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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이치은 지음|알렙|161쪽
1998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가의 소설집이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문학을 본받아 철학 우화와 환상 문학 기법을 뒤섞은 단편 10편으로 꾸며졌다. 생전에 보르헤스는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된 뒤 느닷없이 시력을 잃고선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神)의 아이러니'에 탄식했다. 이 소설집은 보르헤스의 마지막 소원이 '시력을 찾는 대신 기억력을 잃고 자신이 쓴 책들을 마치 타인이 쓴 책인 양 다시 읽고 싶어한 것'이라고 상상해 가상의 논쟁을 그렸다. 방대한 독서의 기억으로 글을 쓴 보르헤스가 망각을 거친 뒤 자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 문학을 순수하게 만끽하고 싶어했으리라는 것.
다른 수록작 '죄책감의 확률'은 과거를 망각한 살인범이 자신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본 뒤 비로소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다. 자의식이 강할 때 깨닫지 못한 죄책감이 기억력을 잃는 순간 찾아올 수 있다는 것. 단편 '전당포'는 도박빚에 몰린 택시 기사가 시간을 저당잡힐 수 있다는 전당포를 찾는 이야기다. 그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맡기고 돈을 빌린다. 그는 부유한 친척의 유산을 상속받게 돼 전당포에서 과거를 되찾으려고 한다. 전당포 주인은 뜻밖에 '그 돈으로 당신의 기억을 돌려받을 것이냐, 아니면 타인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가져가겠는가'라고 제안한다. 기억과 존재에 관한 질문을 기이하게 몽환적으로 던지는 소설집이다. 보르헤스뿐 아니라 카프카, 이상(李箱)의 그림자도 어른거리며 수수께끼를 독자에게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