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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14)

요즘 아이들은 늦은 밤 출출하거나 입이 심심할 때면 라면이나 햇반을 먹거나 치킨·피자 등 배달음식을 주로 즐긴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어디라도 배달이 가능하고 24시간 편의점이 있어 쉽게 간식거리를 구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은 밤늦게 출출하면 ‘꼼밥’을 먹었다. 집 마당이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뒷산에 돌을 쌓아서 만든 즉석 화로로 작은 냄비에 해 먹는 밥이 꼼밥이다. 소꿉장난하듯이 같이 즐겁게 웃고 떠들며 어른들 모르게 살짝 지어 먹는 밥이다. 
  
방학 때 외할머니댁서 이모들과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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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마당이나 뒷산에 돌을 쌓아서 만든 즉석 화로로 작은 냄비에 꼼밥을 지어 먹곤 했다. [사진 pixabay]

  
나는 소학교 때 방학이면 외할머니댁에 자주 갔다. 방학 때 그곳에서 며칠씩 먹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외할머니댁은 부산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형 농촌인 모라에 있었다. 꽤 큰집으로 본채와 사랑채, 곳간이 있고 집 옆에는 맑은 물이 흘러 어느 계절이든 마냥 신났다. 부산보다 공기도 맑고 한가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곳에는 어머니 형제 8남매 중 아직 미혼인 삼촌과 이모 두 분이 있었다. 
  
막내 바로 위인 큰이모의 나이는 나보다 다섯 살 많고 막내인 작은 이모도 고작 세 살 위였다. 내가 잘 따라다니고 나를 잘 챙겨주신 분이 바로 두 이모다. 우리는 형제처럼 어울려 놀았다. 큰이모는 활발한 성격에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작은이모는 얌전하고 몸이 약한 편이었다. 
  
큰이모는 늦은 밤 근처에 사는 학교 동창생 집으로 마실을 자주 갔다. 외동딸인 이모 친구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장사를 해 텅 빈 집에 혼자 집을 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이모는 그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꼭 나를 데리고 갔다. 그 당시는 이웃과의 우애도 각별해 별 부담은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자주 해 먹은 것이 바로 꼼밥이었다. 꼼밥과 함께 앞 밭에 있는 무를 하나 뽑아 씻어 먹고 나서 그 옆 밭의 딸기가 두렁 밖으로 빨간 얼굴을 내밀고 있으면 그것도 살짝 몇 알 따와서 후식으로 먹었다. 딸기를 따 올 때의 스릴과 재미를 이야기하며 “하하”“호호” 웃고 떠들곤 했다. 남의 것을 훔쳐 먹었다는 죄의식은 하나도 없었다. 딸 때 누가 보지 않나 두리번거리던 그 모양새를 떠올리며 떠들고 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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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간식이었던 꼼밥과 외할머니, 이모들과 즐거웠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일러스트 김회룡]


  
그때 우리는 작은 것 하나둘만으로도 즐거웠다. 지금 아이들도 그럴까?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는 하나둘이 아닌 많은 것을 원하는 것 같다. 많은 걸 가져도 감사한 줄도, 하나도 못 가진 친구와 나눌 줄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 때는  나는 사촌 동생과 사탕 한 알도 입으로 깨서 나눠 먹었다. 침이 묻어 있어도 더러운 줄 모르고 서로 나눠 먹는 것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꼼밥이 우정을 더 크게 키웠던 것 같다. 이모는 나이가 들어서도 그 친구를 찾았고 친구 역시 이모를 찾았다. 그 두 사람이 즐겨 나눴던 옛날이야기의 중심에 가끔 나도 있었다. 
  
그 시절의 맛있는 간식이었던 꼼밥 생각과 외할머니, 이모들 얼굴이 같이 떠오른다. 아무 고민도 없이 즐거웠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email protected] 

[출처: 중앙일보] 어린 시절 이모들과 즐겼던 간식 '꼼밥'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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