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네 번, 새끼 고양이들을 위한 여울이의 밥 배달 전쟁
백숙집 개의 공격에도 꿋꿋이 지킨 아깽이 밥…어미 고양이로 산다는 것
여섯 마리 새끼를 위해 꽁치를 배달하는 여울이./사진 이용한
고등어 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개울집 부엌을 기웃거린다.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부엌문 앞에서 ‘냐아앙’하고 누군가를 불러 재낀다. 당당하게 ‘밥 주세요’하고 외치는 소리가 개울길에 울려 퍼진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웃 마을에 사는 ‘여울이’라는 고양이다. 고등어 무늬에 입가에는 자장이 묻은 듯 귀여운 외모의 고양이다. 늦봄에 여울이는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웃 마을 캣맘이 지극 정성으로 육묘 중인 녀석을 보살폈다. 사료 말고도 닭백숙에 생선도 구워주고 갖은 영양식을 만들어 바쳤다.
사실 나는 2~3일에 한 번꼴로 급식소에 들러 캔 간식이나 챙겨주고 더러 사진을 찍는 게 전부였다. 이번에도 여울이의 보채는 소리에 캣맘은 서둘러 꽁치 두 마리를 구워 내놓았다. 달그락 소리가 들리자마자 여울이는 익숙하다는 듯 열린 부엌문 사이로 들어가 꽁치 반 토막을 덥석 물고 나왔다. 그리고 녀석은 뒤도 안돌아보고 그것을 입에 문 채 어디론가 향했다. 급식소 뒤편에 자리한 빈집의 헛간채 쪽이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걷는 여울이의 입에서는 갓 구운 꽁치가 달랑거렸다. 이윽고 녀석이 헛간채에 이르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아깽이 여섯 마리가 마당이 떠나갈 듯 삐악거리며 엄마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는 미처 내려놓을 새도 없이 아깽이들이 엄마가 물고 온 꽁치를 낚아채 아귀다툼을 벌였다.
”밥주세요~” 엄마의 밥을 기다리는 여울이의 새끼들./사진 이용한
엄마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금 빈집 대문을 빠져나와 캣맘네 부엌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녀석이 꽁치 꼬리 쪽을 물고 나왔다. 역시 발걸음은 경쾌했고, 거침이 없었다. 새끼들 먹일 마음에 살짝 달뜬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오는 듯했다. 당연한 어미 고양이의 모성애로 보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짠한 모습이었다. 자기도 먹고 싶어서 속으로는 얼마나 군침을 삼키고 있었을까. 여울이가 입에 문 꽁치를 내려놓자, 또 한바탕 헛간 앞에서는 왁자하게 먹이 다툼이 벌어졌다. 쉴 새도 없이 여울이는 또다시 급식소로 향했고, 네 번의 왕복만에 꽁치 배달이 끝이 났다. 하지만 여울이의 배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튀김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크고 두꺼운 고구마튀김을 부엌에서 물고 나왔다.
그때였다. 바로 옆집 옻닭백숙을 파는 식당에서 목줄이 풀린 커다란 개가 여울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마도 녀석은 여울이가 입에 문 고구마튀김을 노리는 것 같았다. 갑작스런 개의 공격에 명랑하게 룰루랄라 걸어가던 여울이가 갑자기 내달리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면서도 녀석은 입에 문 것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어금니까지 꽉 물고 있었다. 사진을 찍다말고 내가 발을 쿵쿵 굴러 개를 쫓아보았지만, 녀석은 막무가내로 날뛰었다. 개가 너무 커서 내가 다 겁이 날 지경이었다. 다행히 여울이는 빈집 대문 밑으로 들어가 용케 커다란 개를 따돌렸다. 대문 앞은 내가 막아섰다. 상황도 모르고 아깽이들은 앙냥냥거리며 또다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큰 고구마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여울이와 새끼 고양이들. 안타깝게도 여울이는 이웃 식당 주인이 놓은 쥐약을 먹고 고양이 별로 떠났다./사진 이용한
여울이는 지쳐서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었고, 아랑곳없이 아깽이들은 맛난 식사였다며 저마다 비린내 나는 그루밍을 시작했다. 에고, 어미 노릇 하기 정말 힘들구나. 힘들어도 새끼들에겐 힘든 티도 못 내고, 맛난 것이 있어도 맘껏 그것을 먹을 수도 없구나. 그렇다고 이 녀석들이 자라서 제 엄마에게 맛난 거 한 입 물어다 주지도 않을 텐데……. 엄마는 엄마라는 이유로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구나. 옆에서는 아깽이들의 그루밍이 한창인데, 밥 배달에 지친 어미고양이 여울이는 까무룩 곯아떨어졌다.
* 한동안 여울이가 보이지 않아 여울이를 보살피던 캣맘에게 물어보니, 아깽이 육묘를 거의 마칠 무렵 여울이는 이웃집 옻닭 식당 주인이 놓은 쥐약을 먹고 고양이 별로 떠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