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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2)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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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힘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려진 아이라며 경찰에 신고한 여대생. [중앙포토]
 
한 여대생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려진 아이라며 경찰에 신고한 일이 있었다. 혼자 힘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어린 엄마의 철없는 선택이기도 했는데, 다행히 세상은 이 철없는 엄마에게 매몰찬 시선만 보내지는 않았다.
 
부모가 원치 않은 아이라는 것, 그래서 버려졌다는 것은 한 인간의 온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 경험일 것이다. 요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재벌가 자식의 출생 비밀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가장 인기 있는 모티프 중 하나다. 버려졌거나, 잃어버렸거나, 바뀌었거나, 숨겼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본래 부모와 떨어져서 성장기를 보내고 나서야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는 매우 극적인 갈등과 박진감을 끌어낸다.
 
한국무속신화에 나오는 '바리데기' 바리공주는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버려졌다. 바리데기는 원치 않아 버려진 아이, 이름조차 '버린 아이'란 뜻이다. 불라국 왕 오구 대왕은 예언을 무시하고 결혼을 서둘렀다가 내리 딸 일곱을 낳았다. 홧김에 일곱째 막내딸을 버린 뒤 죽을 병에 걸리자 점을 쳤는데, 저승 약물을 구해와야만 살 수 있다고 한다. 딸들에게 차례로 물었으나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아 결국 버린 딸을 다시 찾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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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속신화 '바리공주'.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버려진 아이, 이름조차 버린 아이란 뜻이다. [중앙포토]
 
바리공주는 “길러준 공은 없으나 낳아준 공은 있으니 바로 가겠다”고 한다. 이것을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만 보면 세상 재미없는 이야기가 돼 버린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에서 바리공주의 ‘존재의 서사’는 비로소 시작된다. 자신을 버렸지만 부모임은 틀림없고 부모 목숨을 살려야만 하는 과제를 해결할 이가 자신밖에 없다면, 움직이는 것이다.


 
이승서 저승으로 가는 아홉 해의 여정
산 생명이 이승을 넘어 저승으로 가는 길이 순탄할 리 없다. 소 한 마리로 넓은 밭을 혼자 갈기도 하고, 동지섣달 설한풍에 얼음을 깨서 빨래하며 검은 옷은 희게, 흰옷은 검게 빨기도 한다. 머리에 이가 들끓는 노인을 무릎에 누인 채 옷과 몸에 있는 이까지 잡아 주기도 한다.
 
게임에서 흔히 제시되는 퀘스트와도 같은 것이다. ‘미션 클리어’를 해야만 다음 단계인 서천서역국 가는 길을 알 수 있다. 그 길 끝엔 무장승이 있었고, 저승 약물을 얻기 위해선 무장승과 아들 삼 형제 낳을 때까지 함께 살아야 했다. 바리공주의 험한 여정은 곧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겪는 길이었다.
 
손가락 꼽아 계산해 보면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당장 오늘 내일 죽을 것 같은 오구 대왕을 두고 나무하기 삼 년, 불 때기 삼 년, 물 긷기 삼 년의 아홉 해를 묵묵히 일해야 했다. 그러고도 아들 삼 형제를 낳아야 했으니(이본에 따라서는 일곱 형제이기도 하다), 그 오랜 세월 버티고 있는 오구 대왕도 사람은 아니지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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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한 바리공주의 험한 여정은 곧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겪는 길이었다. 사진은 바리공주 그림. [중앙포토]
 
그러나 신화가 전하는 논리는 21세기 현대인의 산술적인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그 지난한 과정이 의미하는 바를 따져야 한다. 부모의 목숨을 살리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바리공주는 그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해내야 했다. 그것은 오롯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데 필요한 수행이었으며 세월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쳤기에 저승 약물을 구할 수 있었고, 거기에 환생 꽃까지 얻어 부모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버려진 자식 덕에 생명얻은 부모
부모는 버렸던 자식 덕분에 생명을 얻는다. 그 힘든 일을 해낸 바리공주는 저승길을 인도하는 신으로 좌정한다. 어찌 보면 세상 모든 신직 중 가장 중요한 노릇일 수 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고, 그 한 많고 어리바리한 신참 영혼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역할을 하는 이가 바리공주이니 말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자기 배에서 낳았지만, 자신의 것이 아닌 존재다. 자식에게 부모는 품고 넘어서야 할 대상이다. 오구 대왕을 실패한 부모라고는 하지만, 세상 어느 부모인들 무책임하거나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부모도 품고 넘어서면서 이 세상과 사람들을 온전하게 겪어냈을 때 온전한 성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부모도 살리는 길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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