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지며 퇴사자 수두룩
퇴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 사라져
“퇴사 후 내 삶을 찾게 됐다”
유튜브에 ‘퇴사’를 검색하면 ‘퇴사 후 6개월’, ‘퇴사 여행’, ‘퇴사 1분 전’ 등 퇴사 관련 영상 수천개가 뜬다. 영상 속에선 “시원섭섭하다”, “졸업하는 기분”이라며 마지막 출근길 소감을 말하고, 직장 동료들과 송별회를 즐긴다. ‘용기가 부럽다’ ‘수고했다’ ‘대단하다’는 댓글이 수십개씩 달린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인스타그램엔 ‘퇴사축하파티’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넘쳐난다. 트위터에는 ‘퇴사봇’이라는 계정이 퇴사를 권하는 게시물을 올린다. 서점가에는 ‘퇴사하겠습니다’, ‘희망 퇴사’ 등 퇴사 관련 책이 유행이다.
트위터 '퇴사봇'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퇴사'를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들.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캡처
그동안 청년들은 취직을 꿈꾸며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입사 후 현실 조직 생활에 부딪히자 과감히 사표를 던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열정과 창의성을 죽이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 낮은 연봉, 성과주의로 인한 스트레스 등을 견디며 직장에 남아있기는 싫다는 것이다. 이들은 퇴사를 ‘내 삶을 찾기 위한 용기’라고 말한다.
◇실패자, 패배자? 이젠 ‘위너’
과거 퇴사자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실패자’ 또는 ‘낙오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참고 버티면 복이 온다”는 말만 믿고 견디다 몸과 마음에 병이 든 직장인에게 퇴사자는 ‘승리자’다.
jobsN이 20~40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서도 퇴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볼 수 있었다. “동료의 퇴사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냐”는 질문에 ‘부럽다’, ‘응원한다’, ‘용기있다’, ‘이해가 된다’고 긍정적으로 응답한 사람은 602명(60.2%)이었다. ‘걱정되면서도 부럽다’는 양가적인 답변을 한 사람은 83명이었다. 또 이직을 하거나 퇴사 후 계획이 있는 퇴사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구체적으로 답변한 사람(11명)도 있었다.
직장인들 대부분은 “별다른 목적없이 그저 회사가 싫다고 퇴사하는 동료들을 보면 답답하고, 직장을 잘 구해 나가는 동료는 부럽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퇴사하는 사람은 한심해 보이지만, 언젠간 나도 제대로 준비해 퇴사해야겠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퇴사를 마냥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사는 전염된다. ‘동료의 퇴사가 귀하의 퇴사 의향을 더욱 높아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5.3%가 “그렇다”고 답했다.
2030세대만 퇴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올 5월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를 그만두며 지인 60명을 모아 직접 '퇴사 파티'를 연 정재호(45)씨는 “대부분 퇴사를 할 때는 조용히 나가는 게 보통이지만, 안정된 현 직장을 떠나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응원을 받고 싶어 파티를 열었다”고 했다.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 이유
많은 퇴사자들은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사표를 던진 후 그동안 놓쳤던 삶을 챙기고 미래 계획을 재정비한다. 잊고 있던 자신의 적성을 재탐색하고 자신이 즐거운 일에 몰두한다.
퇴사 후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김은지(24)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2013년 롯데관광에 입사해 4년간 여행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여행 오퍼레이터는 국내외 여행지를 발굴하고 일정을 직접 계획하는 일을 한다.
김씨는 항공과 2학년 재학 중 취업해 또래에 비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일은 적성에 맞았다. 12개국 31개 도시를 여행하며 새로운 여행 상품을 기획했다. 우수사원 표창을 받고 1년 특진을 하는 등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힘들었고 지쳤다. “20대는 도전하는 나이라고 하잖아요.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인생에서 중요한 고민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고민 끝에 나만의 삶과 일을 꾸려보자는 결론을 냈습니다.”
(왼쪽부터) 김씨의 직장인 시절,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모습들. /김은지씨 제공
그는 2017년 5월 사표를 던졌다. 이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영상을 찍고 글을 썼다. 여행 관련 블로그와 유튜브를 운영하고 모델과 강연자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퇴사 후 수입이 일정치가 않는 등 힘든 점도 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며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후회하지 않는 퇴사자들의 공통점은 퇴사 계획을 철저히 세웠다는 점이다. 또 퇴사 후 다가올 수 있는 생계의 어려움이나 ‘어두운 미래’도 맞닥뜨릴 각오를 한다.
대기업 SK텔레콤 사내부부였던 전제우(34)·박미영(33)씨는 2015년 동반 퇴사를 했다. 이 부부는 둘 다 IT 개발자다. 노트북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를 꿈꿨다. 이를 위해 1년 동안 퇴사 계획을 짰다. 이들은 “수입과 지출을 분석해 불필요한 지출을 없앴다”며 “모아둔 돈과 퇴직금 에어비앤비 수입, 기업 외주 작업, 직접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수입 등으로 생계를 꾸리기로 했다”고 했다. 부부는 철저히 계획한 후 세계일주를 떠났다.
이 부부에게도 퇴사 후 어려움이 있었다. 1년 넘게 매달려 개발한 앱이 반응이 좋지 않아 돈이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퇴사 전 이러한 점 등을 각오했기에 버텨낼 수 있었고 내 삶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퇴사를 염두하고 입사하기도
입사 전부터 퇴사를 계획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트업 타운컴퍼니 윤경욱 대표는 창업 전 경험을 쌓기 위해 한 컨설팅 업체에 다녔다. 그는 “성공한 창업가들의 이력을 보니 경영전략컨설턴트 출신 비중이 높았다”며 “조직 체계와 산업 흐름을 배우기 위해 창업 전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고 했다.
윤경욱 대표(앞줄 왼쪽에서 첫번째)와 타운컴퍼니 직원들. /윤경욱 대표 제공
2012년 액센츄어에 입사한 그는 2년 반 동안 회사에서 창업을 위한 수련을 했다. 그리고 3가지를 배웠다. “먼저 제가 관심있는 분야가 유통 쪽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컨설턴트로 일하며 전략적 사고력을 키웠고, 네트워킹 맺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직장 생활 중 대학생 대상 공동구매 플랫폼이라는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한 후 2014년 퇴사했다. 단체 야구 점퍼(과잠), 단체 도시락, 전공서적, MT용 물품 등 대학생들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창업했다. 그의 회사는 빠르게 성장해 2017년 30억원의 매출을 냈다. 윤 대표는 “기존 회사 생활을 통해 시스템이나 사회생활에서 익혀야하는 기본적인 예의를 배웠고, 이러한 것들이 창업 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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