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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1인가구가 가장 많은 서울 강서구의 화곡동
“혼자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을까 두려워”
60대 1인가구들은 먹거리가 해결되는 시장과 직장 근처에서 사는 경향을 보였다.
서울 강서구는 관악구(10만6865명)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1인가구가 많이 산다. 나이별로만 살펴보면 서울 자치구별 전체 1인가구 가운데 60대 1인가구의 비율은 도봉구가 가장 높다. 하지만 60대 1인가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강서구로 나타났다. 강서구청이 지난 8월 집계한 1인가구가 가장 많은 화곡1동 거리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끄는 빈 유모차가 아이를 태운 유모차보다 더 자주 눈에 띈다.
실제 지난해 통계청에서 집계한 60대 1인가구만 8724명에 이른다. 60대 1인가구가 가장 많은 강서구에서 중·장년층의 행동반경은 좁았다. 직장이나 학원, 학교에서 조금 멀더라도 집값과 물가가 싸고 교통이 편한 지역에서 살려는 젊은 1인가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겨레21>이 만난 중·장년층 1인가구는 일터와 먹거리를 해결하는 시장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경향을 보였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화곡1동이 기존의 화곡 1동과 7동을 합쳐 인구도 많은데다 임대주택이 많아 혼자 사는 어르신이 많다”며 “서울에서 외진 지역이라 집값도 싸니까 어르신들이 모여 살면서 특유의 분위기가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화곡역 근처만 10개 인력사무소
5호선 화곡역과 강서구와 맞붙어 있는 양천구 신월사거리에는 인력사무소들이 대거 모여 있다. 나이가 많고 기술이 없더라도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임시직 일자리 수요가 많은 곳에 공급도 늘어나는 구조다. 화곡역 근처에 들어선 인력사무소만 10개가 넘었다. 여자들은 가정부·파출부 인력사무소로, 남자들은 건설 인력사무소로 일자리가 갈렸다.
양천구의 한 건설 인력사무소 대표 하아무개(63)씨는 “강서구 바로 옆이어서 많을 때는 60대들이 30~40명씩 온다. 하지만 60대 10명 가운데 7명꼴로 나이가 많아 일을 구하지 못한다”며 “새벽 5시부터 나와 차례를 기다리는데도 헛걸음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 오후 5시30분께 박아무개(69)씨도 일을 마치고 강서구의 한 건설 인력사무소로 들어왔다. 일당을 받기 위해서였다. 박씨가 공사장에서 건축자재를 치우며 이날 받은 돈은 13만원이었다. 박씨가 이 인력사무소에서 막일을 한 지도 5년째다. 용접공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일감은 떨어졌다. 이번에 들어온 막일도 10월5일까지였다. 당장 다음주부터 할 일이 없다. 박씨에겐 돈줄이 끊어진다는 뜻이다.
70대를 코앞에 둔 박씨는 공사장에서 사실상 끝물로 여겨진다. 공사장에서 60대는 한계 나이다. 일하다 다치면 오히려 시행사가 손해를 볼 수 있어 60대 고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강서구의 다른 건설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규모가 큰 공사장에선 70대부터는 아예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60대가 갈 곳은 동네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을 짓는 소규모 공사장들이다. 이곳에서도 60대는 잡부였다. 건축자재를 정리하고 빗질을 한다. 용접공인 박씨는 그나마 기술이 좋아 다른 사람들보다 길게 버틸 수 있었다. 일감이 생기면 인력사무소에서 박씨에게 연락을 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일감마저 떨어지면서 막일을 한다. 이날 박씨가 일당을 받으러 오기 전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젊은 사람으로 보내주겠다”며 다른 공사장 관계자와 통화했다.
퇴근길 박씨는 화곡본동 재래시장을 가로질렀다. 박씨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장을 보는 곳이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은 값도 비싸고 이용하기도 번거로워 가지 않는 편이다. 중·장년층 1인가구 가운데 자동차를 가진 1인가구는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일을 마치고 산책 겸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재래시장을 주로 찾았다.
현재 강서구에 등록 재래시장은 6개다. 미등록 시장까지 합치면 10개가 넘는다. 중·장년층 1인가구가 걸어서 장을 볼 수 있는 재래시장이 근처에 많이 모여 있는데, 지금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박씨는 음식 재료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반찬을 주로 샀다. 재래시장에는 ‘3개에 5천원’이라 적힌 반찬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배달 음식은 비싸서 입에도 못 대
박씨는 이혼하고 혼자 산 지 20년이 넘는다. 맛있지는 않더라도 입에 맞게 만들 만큼 요리 솜씨도 늘었다. 이날 저녁은 된장국에 밥이었다. 박씨는 일하는 날에는 저녁 한 끼만 집에서 먹는다. 아침과 점심 두 끼는 공사장에서 먹는다. 배달 음식은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고 비싸 거의 시켜 먹지 않는다.
박길자 화곡중앙골목시장 상인회 사무장은 “나이 든 남자 손님이 혼자 장을 보러 오면 주로 반찬들을 조금씩 포장해간다. 아예 육개장 같은 국 종류를 하루이틀 치 사는 경우도 많다”며 “재래시장은 혼자 사는 중·장년층에게 단순히 장을 보는 곳이 아니라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떠는 사랑방 역할도 한다”고 했다. 재래시장을 가로지른 박씨는 마을버스에 몸을 실었다. 박씨가 인력사무소로 나서는 시각은 새벽 5시다.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간대여서 사무소까지 걸어간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체력이 달린다. 마을버스 정류장부터 박씨 집까지는 여덟 정거장 거리나 됐다. 박씨는 50~60대 초반보다도 체력이 떨어졌다. 박씨는 마을버스 노약자석에 지친 몸을 구겨넣었다.
