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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은 대자연, 농부, 요리한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
이탈리아의 파스타 요리 중에 '프로티 디 마레(frutti di mare)'라는 이름이 붙는 요리가 많은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이름은 '해산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지요. 프로티(frutti)는 과일을, 마레(mare)는 바다를 뜻해서, '프로티 디 마레'는 '바다의 열매'를 뜻합니다. 이 해산물 파스타의 소스로 가장 흔히 쓰이는 게 바로 토마토에요.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토마토 소스 베이스의 해산물 파스타의 위치란, 한국 해안 지방에서의 해물 된장찌개 정도 될 겁니다. 그만큼 널리 먹는 평범한 음식이지요.
최상의 토마토해산물 파스타의 비법
자 여기,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그러나 가장 빼어난 해산물 파스타 요리가 있습니다. 신선한 새우, 전복, 조개가 풍성하고, 파스타 면이 고르게 잘 익은, 토마토와 마늘, 올리브, 바질의 향이 맛깔스레 어우러진 빛나는 명작입니다. 싱가포르의 어느 일급 셰프가 120층 빌딩에 입점한 최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빚어낸' 작품이고요. 그런데 이 요리가 정말로 최고의 요리라면, 무엇 때문에 최고인 걸까요?
요리를 한 당사자라면, 재료의 신선함, 해산물을 익힐 때의 불의 세기, 그때 들어가는 화이트 와인의 퀄리티(질), 그리고 자신만의 비밀 토마토 소스 레시피 때문이라고 말할 겁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재료의 신선함'이라는 요소를 좀 더 캐보면, 우리는 다른 사실에 눈뜨게 돼요.
신선한 재료로 훌륭한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란, (상혼(商魂) 같은 것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창조욕과 모성애의 혼합물일 겁니다. 즉, 좋은 요리를 창조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 요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고(먹이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처음에는 신선한 재료를 찾게 되지만, 나중에는 신선한 재료를 만드는 근본적인 힘을 찾게 됩니다. 그리하여 흙과 미생물과 씨앗과 식물에 눈을 뜨게 되고,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요리 공간 바로 바깥에 텃밭을 가꾸길 원하게 되지요. 영국의 유명 셰프인 제이미 올리버와 같이 집에서 텃밭을 가꾸고, 텃밭에서 바로 나온 농산물로 요리하는 삶을 기획하게 되는 거지요.
물론 텃밭의 작물은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것이 기본입니다. 달걀은 텃밭 한쪽에 자리 잡은 열 마리 안팎의, 자유롭게 뛰어다니는(이른바 '방사') 닭들의 집에서 바로 나온 것이어야 해요. 소금을 직접 만들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게는 못 하니 최상급의 소금을 구해 옵니다. 새우, 전복, 조개 등도 직접 잡거나 키우면 좋겠지만, 여건이 어려우니 시장에 가서 최상 질의 것을 구해 오고요. 이렇게 해서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즉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동선에 균열이 없는(즉, 전일성을 갖춘) 최상의 다이닝, 최상의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가 완성됩니다.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 ⓒpixabay
태양에서 식탁까지
그러나 이것이 정녕 완성이고, 최상인 걸까요? '신선한 재료'를 찾는 이라면(요리사든, 먹는 사람이든) 작물재배법만이 아니라 태양에도 눈을 떠야 비로소 '신선한 재료'가 무엇인지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태양광을 당연시하지 말고 지구로 날마다 쏟아져 내리는 태양광자와 식물의 광합성에 눈을 뜨고 그것을 알아야 신선한 재료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안다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광합성을 알게 되면 (광합성에는 물 분자와 탄소 분자가 필요하니) 태양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 물의 순환에도, 기체(공기)의 흐름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파스타 면과 토마토라는 물질을 가능하게 한 생태 과정 일체에 눈을 뜰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저 '신선한 재료'를 만들어내는데 농부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최상의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의 생산에, 농부와 셰프가 관여하는 부분은 전체의 절반이 채 안 됩니다. 다른 많은 요소가 이 최상의 다이닝 뒤에 숨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농생태 과정의 영역에 속합니다. (따라서 식탁은 세 어머니, 다시 말해 농생태 과정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대자연, 농부, 요리한 사람이라는 세 어머니가 함께 와 계신 자리입니다.) 이 농생태 과정의 전모를 알아야, 즉 농장에서 식탁까지가 아니라 태양에서 식탁까지(Sun to Table)의 전 과정을 알아야 비로소 우리는 식탁 위의 파스타 요리가 어떻게 세계에 나올 수 있었던가를, 그걸 먹는다는 것이 어떤 행위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밀, 토마토, 올리브 등 '땅의 열매들'이 전부 광합성으로 세상에 나왔고, 새우, 전복(바다 달팽이), 조개 같은 동물들도 (바다에서)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당과 그 변형체들을 섭취하며 살아가는 개체들이기 때문이지요. 요컨대, 식탁 위의 모든 식생명들의 실존의 베이스, 생명의 베이스, 그리하여 우리 실존과 생명의 베이스는 다름 아닌 광합성입니다.
