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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14)

얼마 전에 이 지면에서 ‘구렁덩덩신선비’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혐오의 시선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것인데, 이 이야기는 이렇게 저렇게 뒤집어보고 펼쳐보고 할수록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견하게 하는 재미가 있다. 구렁이 모습은 누가 보아도 예쁠 수 없겠다. 요즘 세상에 할머니가 구렁이 낳는 이야기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는 분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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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멀쩡한 모습을 하고 다니지만, 실은 울부짖고 있는 구렁이들은 아닐까. [사진 pixabay]

  
가끔 사람 많은 길거리를 다니다 엉뚱한 상상을 해볼 때가 있다. 이들이 모두 멀쩡한 사람 모습을 하고 다니지만, 실은 울부짖고 있는 구렁이들은 아닐까. 옛이야기에서 억울함에 원귀가 된 이들은 구렁이 형상이 되어 밤새 울부짖는다.  
  
주로 처녀가 그러긴 하지만, 마음속에 맺힌 것이 있을 때, 어딘가 적절하게 하소연도 하기 힘들 때, 밤마다 울부짖는 구렁이 울음에 온 고을은 폐읍 지경에 이른다. 아주 전형적인 형상화이다. 아무튼 이번엔 이 이야기에 대해 구렁이 입장에서 생각해 볼까 한다.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이를 만나고 싶은 구렁이

신선비가 된 구렁이는 이들처럼 원귀는 아니기에 다르게 보아야 하지만, 외모만으로는 누구에게든 혐오감을 주는 존재다. 그런데 구렁이 입장에서 이웃집 첫째 딸도, 둘째 딸도 자신을 보고는 징그럽다며 심지어 침을 퉤퉤 뱉고 돌아갔을 때는 좀 심란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머니도 외면하는 것은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경험이 된다. 
  
멀쩡하고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녀들이 이처럼 부모로부터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가시적인 학대도 문제지만, 마음으로 가하는 공격도 영혼을 파괴시킨다. 이웃집 두 딸의 반응은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자신은 인정받기 힘든 존재라는 인식을 강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셋째 딸은 눈을 반짝이며, 심지어는 손뼉까지 치며 탄생을 축하해 주었다. 셋째 딸 눈에도 구렁이는 구렁이였을 것이나, 손뼉 치며 “구렁덩덩신선비 낳으셨네”라고 했을 때는 탄생 자체를 축복하는 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 아닐까.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축복의 마음과 태도. 내 안에는 신선비 같은 멋진 모습도 있는데 다들 구렁이만 보는 것 같을 때, 날 제대로 보아주는 이를 만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질 수 있다. 날 바라보아 주는 따뜻한 눈빛이 있을 때 나는 그에게 내 모든 것을 던지게 된다. 
  
그런데 그 믿음을 배반당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혼인 후 허물을 벗고 멋진 선비 모습을 갖추게 된 신선비는 과거 시험을 보러 집을 떠나면서 셋째 딸에게 허물을 잘 간직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막내를 시기한 두 언니가 허물을 빼앗아 태웠고, 멀리서 허물 타는 냄새를 맡은 신선비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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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절대 세상에 보이고 싶지 않았던 어두운 면은 남이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내 모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사진 pixabay]

  
내 모든 것을 던져 마음을 준 대상이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려 상처를 주었을 때, 내가 절대 세상에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던 어두운 면을 그가 까발려 내보였을 때, 그 배반감은 견디기 힘든 무게로 나를 짓누를 것이다. 그러니 다시는 상대를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 그때 느끼는 치욕스럽고 괴로운 감정은 무엇일까. 허물 타는 냄새가 세상에 퍼졌다는 것은 내 치부가 만천하에 공개됐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구렁이 모습은 남이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내 모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게 세상에 드러났을 때 그렇게도 칼같이 돌아서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남에 의해 까발려져서라기보다 나도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에 나 스스로 짓눌리게 되지 않을까. 
  
어렸을 적, 한참 열등감에 시달리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나는 못난이’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오히려 자존심 센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아 주는 것 같으면 온 마음으로 나를 온전히 던졌다. 그렇게 함부로 나를 던졌던 경험은, 내가 대단히 열정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구렁이 속의 내 가치를 알아보아 준 상대에 헌신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역시 나의 구렁이 같은 모습이 상대를 질리게 하기도 하고, 내 약한 모습을 알아차린 상대에게 이용당하기도 하면서 그런저런 일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구렁덩덩신선비’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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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남이 보는 내 모습이 구렁이일 수도 있지만 내 안에 신선비같은 모습이 분명히 있음을 나 스스로 믿는다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사진 pixabay]

  
지금 이 글은 ‘구렁덩덩신선비’에 대한 매우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해석이다. 학문적 근거라고는 전혀 없이, 그저 이렇게 상상을 마구 펼쳐 보았다. 이 이야기에서 셋째 딸은 돌아오지 않는 신선비를 찾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서 고난의 길을 가야만 했다. 
  
여러 어려운 미션을 수행한 후에야 신선비가 사는 곳을 찾을 수 있었고, 신선비에게는 이미 새로운 정혼자가 있었기에 그와 경쟁도 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신선비의 부인이라는 지위를 확보해 신선비와 셋째 딸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난 이후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본다. 남이 보는 내 모습이 혹시 구렁이일지라도 내가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까.  
  
내 허물을 함부로 했다고 어느 누구를 미워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 가치를 알아주는 대상이 나로 인해 힘든 고난의 길에 들어서게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내 모습이 구렁이일 수도 있지만, 내 안에 신선비 같은 멋진 모습이 분명히 있음을 나 스스로 믿는다면 거기에서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초빙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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