박씨의 집은 SH(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임대해준 다세대주택 2층이었다. 아직은 계단을 올라가는 게 힘들지 않다. 하지만 박씨는 이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다세대주택을 알아보려 한다. 무릎이 아파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할 70~80대를 대비해서다.
집은 방 3개에 부엌 1개, 화장실 1개였다. 한 방에는 침대 하나 놓으니 양쪽 벽에 맞닿았다. 조금 더 큰 방에는 텔레비전과 장롱이 있었다. 박씨가 친구들이나 형제들을 만나러 집을 나서지 않을 때 이불을 덮고 누워 지내는 공간이다.
나머지 방에는 냉장고와 식탁이 놓여 있다. 냉동실에는 먹다 남은 반찬들이 얼어 있었다. 냉장실에는 소주 반병과 달걀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친구 부부가 챙겨준 묵은지 한 통이 냉장고 한 선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직접 담근 차와 홍삼 2병은 박씨의 건강을 돌보는 음료들이다. 박씨는 집 앞 슈퍼에 소주 한 병을 사러 나갔다. 저녁밥에 곁들여 마실 반주다.
“이젠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게 불안”
80대 1인가구가 거동이 불편한 이웃에게 점심 도시락을 배달했다.
박씨는 “친구들의 3분의 1가량이 혼자 산다. 나 역시 아마 앞으로도 혼자 살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만나는 여자가 있지만 각자 생활한다. 이제는 혼자 산 지 오래돼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게 오히려 불편할 것 같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80대 1인가구는 “60대 1인가구는 아직 애”라고 했다. 어린이 놀이터는 70~80대 1인가구에게도 놀이터였다. 놀이터들의 한쪽에는 버려진 의자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놀이터에 설치된 운동기구들 역시 이들에게 유일한 운동기구였다. 60대 1인가구인 박씨는 집 뒷산에 자주 올라갔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1인가구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행동반경은 점점 좁아졌다.
반면 일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해야 한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할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손주를 키우는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눈칫밥을 먹지 않으려고, 이들은 녹슨 몸을 계속 움직였다.
40대에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다가 50대부터 혼자 지낸 김아무개(82·여)씨는 60대까지 식당 부엌에서 설거지를 했다. 경로당에서도 더 나이 든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먹을 밥을 지었다. 70대에는 공공 일자리로 길거리 청소를 했다.
김씨의 사실상 마지막 일자리는 민간 업체에서 하는 도시락 배달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이틀씩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한다. 김씨는 “노인들끼리 서로 챙기는 식”이라며 “몸이 불편해 잘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 집에 가보면 곰팡이가 슬고 어수선하고 지저분해 혼자 사는 처지인 내가 보기에 더욱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도시락 배달도 85살까지 나이 제한이 있었다. 도시락 배달을 하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어서다. 이날 놀이터에 나온 박아무개(87·여)씨는 “85살까지 김씨와 같은 업체에서 도시락에 담을 요리를 만들다가 이제 나이가 많아 일을 못하게 됐다”며 “팔다리 모두 성한데도 찾아주는 데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놀이터 울타리엔 폐지 줍는 유모차만
김씨가 이날 도시락을 돌릴 집은 모두 다섯 군데였다. 김씨는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에 도시락들을 넣고 길을 나섰다. 첫 집은 80대 할아버지가 사는 3층짜리 다세대주택 옥탑방이었다. 도시락 배달하는 집들 가운데 유일한 옥탑방이었다. 옥탑방에 컨테이너를 덧대 부엌을 만든 집이었다. 30개 넘는 계단을 올라가는 김씨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아직 노인정에 나가지 않은 80대 할아버지가 도시락을 건네받았다.
두 번째 집은 70대 부부가 사는 집이다. 하지만 이날도 문이 잠겨 있었다. 이들 부부가 폐지를 주우러 갈 시간대였다. 집 앞에는 종이상자 수십 개가 쌓여 있었다. 동네에는 폐지를 사고파는 고물상이 대거 들어서 있었다. 화곡1동의 한 사거리에만 고물상이 5~6개에 이르렀다. 고물상 대표 김아무개(69)씨는 “어르신들이 소일거리 삼아 폐지를 줍는다. 리어카를 가득 채워도 5천원도 안 돼 생계에는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며 “매일 폐지를 파는 어르신들이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아 오는 어르신들도 있다”고 했다. 이날 화곡동의 한 놀이터 울타리에도 폐지를 줍는 유모차 1대가 쇠사슬로 매여 있었다.
이날 배달의 마지막 집은 다세대주택 1층에 사는 이아무개(86·여)씨였다. 이씨의 방에는 휠체어가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이씨에게는 1층 계단 3개도 높았다. 집 근처 놀이터와 경로당에서 수다를 떨다가 친해진 같은 또래의 3명이 화투를 치러 이날 이씨 집에 모였다.
화곡1동 구립예촌어르신사랑방은 화곡동에서 이용 인원이 가장 많은 경로당이다. 평균 이용 인원만 70명이 넘는다. 근처 다른 어르신사랑방의 평균 이용 인원이 18~49명인 데 견줘 많게는 4배에 이른다. 김갑순 구립예촌어르신사랑방 회장은 “주로 70~80대 노인들이 경로당에 모여 수다도 떨면서 외로움을 달랜다”고 했다. 이날 도시락을 돌리던 김씨 역시 “지금처럼 계속 혼자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을까봐 두렵다”고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