광합성은 정확히 어떤 활동인가요? 태양에서 지구로 쏟아져 내리는 태양광자, 그리고 대기의 흐름 속에서 식물의 체내까지 이동하는 탄소 분자, 전 지구적 물순환 과정 속에 있는 물 분자, 이 세 요소가 갖추어지면 (육지와 해양의) 녹엽식물의 체세포 내 엽록체는 광합성을 하게 됩니다. 엽록체로 흡수된 태양 광자는, 엽록체 내 특정 장소(싸일라코이드, Thylakoid)에서 전자로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또 ATP, NADPH로 합성됩니다. 이 두 물질은 당의 합성 과정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연료에요. 엽록체의 다른 곳(스트로마, Stroma)에서는 이른바 '칼빈 사이클'이 가동되며 (이 연료를 이용해서) 당을 만들어냅니다.
광합성의 최종 결과물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먹이(푸드)의 원형인 당(글루코스)이에요. 하지만 이것은 곧 식물의 체내에서 녹말, 셀룰로오스, 수크로스(자당), 지방, 그리고 단백질로 합성되죠. 그러니까, 예컨대 우리가 파스타 면을, 토마토와 마늘을, 양파를 먹을 때 섭취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당의 변형체들인 겁니다.
그런데 식물이 단백질을 만들어내려면 최초 생성된 당과 질산 이온을 결합해야 하는데, 이 질산 이온이라는 놈은 다른 곳이 아니라 흙에서 흡수되지요. 그러니까 세계의 먹이 그물이 성립되는 첫 단계에서(적어도 육지에서는 첫 단계), 광합성과 관계되는 농생태 과정 외에도 다른 농생태 과정 역시 관계되는 것입니다. 그 다른 농생태 과정이라 함은 첫째, 풍부한 유기분자가 활동하는 표토의 생태과정, 둘째, 식물의 수분을 매개하는 수분매개자들(바람, 곤충)의 활동이라는 생태과정입니다.
파스타 요리사들
정리해보겠습니다. 밀 한 톨, 토마토 한 알은 태양 광자의 이동, 탄소 분자의 이동, 물 분자의 이동, 표토의 생태과정, 수분매개자들의 활동, 이 5대 생태 과정들이 동시에 작동될 때에만 이 세계에 출현 가능합니다. 물론 이 과정들 중 일부에 개입하여 식용식물이 자라나고 꽃을 맺고 열매를 맺도록 일정한 농생태 환경과 식물의 씨앗을 관리하는 활동, 즉 농업이라는 제6의 요소가 있지만, 농부가 관리하는 농생태 환경은 사실상 표토 환경과 물 환경의 일부가 (온실과 같은 형태로 태양광자 환경을 일부 관리하기도 합니다만)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저 의존할 따름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의존과 개입을 거쳐 농부가 밀 한 톨, 토마토 한 알을 수확해내면 비로소 그걸로 저 싱가포르의 셰프는 자신의 업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싱가포르의 어느 셰프가 만든 최고의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 요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최고인 걸까요?
우석영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