁이를 혼내 주는 변이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사는 세상의 진짜 이야기에 도덕적 판단 기준만 들이댔을 때 왜곡이 일어나고 결말을 책임지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초빙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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