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거꾼 김 첨지는) 비를 맞으면서 한 학생을 남대문 정거장까지 데려다 주고 1원 50전을 번다." 1924년 현진건이 쓴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의 한 문장. 여기서 '남대문 정거장'이란 지금의 서울역이다. 일제는 1923년 1월 남대문역 이름을 경성역으로 바꿨지만 일상에선 여전히 남대문 정거장이라 불렀다. 남대문역은 경인선 철도를 개통하던 1900년 생겨났고 지금 볼 수 있는 옛 서울역사는 1925년 신축됐다.
1919년까지는 남대문역이 아니라 '서대문역'이 서울역이었다. 경부선과 경인선의 시·종착역이었던 서대문역은 서울 도심과 가장 근접한 역이었으며 종로를 관통하는 전차로 쉽게 환승할 수 있었다. 지금 미근동 경찰청 앞 큰길 건너편에 있었는데,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자리다.
3·1운동 때 전국에서 인파가 집결하기도 했다. 1905년 개통한 경의선은 용산과 신의주를 잇는 노선이라 서울 도심에서 신의주 방면으로 가려면 용산역까지 내려와야 했다. 이 때문에 일제 당국은 의령터널과 아현터널을 뚫어 남대문역에서 곧바로 경의선을 탈 수 있도록 했고 서대문역은 없앴다.
철저히 일제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통된 것이나, 이는 서울역이 유라시아 대륙과 곧바로연결됐음을 의미했다. 당시 서울역에서는 모스크바나 파리까지 가는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경의선 기차는 서소문역, 아현리역, 연희역을 거쳐 갔다.
1906년 기차를 타기 위해 서대문역으로 가는 사람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광복 후 분단으로 경의선은 총연장 499㎞에서 서울~문산 구간 52.5㎞로 줄어들었다. 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길도 끊겼다. 남북이 오는 11~12월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합의했다. 경의선이 다시 이어지는 건 반갑지만, 행여 '남북 철도 연결'보다는 '낙후한 북한 철도 지원'에만 사업이 쏠리진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