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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송 부에나파크 경찰국 경관이 자신의 순찰차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죽을 때, 내가 이승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생각하는 이가 있겠는가"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돈벌이보다는 사회 정의에 기여하고 싶어 제복을 입었다."
부에나파크 경찰국 패트롤 디비전의 폴 송(44) 경관. 그는 '변호사 출신 경관'이란 매우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지난 2000년 가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2012년까지 어바인에서 로펌을 경영했지만 뜻한 바 있어 그 해, OC셰리프 아카데미에 입교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경관 제복을 입고 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변호사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범죄자 검거에 나서도록 만들었을까. 송 경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송 경관은 지난 197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미 육군 일등상사 출신 송순철씨, 모친은 한국에서 독일로 파견됐던 간호사 송진혜씨다.
1978년 미국에 온 송 경관은 UC어바인에서 사회생태학과 범죄학을 공부했고 사우스웨스턴 로스쿨을 거쳐 200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어바인의 인터내셔널 로펌 트라우트먼&샌더스에서 일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일이 많았지만 돈은 많이 벌었다. 포르셰도 타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2009년엔 다른 한인 변호사와 함께 로펌을 설립했다. "3년간 융자조정 관련 일을 했다. 당시 융자조정 사기가 판을 쳤다. 1000명이 넘는 주택 소유주를 만났다. '집을 잃고 싶지 않다'며 도와달라는 이들 중엔 한인이 꽤 많았다. 사기를 당한 남편이 죽거나 도망친 경우, 부부가 이혼하는 것도 많이 봤다. 마음이 아파 끝까지 고객을 돕기로 했다."
들어오는 돈은 별로 없는데 억울한 고객들의 케이스에 매달리다 보니 사무실 운영이 잘 될 턱이 없었다. 그간 모은 저축도 다 사라졌다.
그 사이, 송 경관의 가슴 속엔 '나쁜 사람들을 붙잡아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고 싶다. 어차피 세상은 단 한 번 사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자라났다. 송 경관은 급기야 30대 후반 나이에 OC셰리프 아카데미에 입교를 결심했다.
"OC셰리프 아카데미는 전국에서도 체력 훈련이 힘든 곳으로 소문이 난 곳이다. 하나님이 내가 경관이 되는 걸 원치 않나란 생각마저 들었다. 기도를 많이 하며 참고 버텼다."
6개월 훈련 기간 중 매사에 이를 악물고 덤빈 송 경관은 어린 동기생들로부터 리더로서 인정을 받았다. 38명 동기들의 전원 찬성으로 후보생 대표로 뽑힌 것이다.
졸업 후 어바인 경찰국, 샌버나디노 카운티의 업랜드 경찰국에서 근무한 송 경관은 5개월 전 부에나파크 경찰국으로 옮겨 왔다.
"부에나파크 경찰국은 OC도시 중 인종적으로 가장 다양하고 한인 비율이 가장 높아 매력을 느꼈다. 전체 인원이 85~90명인데 한인이 9명쯤 된다. 아시아계 경관 비율도 15%~20%에 달하는데 이런 경찰국은 찾아보기 힘들다."
업랜드에서 근무한 송 경관이 보기에 부에나파크는 평온한 곳이다. 강력 범죄가 적고 대개의 범죄는 절도다. "한인 상권은 안전한 축이고 애너하임 근처에서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 절도 케이스 중 다수는 마약 구입 자금 마련을 목표로 벌어진다."
송 경관은 기억에 남거나 보람을 느꼈던 사건에 대해 묻자 "업랜드 시절 차량 번호와 용의자 신상 정보가 없는 살인 사건 수사에 투입돼 당일 해결에 성공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보람을 느낀 일은 시속 100마일로 도주하다 전복돼 화염에 휩싸인 SUV에서 절도 용의자를 구출한 것과 자살하려던 이를 설득해 목숨을 구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경험을 더 쌓아 형사가 되는 것이다. 변호사 시절 사기 케이스 조사를 많이 했는데 당시 경험을 살려 신분 도용 범죄와 사기 사건 수사를 맡고 싶다"고 말했다.
송 경관은 변호사 일을 완전히 놓진 않았다. 그는 틈틈이 뉴포트비치의 아덴트 로 그룹에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