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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德厚)시대

Nugurado 2018.09.09 12:57 조회 수 :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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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고종 때의 일이다. 제중원 앞마당에서 선교사와 공관원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도 고종이 보셨다. 염천의 더위속에서 공을 주고 받으며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시더니 마침내 딱하다는 듯 고종께서 한 말씀 하셨다. 

“ 저렇게 힘든 일은 아랫것들을 시키게 할 것이지 왜 귀빈들이 손수 하게 놓았더냐…” 매우 안타깝게 여겨 친히 수하에게 엄중한 질책을 내리셨다고 한다. 실로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차마 웃지 못할 일이나 아마도 레저와 취미, 그리고 운동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그걸 한사코 노동으로만 이해하신 결과일 것이다. 종전에는 생존과 관련된 노동이었으나 나중에는 유희와 놀이가 된 것들이 있다. 지금은 스포츠라 불려지는 것들이 대부분 그렇다. 권투, 레슬링, 창던지기, 승마, 활쏘기, 수영, 조정과 달리기 등이 그들이다. 삶의 환경이 바뀌면서 이들의 역전현상은 뚜렷했다.

이번에는 그 반대현상도 일어난다. 그전에는 취미였고 놀이였지만 나중에는 어엿한 전문가가 되어 결국 생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현상을 요즈음은 이른바 <덕후시대>라 부른다. 원래 덕후는 오타쿠라는 일본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오타쿠는 히라가나로 집을 나타내는 댁(宅)을 의미하며 외국어를 표현하는 가다가나로는 마니아(mania)를 뜻한다. 그 소리값이 같아 초기에는 어느 한 분야에 몰입하여, 집에 틀어박혀 그것만 하는 방구석 폐인이라는 비교적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그런 마니아층이 다양해지고 바뀐 시대에 그들만이 이뤄낼 수 있는 독보적 영역도 있어 그들의 진출이 부각되면서 어느덧 긍정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인터넷 시대에 어느 전문분야에서 이렇다 할 제도권 교육 없이 순전히 취미와 독학으로 자기계발을 일궈내 마침내는 지구촌 트렌드를 이끄는, 우뚝 솟은 기량의 소유자를 뜻하게 되었다. 그것이 한국에 수용되면서 발음은 오덕후에서 ‘오’자가 탈락되어 덕후라고 정착되었다.

모든 것이 다양해진 오늘날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자식과 부모세대가 그들이 살아낸 시대가 달라 뒷세대의 취미가 앞세대가 살았던 실용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왕왕 그렇다. 이를테면 종이 비행기를 날려 수박에 꽂히는 놀이가 인터넷의 도움으로 어느날은 대회가 되더니 나중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이변을 낳고, 그 이벤트는 버젓이 상품이 되었다. 그 뿐만 아니다.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인물 피겨를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집안 가득 모으는 소아병적 행태가 어느덧 가치있는 ‘소장’으로 변용, 전람되더니 마침내는 인터넷상에서 생중계되었다. 모든 것을 효용과 가치의 원리로만 이해했던 우리가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가로 젓게 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들의 별난 취미가 실용과 부딪치는 경우 심하게는 <돌아이>요 점잖게 표현해 괴짜인데 요즈음은 그 시절이 바뀌어 용어마저 그걸 덕후라 칭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제도와 사회일반에 두루 유용한 전인교육을 받은 우리로서는 구한말 고종이 그랬듯, 아무래도 낯설은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따지고 보면 모두 덕후였는지 모르겠다. 공책을 찢어 딱지를 접고 그걸 패대기 치는 행위를 이해하는 한심한 부모가 없었듯이, 오늘날 연예인들이 누리는 위상은 불과 몇십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쑤 딴따라요 남사당 패거리로 불릴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었다. 상가집에서 곡 해주고 만가 불러 겨우 밥얻어 먹던 집안 아저씨가 살다보니 인간문화재가 되어 있는 것 역시 부인 못할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대학을 중퇴한 채 차고에서 제 좋아 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어김없는 덕후였으며 틀림없이 외골수며 괴짜였을 에디슨과 아인슈타인도 이에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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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생존으로부터 많이 놓여난 요즈음 세대가 인간의 본성에 보다 가까운 유희와 놀이를 추구하는 것을 너무 인색하게 볼 것도 아니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우리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처절하고 그들의 배움에서 시와 음악이 빠진, 오로지 학원 학습 같은 것이라면 마치 물 없는 산처럼 우리는 자랑스럽겠는가. 

애벌레인 송충이가 나무에 살면서 북술북술한 털을 갖고 사는 것은 천적인 새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처절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우리세대는 진화라는 틀에서 일단 시간에 쫒겨 흉내만 내고 사라지지만 그런 토양이 정착되면 또 뉘 알랴! 달리 길러진 덕후와 괴짜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무슨 큰 짓을 할지 모른다. 그리하여 그 덕후의 성취에 기대어 전 인류가 살아갈 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못미더운 대로 미지한 어떤 분야에 역행하듯 몰입하고 더러 엄한 짓도 하는 괴짜와 덕후를 느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우리가 시대를 길러내고 다음 세상을 준비 해야하는 이유일 수 있다. 이르든 늦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시대의 덕후들은 늘 우리의 문 앞에 성큼 있어 왔던 건 아니었을지….그리 생각해 봤다. 



<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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