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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첩보소설 ‘고종과 미인계’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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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고종과 미인계’가 실린 미국 포퓰러 매거진 1912년 12월 하반호 표지. 

  
1905년 10월 어느날 서울 남대문 외곽에 있는 애스터하우스 호텔(현 서대문역 농협중앙회 터) 로비로 백인 여성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빈 자리에 앉더니 조선인 웨이터 박군에게 뭔가를 부탁했다. 마침 베델과 나는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때 베델은 하세가와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새로 들어온 그녀를 보더니 그냥 넋을 놓아 버렸다. 


“잠깐!” 그는 갑자기 말을 끊더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버드나무처럼 갸냘픈 몸매를 가졌다.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확신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마 위로 높게 짙은 갈색 머리를 땋아 올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느낌이나 자연스러운 느낌은 없었다. 눈이 너무 불규칙하고 입도 큰 편이었다. 하지만 뭐랄까...독립의 느낌이 묻어났다. 그래. 너무도 매력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자립심과 절제가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얼굴에 어우러져 매우 생기있게 보였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이고 또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왔는지 궁금했다. 사실 선교사나 외교관 아내를 빼면 서울에서 백인 여성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에 있던 호텔 주인 루이(루이 마르탱)를 불러내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었다. 루이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혼자 왔어요. 트렁크 하나에 여행용 가방 하나만 들고서. 라벨에 뭐라고 써 있었더라? 상하이 애스터하우스 호텔, 요코하마 오리엔탈 팰리스...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퍼시픽 메일 그런 게 있던데” 

그때 웨이터 박군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베델의 팔을 툭 쳤다.

“새로 오신 여자분이 뵙자고 하시네요.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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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서울 정동 애스터하우스 호텔. 현재 서울 서대문역 농협중앙회터다. 정진석 교수 제공 


베델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피어 올랐다. 하지만 눈에는 약간 이상하다는 제스처도 있었다. 베델은 박군과 함께 바를 떠나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나와 루이는 오늘 처음 본 그 신비로운 여성이 누구인지, 또 서울에는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너무 궁금해 아르헨티나산 페르넷 블랑카 맥주를 마시며 내내 떠들어댔다.

1시간쯤 지났을까. 마침내 베델이 문을 열고 다시 나타났다. 그는 나보고 밖으로 나오라는 제스처를 했다. 나는 약간 취기가 올라 프랑스 특유의 기분 좋은 느낌을 풍기던 루이를 남겨두고 나왔다. 

“빌리, 중요한 일이야” 문을 닫으며 베델이 속삭였다 “진짜 중요한 일이야..네 도움이 필요해. 얼른 가야해!” 

베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 2층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숙녀용 응접실’이 하나 있었다. 앞서 베델과 나는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소녀’로 부르기로 했다. 소녀는 우리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라색 눈에서 자신감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양 옆으로 활짝 웃는 입가에서는 그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베델이 우리를 차례로 인사시켰다. “그럼 저에게 하신 이야기를 내 친구 빌리에게도 직접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당신과 같은 미국인이고, 더군다나 아주 용감한 미국인입니다. 나는 이 친구를 친형제처럼 신뢰합니다.”

베델이 날 이 정도로 아꼈나...암튼 이 너그러운 영국인 용사는 평소답지않게 나를 꽤 과장해 칭찬했다. 

소녀는 재빨리 방을 둘러본 뒤 복도를 살핀 다음 문을 걸어 잠궜다. 그리고 매우 낡고 흔들거리는 램프 아래 세명이 원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소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강한 힘이 있었다. 과거 남성에게 지시를 내린 적이 있고 지금도 그런 위치에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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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총독으로 당시 동북아 정책에 깊히 개입했던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1843~1917). 위키피디아 제공 


“나는 지금 상하이에 있는 어떤 높은 분을 대신해서 서울에 왔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소녀는 허리띠에서 작은 금색 연필을 꺼내고 수첩에서 한 페이지를 찢은 다음 그 위에 이름을 적었다. 나는 지금 당장 그분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으려고 한다. 다만 그는 아시아로 진군하는 러시아의 행진에서 걸림돌이 될 만할 것들을 미리 제거하려는 매우 영민한 사람이라고 해 두면 소개가 충분할 것 같다. 극동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큰손’(러시아 극동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 추정)이라고 해 두자. 내가 종이에 씌여진 이름을 확인하자 소녀는 종이를 잘게 잘게 찢어 자신의 지갑 속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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