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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의 님과 남(10)
심한 잔소리는 정신적 외상 남기는 언어폭력
눈에 보이는 '팩트' 말하고 상대의 대답 반복을
일을 마치고 들어왔는데 집이 어질러져 있다면 집에 있던 아내나 남편에게 처음 꺼내는 말은 어떤 말인가요?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 크든 작든 재산상의 손실을 보게 되었을 때 상대에게 어떤 말을 먼저 꺼내게 될까요?
대개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내가 듣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겠죠.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말로 우리는 때때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합니다. 부부 사이에 너무나 익숙한 그 단어. 바로 ‘잔소리’입니다.
부부 사이에 너무나 익숙한 그 단어. 잔소리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잔소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잔소리 [명사]
1.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그 말.
2.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또는 그런 말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잔소리는 말 그대로 쓸데없는 필요 이상의 말입니다. 2013년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명랑해결단’에서 ‘정말 듣기 싫은 아내의 잔소리 BEST 5’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5위 당신이랑 소파랑 한 몸이야?
4위 양말 좀 제대로 벗어놓으면 어디가 덧나?
3위 제발 좀 씻어!
2위 그러게 술 좀 작작 마시지
1위 여보~
아내의 잔소리 1위 ‘여보~’
1위에 오른 ‘여보~’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당연히 다정하게 부르는 여보는 아니겠지요. ‘여보~’라고 하는 순간, 말의 억양과 표정에 불만이 한껏 묻어나 있겠지요. 부부간의 다정한 호칭이 어느 순간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된다니 웃음이 나면서도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이렇듯 잔소리하면 대게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소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정현 교수에 따르면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 중에 은퇴 남편을 둔 여성이 꽤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호소하는 것은 모두 ‘시시콜콜한 남편의 잔소리’ 라고 하네요.
남편들의 잔소리. [사진 smartimages]
은퇴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남편들의 잔소리!! 아내이든 남편이든 잔소리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죠. 김정현 교수는 가랑비에 옷 젖듯 잔소리도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일반적인 언어폭력처럼 우울증, 불안 장애, 급성 스트레스 증후군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지만, 정신적인 외상을 남기는 거죠.
기본적으로 잔소리는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너는 틀렸으니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잔소리로 표현되죠. 그런데 한두 번 잔소리에 사람이 쉽게 변하던가요? 서로가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 방식이 같을 수 있나요? 나와 같지 않다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거죠. 알면서도 종종 놓치는 사실들입니다.
잔소리가 쌓이면 상대방의 행동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되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됩니다. 숨이 막히거나 믿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죠. 사소한 잔소리가 쌓일수록 부부간의 대화가 줄어들게 됩니다. 문제는 하는 사람은 내가 하는 잔소리의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본인이 얼마나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감하면 잔소리 줄어
잔소리를 줄이는 첫 번째는 ‘공감'입니다. “공감하세요!” 라고 말하면 “알겠어요. 공감 좋은 건 잘 알겠는데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데 어떻게 공감하나요?” 라고 묻습니다. 꼭 상대의 행동이나 말에 동의할 필요도 없고, 사실 늘 동의를 구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너의 모든 것에 동의한다는 의미의 공감이 아니라,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공감입니다.
절대 노(No)의 거절
똑같은 거절도 ‘절대 노(No)의 거절’과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공감한 후 거절’을 실험을 통해 비교해 보았더니 의견을 공감한 그룹의 만족도가 높았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상대에 공감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의 말을 반복해 보는 겁이다. 이를 ‘백트래킹(Backtracking)’이라고 말합니다.
상황에 대해 나의 판단이 아닌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말한 후에 상대의 말을 반복해 말해보는 겁니다. 어질러진 집을 보고 나의 판단만으로 “도대체 하루종일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는 투의 잔소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사실 “집이 많이 어질러져 있네. 오늘 많이 바빴어?” 라고 말한 후 상대의 대답을 듣고 그 말을 반복해서 말해보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공격을 받게 되면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되려 반박하려 하죠.
“너는 그래서 안 돼!”가 아니라 “아~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로 말의 패턴을 바꿔보는 겁니다. 가족 간의 대화에서 ‘No, Because~’의 패턴이 많다면 ‘Yes, But~’ 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요?
대문호 톨스토이의 비극적 말로
톨스토이 부부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는 수많은 작품이 사랑을 받았지만 그의 노후 생애는 비극적이었는데, 그 이유가 결혼에 있었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부인과의 가정불화를 견딜 수 없어 집을 나왔다가 어느 시골역대합실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한 말은 아내를 절대로 자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톨스토이 부인의 잔소리와 불평, 신경질이 빚어낸 비참한 종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하면 상대방이 돌아갈 곳이 있을까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하면 상대가 돌아갈 공간이 생깁니다. 나와 다른 상대의 행동을 비난하지 말고, 왜 그랬을까 이해해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비난하는 말투는 곰 쓸개처럼 쓰고, 사랑스러운 말투는 설탕 뿌린 입술처럼 감미롭다.’ 낭만주의 시대 영국의 어느 무명 시인이 노래한 시의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내 아내, 내 남편을 향한 나의 입술에는 지금 무엇이 묻어있나요?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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