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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후반전(10)

절망은 두 개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좌절하고 체념할 것인가, 포기하지 않고 분투할 것인가. 김육의 젊은 날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13세가 되던 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해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를 떠돌아다니며 피난생활을 했던 그는 15세에 아버지를, 22세에는 어머니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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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 초상. 조선 후기의 문신, 효종·현종 연간에 대동법의 시행을 주장, 추진하였으며 화폐의 보급에 힘썼다. [사진 실학박물관]

  
1605년 소과에 급제해 성균관 유생이 됐지만 집권세력 대북파의 영수 정인홍과 맞서 싸우다 대과 응시자격을 박탈당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어려서는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한 다음에는 그것을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이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김육은 1613년(광해군 5년) 온 가족을 이끌고 경기도 가평 잠곡으로 낙향했다. 김육의 호 ‘잠곡(潛谷)’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아예 산골짜기로 들어가 직접 농사를 짓고 숯을 내다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때 그의 나이 35세,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밥 지을 양식조차 없었던 날이 많았고, 아들을 낳았으나 7개월 만에 요절했다. 다시 1622년(43세) 딸을 낳았는데 역시 2년 만에 눈을 감는다. 당시는 워낙 어려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지만 어려운 형편에 약 한 첩 제대로 못써보고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그야말로 참담했을 것이다. 


약 한 첩 못 써보고 아이들 저세상으로 보내

이처럼 절망이 계속되다 보면 보통은 주저 앉기 마련이다. 시대는 암울하고, 자신이 다시 벼슬에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가져볼 수 없고. 게다가 계속된 가난에 온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육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생계를 꾸려가면서 동시에 필사적으로 학문에 힘썼다. 백성의 일상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그들의 삶을 절절히 체험했다. 비록 이렇게 삶이 끝날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정치를 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던 그에게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인조반정이 일어남에 따라 광해군 대에 처벌받았던 자신도 복권된 것이다. 1624년 김육은 45세라는, 그때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에 대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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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김육비(金堉碑). [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이후 김육은 힘들었던 날 마음 먹었던 것처럼 오로지 백성을 위한 일에 헌신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흐리멍덩하고 천박하여 학문이 어떠한 것인지는 잘 모른다. 내가 원하는 바는 오직 마음을 바르게 하고 실제적인 것으로써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나라의 쓰임을 절약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부역을 줄여 세금을 적게 거두어야 한다. 나는 헛되이 이상만을 추구하여 형식적인 것을 숭상하지 않을 것이다.” (호서대동절목 서문)

“신은 몹시 고루한 사람이라 기발한 비책 같은 것은 알지 모릅니다. 단지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라, 백성의 뜻을 얻어야 나라를 얻는다는 말이 영원토록 마땅히 실천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합니다.”(우의정을 사직하는 상소) 

“수령들이 안 하겠다고 하여 수많은 백성이 간절히 바라는 바를 시행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호남 호서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하길 청하는 차자) 
그가 죽는 날까지 평생을 걸고 대동법 시행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래서다. 


죽는 날까지 대동법 시행에 헌신

이런 김육이 죽자 효종은 “대동법은 김 영돈녕이 혼자 스스로 맡아서 시종일관 흔들림 없이 시행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고, 실록은 “강인하고 과단성이 있었으며 나라를 위한 정성을 천성으로 타고나, 평소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며 그를 추모한다. 
  
서두에서 절망은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고 했다. 물론 체념하지 않고 분투한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끝내 절망 속에서 생을 마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후반전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성숙시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때,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만날 수 있다. 바로 김육이 그랬던 것처럼. 
  
김준태 동양철학자·역사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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