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최근 공개한 흑백 영상에는 태극기를 차량에 걸고 이동하는 시민군의 비장한 모습이 등장한다.
13일 태평양 건너 캐나다에서 'Stephen Lee'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교민 이윤희(58) 씨는 영상 속 태극기 옆 청년이 스무 살 시절 자신이라며 38년 전 기억을 증언했다.
이 씨는 연합뉴스와 주고받은 이메일, 카카오톡 메신저, 전화통화에서 "38년 만에 보는 내 모습에 감개가 무량하고 눈물이 난다"라고 말했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이 씨는 조선대학교에 다니던 둘째 형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자전거를 타고 전남 나주 집을 나섰다.
그 날 낮 광주 금남로 전남도청 앞에서는 계엄군 병력이 자행한 집단발포로 수많은 시민, 학생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이 씨가 광주 경계에 접어들었을 때 또래 청년이 모는 자동차 행렬이 시 외곽에서 도심을 향해 달리다가 멈춰 섰다.
광주에서 군인들이 사람을 죽인다는 외침을 듣고 이 씨도 자전거를 내버려두고 자동차에 올라탔다.
광주 남구 백운광장에 이르러 자동차에서 내린 이 씨는 시위행렬에 휩쓸려 도청까지 걸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상을 목격한 그는 운전 실력을 십분 발휘해 시민군 일원으로 항쟁에 합류했다.
둘째 형 행방을 찾는 일은 팽개쳐 둔 채 음식과 무기 등 동료 시민군에게 필요한 물자를 자동차로 날랐다.
중무장한 계엄군 병력에 맞서기 위해 경찰 무기고가 있는 담양까지 차를 몰기도 했다.
광주 송암동 연탄공장 주변을 지날 때는 계엄군 총탄에 스치는 상처를 입는 등 생사 고비를 넘나들었다.
그는 5월 27일 계엄군이 진입하기 직전 도청을 빠져나간 시민군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젊은이들은 꼭 살아남아서 오늘을 증언해달라'는 시민군 지휘부 호소에 고등학생이 섞인 동료 대여섯과 함께 도청 뒷담을 넘었다.
이 씨는 그해 군에 입대했다. 전역 후에는 서울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갔다.
오월 영령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어 광주를 떠났고, 15년 전에는 이역만리 떨어진 캐나다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항쟁 대오에 함께 나섰던 또래 친구는 1980년 5월의 기억에 고통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씨는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시절 도청과 연결된 전남경찰청에서 확보한 기록 일부를 여전히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포명령자 등 아직 밝혀내지 못한 항쟁 진상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한국에 방문하면 5·18기록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오월 영령에게 면목없지만, 이제는 항쟁유공자로 인정받아 1980년 5월의 참상을 당당하게 증언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5·18기록관 관계자는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흑백 영상을 보고 영상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간직한 기억과 기록물을 모으다 보면 아직 밝혀지지 않는 5·18 진상도 어느 순간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