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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3)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편집자 주>
 
맺혔던 마음이 서럽게 “나도, 나도” 하며 터져 나오고 있다. ‘왜 새삼 지금, 그땐 말 안 하고 왜 이제야?’ 하는 반응에 서러운 소리는 방황한다. 하지만 일이 터진 당시에나 지금에나 주변에서는 아무도 그 소리를 진정으로 들어주지 못했다. 
 
‘그동안 묻어 두고 살았으면 그냥 그렇게 덮어 두자, 여러 사람 다친다. 조용히 넘어가자, 너도 원하는 게 있었으니 동조했던 것 아니냐’하는 말이 서러운 외침을 덮는다. 피눈물과 함께 터져 나온 목소리를 듣는 데엔 그 문제를 감당할 깜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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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MBC에서 방영된 아랑 전설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자신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천방지축 기억실조증 처녀귀신 아랑과 귀신 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까칠하게 이를 데 없는 사또 은오가 만나 펼치는 이야기. [중앙포토]

 
예전에 어느 고을에 새로 원님이 부임해 가기만 하면 그날 밤 원님의 초상을 치러야 했던 일이 있었다. 고을 원님 자리가 계속 비어 있게 되자 나라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고 있는데 자원자가 나선다. 이 사람의 스펙이니 뭐니 따질 겨를도 없이 나라에서는 새 원님으로 이 사람을 보낸다.
 
 
입에 칼을 문 소복입은 처녀 귀신  
새로 부임한 원님은 밤이 되자 방마다 촛불을 환하게 켜두고 의연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자정쯤 되자 서늘한 바람이 훅 불더니 촛불이 꺼지고, 소복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의 온몸은 피투성이고 길고 검은 머리는 정신없이 풀어 헤쳐져 있으며, 입에는 칼을 물고 있었다.
 
새 원님이 무슨 일인지 말해 보라고 하자 여자는, 그동안 서러운 사연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고자 했으나 다들 자신을 보는 족족 눈을 하얗게 뒤집으며 나자빠져 아무 말을 꺼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당당하게 앉아 있는 새 원님을 보고는 이제야 설원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자기 말 좀 들어 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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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각에 있는 아랑의 영정. [사진 권도영]

 
여자는 본래 이 고을 원님의 딸이었다. 어느 달 밝은 밤 유모가 달구경을 가자고 꼬셔 근처 누각에 갔다. 유모가 자리를 피한 사이 통인(원님의 심부름 등을 하던 청지기)이 달려들어 겁탈하려 하였고, 여자가 저항하자 여자를 찔러 죽여버리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여자는 내일 날 밝는 대로 아전회의를 소집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자신이 나비가 되어 그 통인 머리 위에 앉을 테니 그를 잡아 족치면 전후 사정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고 큰절을 올린 뒤 사라졌다.
 
과연 다음 날 아침 아전회의에서 한 통인의 머리 위에 나비가 나풀거렸고, 범인을 잡아낼 수 있었다. 범인이 여자의 시신을 버린 곳도 찾아냈다. 그 일이 있은 지 삼 년이 흐른 뒤였지만 시신은 썩지도 않고 생전의 고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새 원님이 시신을 걷어 올리자 그제야 사르르 삭아져 버렸다고 한다.
 
 
겁탈하려던 원님의 딸 저항하자 찔러 죽인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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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남루의 아랑각. [사진 권도영]

 
밀양 영남루의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원님의 딸 아랑은 통인이 매수한 유모가 꼬시는 바람에 한밤중에 영남루로 달구경을 나갔고, 통인은 뜻대로 되지 않자 여자를 찔러 죽인 뒤 대숲에 버리고 달아났다. 졸지에 딸을 잃고 시신도 못 찾은 아랑의 아버지는 속절없이 서울로 돌아가버렸고, 그 뒤로 새로 부임해 온 원님들은 눈앞에 나타난 아랑의 처참한 꼴에 충격을 받고 죽어 나간 것이다.
 
곡성(哭聲)은 어둠이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 곳은 아무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가 들어도 소름 끼치는 소리지만, 누군가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일을 겪은 한 검사가 TV 뉴스에 직접 나와 인터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랑이 원님 앞에 그 처참한 모습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것과 통한다. 들어줄 만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랑을  탓하거나 곡성에 놀라 뒤로 나자빠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원님을 간절하게 바랐던 거다.
 
다 지난 옛날이야기지만 꺼낼 수밖에 없는 것은 드러내어 밝히지 않는 이상 그 일은 마음 깊은 곳에 맺혀 한 인생을 얼어붙게 하기 때문이다. 아랑의 시신은 삼 년이 지나도 썩지도 않고 머물러 있었다.
 
 
첫날밤 소박맞은 신부의 한 맺힌 원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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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힘과 풀림의 원리에서 첫 번째는 자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지만 그게 안 될 때는 맺힘이 있게 한 당사자가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중앙포토]
 
첫날밤 소박맞은 신부가 원삼 족두리 입은 그대로 굳어 버린 이야기도 있다. 첫날밤 신부 모습 그대로 굳어 버린 원혼은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바로 그 상대가 와서 어루만져준 뒤에야 사르르 사그라져 버린다. 가해자의 직접적이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는 신부의 원혼이 밤마다 울어대 온 고을이 폐읍에 이르렀다고 한다. 맺힌 마음이 세상 곳곳에 박혀 있을 때 우리 함께 사는 세상이 온통 울음소리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맺힘과 풀림의 원리에서 첫 번째는 자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지만 그게 안 될 때는 맺힘이 있게 한 당사자가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안 될 때는 제삼자의 적절한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세를 갖추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피 흘리며 곡성을 토해내는 그들의 모습이 한순간은 흉측하게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우리 옛이야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처녀 귀신의 한은 이렇게 해원의 길을 찾는다. 그 원리는 이 시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듯하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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