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풀기 퀴즈부터 하나 드린다. 한국에서 60대 이상이 가장 선망하는 부류는? 답은 교사 부부다. 이유가 뭘까? 맞다. 은퇴 이후 누구보다 유복한 삶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노후에 부부 몫으로 매달 500만~600만원의 연금이 또박또박 나온다는 게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생활비 걱정이 없는 건 물론 은퇴 생활자들의 '로망'인 부부 동반 골프나 해외 여행도 꿈이 아닌 현실일 수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연금의 힘을 실감했던 건 10여년 전 부모님 댁에 갔다가 빨래 너는 아버지를 처음 뵈었을 때다. 현역 시절엔 자식들 얼굴 볼 짬도 없이 바쁘셨기에 솔직히 집안일을 하시는 모습은 상상조차 못 해봤다. 그런 분이 "빨래는 힘있게 턴 뒤에 널어야 구김이 안 생긴다"며 젖은 옷가지를 탈탈 털고 계셨던 거다. 놀라서 입이 쩍 벌어진 내게 아버지가 싱긋 웃으며 하신 말씀은 이랬다. "내 연금은 쥐꼬리만 한데 엄마 건 훨씬 많잖아. 앞으론 엄마한테 잘 보여야 돼." 그렇다. 우리 엄마 역시 '연금 부자'인 퇴직 교사다.
필자가 경제부 기자로 일하던 2000년대 초 재테크 전문가들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단어가 바로 '플로우(flow)'다. 100세 시대엔 부동산이나 목돈보다 현금 흐름(cash flow)을 챙기는 게 훨씬 더 중하다고 했다. 일단 노후에 필요한 생활비부터 계산해본 뒤 그 돈이 죽을 때까지 꾸준히 나올 방법을 찾는 게 재테크의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한다는 거였다.
요즘 동네북 신세가 돼버린 국민연금을 보면서 그 때 그 얘기가 새삼 떠올랐다. 비록 공무원이나 군인, 사학 연금에 비해 용돈 수준에 불과할지라도 매달 규칙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국민연금은 평범한 서민들이 절대 포기해선 안 될 '노후 현금 흐름'이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계산 하나 해볼까 한다.
은퇴 이후 월 200만원씩 생활비가 드는 40세 직장인이라 치자. 60세 정년을 채우고 85세까지 산다면 대략 6억원의 노후자금이 필요하다(200만원X12달X25년). 퇴직까지 20년간 월 214만원씩 꼬박 저축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연 2% 금리 가정). 엄두 내기 힘들겠지만 국민연금을 더한다면 그래도 해볼 만하다. 매달 100만원씩 20년간 받을 경우 연금 수령액은 줄잡아 2억4천만원(65세 지급 개시 기준). 6억원에서 이를 뺀 3억6천만원만 모은다면 매달 128만원씩 저축하면 된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산식이긴 하지만 각자의 구체적 상황을 집어넣어도 결론은 매한가지다. 아무리 못 미더워도 국민연금만큼 든든한 '믿을 구석'이 없단 소리다. 최근 5년 만에 나온 재정 계산 결과가 불신과 불안을 눈덩이처럼 키운 걸 안다. "폐지하자"부터 "탈퇴하겠다"까지 별별 소리가 다 나돌지만 결코 정답이 아니다. 어떻게든 이 참에 제대로 손봐서 많은 사람들이 오래오래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단 "적게 내고 더 많이 받게 해주겠다"는 사탕발림은 절대로 믿지 말자. 불가능할뿐더러 가뜩이나 힘겨운 자녀 세대를 위해 꿈도 꿔선 안 될 일이다.
"고객님이 향후 받게 될 예상 연금은 매월 000원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이 1년 전 보내준 안내서를 꺼내 오랜만에 찬찬히 들여다봤다. 어떤 개혁안이 되든 어차피 받는 돈이 줄게 될 테니 계산을 다시 해봐야지 싶다. 무더위 끝자락에 모두를 열 받게 만든 이번 사태가 과연 우리 노후는 안녕할지 짚어보는 계기라도 된다면 다행이겠다. 금쪽같은 우리네 은퇴 자금을 잘 굴리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겠다는 다짐도 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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