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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대신들이 넓은 방 술상 앞에 앉아 있다. 관복을 갖춰 입은 걸 보니 공식적인 자리인데, 오른쪽 한 대신은 술이 과했는지 신하 한 명이 뒤에서 부축하고 있다. 섬돌에 놓인 청화백자 항아리 두 개엔 아직 귀한 술이 담겨 있는 듯하다. 뜰에선 악공 열아홉 명의 연주에 맞춰 오색으로 의상을 갖춘 무용수 다섯 명이 처용무를 공연하는데, 오른쪽 아래엔 허름한 차림의 노인 두 명이 '난입'해 덩실덩실 춤을 춘다. 1987년 보물 929호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사계첩(耆社契帖)' 중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사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대표 궁중 회화로 손꼽히는 '기사계첩'이 국보로 승격될 예정이라고 문화재청이 22일 밝혔다. 1719년(숙종 45년), 59세의 숙종 임금은 노년의 문관들을 우대하는 기관인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게 된다. 기로소는 70세 이상이라야 자격이 있었으나, 태조가 60세로 일찍 들어간 전례에 따라 '조기 입소'하게 된 것이다. 이때 숙종은 "나는 본래 병이 많아 쉰을 기약할 수 없었다"며 감개무량해한다. '기사계첩'은 그 기념행사에 참석한 관료들이 궁중 화원에게 의뢰해 이듬해 완성한 서화첩이다. 같은 해 숙종은 세상을 떠났다. 계첩을 참석자 인원수대로 제작해 지금의 기념사진처럼 나눠 갖는 게 당시 풍습이었는데, 행사를 묘사한 다섯 장의 그림과 초상화 11점은 화려한 채색과 섬세한 묘사 등으로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