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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의 님과 남(15)

공부 좀 하려고 앉으면 책상 정리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고들 합니다. 쉬는 날이라 집에 있을라치면 뭐 그리도 많은 먼지가 눈에 뜨이는 건지 종일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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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정리벽인지 외출하려고 나갈 때면 이것저것 정돈하느라 내 몸 꾸미는 것보다 더 품이 든다.

 
무슨 정리벽인지 외출할 때면 귀가해서의 깔끔한 집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정돈하고 나가느라 내 몸 꾸미는 것보다 더 품이 듭니다. 간혹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무슨 살림집이 모델하우스 같다며 웃습니다.
 
가끔 너무 유난을 떠는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 좋기만 한 나는 귀가한 남편에게 집에 오면 늘 깨끗하니 좋지 않으냐며 슬쩍 칭찬을 구하는 말을 흘려 봅니다.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나의 노력을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질문 안에 있는 셈이죠. “그래 그래~ 좋아 좋아”하던 남편은 언젠가 한 번 나에게 슬쩍 말했습니다. 가끔은 집에서 푹 쉬고 싶은데, 쉬는 공간이 아니라 더 조심해야 하는 공간인 것 같아 편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에요.
 
순간 나도 모르게 욱~ 하고 성질이 올라와 ‘그럼 정신없이 지저분한 게 좋으냐’는 투의 맘과는 다른 말을 꺼내 놓았지만 그리 말할 건 아니었는데 하며 돌아서 후회했습니다. 
 
 
역지사지와 황금률 법칙

소통에 대해 글쓰기를 하고 강연을 하면서 늘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는 건 ‘역지사지’, ‘황금률의 법칙’입니다.
 
밖에선 그리도 외치고 다니면서 저 역시 집에 들어오면 먼저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어째 이런 것도 이해 못 해주느냐며 왜 인지 내 입장을 상대가 먼저 알아주길 바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또 자주 접하게 되는 지겹도록 익숙한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깜빡깜빡하게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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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초기엔 좋은 관계를 위해 상대의 표정과 기분을 살피게 되고, 결혼하곤 나의 입장에서 더 바라게 된다
 
한참 전으로 돌아가 두근두근하던 연애 초기를 생각해 보면 어떤가요? 좋은 관계를 위해 내가 좀 싫어해도 상대가 좋아하는 일이면 하려 하고, 내가 좋아도 상대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상대의 표정과 기분을 살피게 됩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일상을 보내면서도 설레던 처음처럼 늘 그리 살기가 쉽던가요? 처음과는 반대로 내가 좋은 건 해주기를, 내가 싫은 건 안 해주기를 나의 입장에서 더 바라게 되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것도 참고, 싫어하는 것을 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싫은 것은 상대방에게도 안 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대접받고 싶으면 상대에게도 그렇게 해주는 것이 더 나은 관계의 법칙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싫고 상대도 싫은 것은 당연히 안 하고, 내가 좋고 상대도 좋은 것은 당연히 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의 많은 부부를 보자면 그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 상(上)에 나오는, 처지가 바뀌면 모두 그러했을 것이라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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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역지사지는 맹자의 이루편 上에서 '처지가 바뀌면 모두 그러했을 것'이라는 '역지즉개연'에서 비롯된 말이다


 황금률은 그리스도교의 윤리관을 표현하고 있는 말입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와 누가복음 중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죠.
 
황금률이란 말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3세기 로마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이 문장을 금으로 써서 거실 벽에 붙인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뿐 아니라 이 황금률의 법칙은 다른 많은 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논어에서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불교나 다른 많은 종교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권하지 말 것이며 내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대하라고 말하죠.

올해 지킬 가치는 '인내'라 한 남편의 진의는?

너무 익숙해 또 그 말이야 싶기도 하지만, 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되면 다시금 떠올려집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지인을 만나 만나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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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좋음을 상대방도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강요하는 건 아닐까? 

 
나의 좋음을 상대방도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강요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올해의 지킬 가치를 인내라 했던 남편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집이 편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그조차 나의 기준에 맞춰 인내를 강요하는 대상이 내가 아닐까 염려될 때가 있다 하였더니,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묻습니다.
 
역시나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말자!
 
좋은 일이어도 좋음의 기준이 상대와 나에게 똑같지 않을 텐데, 좋은 건 다 좋은 거라며 나의 좋음을 아내나 남편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해줄 것이라 믿었던 행동들이 모르는 사이 서로 간에 조금씩 벽을 만들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답을 정해둔 채 그저 예의상 혹은 절차상 묻고 행동하는 답정녀, 답정남이 혹시 남편을 대하는 나,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모습은 아닐지 가만히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지금껏 그렇게 살았어!” 라는 말은 살짝 넣어 두시고요.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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