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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의 님과 남(4)


상대가 말하는 동안 내 생각·판단 내려놓는

'공감적 경청' 해야 제대로 된 귀 기울이기


세상이 좋아지다 보니 전자기기와도 대화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간혹 한두 마디 나누다 보면 신통방통하기도 하지만, 재미가 길게 가진 않습니다. 그저 매뉴얼에 따른 대화가 길게 이어질 리 만무하죠. 우리에겐 진심으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상대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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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Freepik]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바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폴 틸리히의 말입니다. 사랑에 관한 유명한 명언 중 하나죠.

 

눈이나 입과 달리 두 개의 귀는 움직이지 않아도 이미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자주 싸우는 부부를 보면 대게 모양새가 비슷합니다. 그러한 상태가 되기까지 여러 상황이 부부를 스쳐 갔겠지만, 상대의 말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본인의 이야기만 합니다.

 

이러한 고민으로 코치를 받는 분들은 나는 괜찮은데 모든 문제의 시작은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이혼을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정서적 이혼’ 상태의 부부인 셈이죠. 이 단계가 지속하면 아이들을 품에서 떠나보낸 후 유행 아닌 유행이 되어버린 ‘황혼 이혼’으로 닿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聽’과 ‘聞’의 차이  

 

듣는다는 뜻의 많이 쓰이는 한자어 두 개가 있습니다. 聽 (들을 청)과 聞 (들을 문). 둘 다 듣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聽 (들을 청)은 영어의 listening과 같습니다. 내가 의도와 의지를 갖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겁니다. 聞 (들을 문)은 영어의 hearing과 같습니다. 의도나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내 귀에 들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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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Freepik]

 

나는 아내, 혹은 남편과의 대화에서 상대의 말을 어떻게 듣고 있나요? 의학적인 의미에서의 ‘경청’을 찾아보면 환자의 말 뿐 아니라 표정과 거동까지 모두 포함한 표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로 인해 환자 스스로의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지고, 정서적인 해방감을 갖게 되어 치료적으로도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의사는 아니지만 때론 ‘경청’을 통해 누군가의 몸 혹은 마음의 병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상대가 내 아내나 남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경청의 한자 뜻을 풀어보면 그 깊은 의미가 다시금 와 닿습니다. 여러 책이나 강의 현장에서 한 번 쯤 들어봤음직 한데도, 강의 때면 또 많은 분들이 사진으로 내용을 담아가느라 바쁩니다. 이미 알았다 하더라도 다시금 ‘경청'에 대해 생각하고 공감하는 순간인 듯 합니다.

 

傾聽 (경청)=기울 경+들을 청.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듣는다는 의미. 

傾 (기울 경)=잘 듣기 위해 상대에게 나를 기울임.


내 얘기 좀 들으라고 상대를 끌고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눈 높이, 마음 높이에 맞게 나를 기울여 맞추는 것이 우선입니다. 일단 그 행동만으로도 상대 이야기에 동참 하려는 내 의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활짝 열리긴 힘들다해도 상대가 마음을 움직이는 신호가 된다.

 

聽 (들을 청)의 한문을 나누어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들을 청의 앞 부분은 ‘耳 (귀 이)’와 ‘王 (임금 왕)’으로 임금의 이야기를 듣 듯, 혹은 임금이 백성의 이야기를 듣 듯 성심을 다해 들으라는 뜻입니다. 뒷 부분의 위는 ‘十 (열 십)’과 옆으로 누운 ‘目 (눈 목)’으로, 열개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듯 살피라는 뜻.

뒷부분 아래의 ‘一 (한 일)’과 ‘心 (마음 심)’은 한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 공감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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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exels]

 

경청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과 마음으로 함께 듣는다는 의미가 담긴셈이죠. ‘듣기'는 5가지 단계가 나뉩니다.

 

첫 번째 무시하기.

두 번째 듣는 척 하기(경청을 가장하기).

세 번째 선택적 듣기(소극적 경청).

네 번째 적극적 경청.

다섯 번째 공감적 경청(맥락적 경청).

 

나의 패러다임이 아닌 상대방의 생각으로 들어가 말 그대로 ‘경청’의 의미로 온전히 들어주는 것은 어느 단계부터 일까요? 적극적 경청의 경우 상대의 말을 잘 듣고자 언어나 비 언어적 반응을 통한 적극적 자세를 취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할 말을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이 서게 되면, 그 후로는 더 이상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온전한 ‘공감적 경청’입니다. 쉽지는 않겠지요. 관계 개선을 위해선 노력에 노력이 필요합니다.

 


『혼창통』의 저자 이지훈 박사는 ‘듣는 척 하기’를 ‘배우자 경청’으로 달리 표현합니다. 남편이 신문이나 TV를 보며 아내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거나 아내가 말하는 것을 가로막는 경우를 뜻해 이렇게 이름 붙였다 합니다. 물론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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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igsmile]

 

책 속에 부부 간 경청의 단계를 표현하는 짧은 예시가 등장합니다. 아내가 부부 동반 모임을 준비하며 파란 옷을 입을까 빨간 옷을 입을까 고민하며 남편에게 묻습니다.

 

-배우자 경청 레벨 남편 “바빠 죽겠는데 쓸데없이 그런 걸 왜 물어?”

-소극적 경청 레벨 남편 “둘다 좋네.”

-적극적 경청 레벨 남편 “당신은 빨간 옷을 입는 게 좋아.”

-공감적 경청 레벨 남편 “당신이 모처럼 나가는 모임이라 신경쓰이나보네. 내 생각엔 새로 산 빨간 옷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마음과 마음 오갈 때 경청 완성  

 

아주 짧은 대화이지만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난 주말 , TV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보며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이효리씨는 요가를 가르치며 함께 배우는 커플에게 표정을 짓지 말고 무표정으로 서로를 잠시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슴과 가슴을 맞대어 서로를 꼭 안아보라고 권합니다. 서로를 잠시 무표정으로 바라보면 어떤가요? 서로에게 보이는 표정은 나에게 익숙한 표정인가요? 아님 낯선 표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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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스틸컷 [사진=JTBC 제공]

 

무표정이 이미 익숙한 부부라면 경청의 첫 번째, 서로에게 온전히 기울임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무표정이 어색한 부부라면, 나를 위해 다양한 표정으로 노력해주는 상대에게 감사함을 표현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입과 귀로 통하는 경청과 더불어 마음과 마음이 오갈 때 경청은 완성됩니다. TV 속 장면처럼 가슴과 가슴을 맞대어 마음을 다해 꼭 안아봅니다. 서로의 가슴이 가슴으로 말하는 소리를 들어줍니다.

 

나랑 살면서 많이 애썼구나!! 나랑 맞추고 사느라 많이 힘들었구나!! 그렇게 마음으로 전달되는 상대의 소리에 맞춰 나의 손으로 상대를 토닥토닥 인정해주세요. 경청을 위해 나의 생각과 판단은 잠시 내려놓는 것, 온전히 상대를 향하는 서로의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경청의 태도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찬사 가운데 하나다.’ 데일 카네기의 말입니다.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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