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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의 님과 남(16)
한 인터넷 블로그에서 본 글이 생각납니다.
"아내는 싱크대에 쌓인 그릇을 알아차릴 수 있고, 아이들이 아직 숙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지만, 남편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한참 웃었습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진 일간스포츠]
이사 후 두 달 정도 지났는데도 매일 정리의 연속인 요즘입니다. 언제쯤 정리가 끝나려나 청소하고 돌아서면 금세 또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들이 눈에 밟힙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이사 전 친구에게 선물 받은 스투키 화분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신랑은 식물 키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집에 있는 화분 담당은 대게 남편이죠. 그러니 이사하고 두 달을 문득문득 궁금해하다 질문을 한 셈입니다. 공기정화에 좋기도 하고 딱히 햇빛을 보지 않아도 잘 자라는 화분이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락거리는 드레스룸 서랍장 위, 그것도 딱 눈높이에 잘 올려두었기에 봐도 몇 번은 봤을 것 같은데, 신랑 눈엔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더랍니다. 창가에 옹기종기 화분이 모여있는 곳을 아무리 봐도 없다는 거죠.
신랑의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황당함이 몰려오는지 정말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 생각해 보니 늘 보이는 곳이라는 생각도 나의 머릿속에만 담긴 생각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간혹 다투는 부부 사이의 대화를 듣다 보면 어찌 그리 당연한 걸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는 투의 내용이 많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된다는 거죠. 그러나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내 입장’에 대한 말입니다. 그 말에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았어도 당연히 당신은 나의 입장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깁니다.
부부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의 입장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진 pixabay]
부부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의 입장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진 pixabay]
그렇게 생각과 마음을 나눌 기회 없이 시간이 흐르면 그토록 사랑해 함께 하기로 한 나의 아내나 남편은 나와는 말이 안 통하는 상대가 돼버리는 거죠. 말을 시작하곤 5분이나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말소리가 올라가는 내가 잘못이라며 대화를 일방적으로 한쪽에서 끝내버리는 부부들의 모습도 왠지 익숙합니다.
내 입장만 내세우면 불통
이해심 깊은 부부일지라도 상대방의 입장보다 내 입장이 앞서나가게되는 순간이 있다. [사진 pixabay]
전 감사하게도 평소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남편의 깊은 이해심에 대한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저 역시 천방지축 저랑 잘 살아주는 남편에게 아주 고마워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저도 사람인지라 종종 잊습니다. 상대의 입장은 없고 내 입장만 눈덩이처럼 커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옵니다.
며칠 전입니다. 고민하다 요즘 주부들 사이에 핫 아이템이라는 건조기를 들여놓기로 했습니다. 제가 집에 있는 날이라면 좋았을 텐데 하필 일정이 있던 주말이라 남편이 건조기를 설치하기로 했죠. 허리가 안 좋다 보니 전자제품 판매장에 가서 선반의 높이를 확인하고, 바닥에 놓아두기보다는 선반을 함께 사 건조기를 위에 올리고 그 아래엔 자주 안 쓰는 짐들을 놓아두면 좋겠다는 말을 했죠.
건조기 설치를 놓고 벌어진 해프닝
그런데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제 눈엔 떡하니 선반 아래쪽에 놓인 건조기가 보입니다. 그걸 보는 순간 이 사람은 생각이 있나 없나 하는 생각에 욱 화가 먼저 올라옵니다. 당일 오전에 외출하면 다시 일러두지 않았다 해도, 평소에 나눈 내 말은 어디로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든 거죠. 당연히 말투와 표정이 좋을 리가 있나요.
전후 사정없이 ‘도대체 내 말은 귓등으로라도 듣는 거야?’의 심정이 되어 버립니다. 한데 감정이 가라앉고 상대를 볼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화날 일은 또 아닙니다. 위치야 다시 연락해 얼마든지 옮길 수 있는 일이고, 남편의 이유도 있을 터인데 순간의 감정과 나의 표현이 마치 남편을 늘 그런 사람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다음 날 남편에게 조용히 말을 꺼내봅니다. “남녀가 그렇게 사랑해 만나도 한집에서 같이 사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 그렇게 저희 부부도 웃다 울다 하며 일상을 만듭니다.
부부 사이에 작은 오해들이 쌓이면 더이상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사진 smartimages]
다함께연구소 배태훈 소장의 글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저녁 식탁에 생선 한 마리가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도 이 생선은 식탁에 올라온 모습 그대로 있었다네요.
당시 부부는 생선에 대해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부부는 그때의 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죠. 결혼 전 아내의 집에서는 늘 아버지가 생선 살을 발라 주셨답니다. 남편이 생선 살을 발라야 하는 건 아내 입장에서 너무 당연한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남편의 집에서 생선 살 바르기는 어머니의 몫이었죠. 말은 안 했지만, 생선 바르기는 서로 간에 모두 내가 할 일은 아니었던 겁니다. 결국 서로 발라주기를 기대하다 식사가 다 끝나버린 겁니다.
두 부부 사이엔 다행히 그저 에피소드로 남았지만, 이런 작은 일이 상대를 이해할 기회 없이 쌓이고 응어리가 되면 상대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서로의 행동에 대한 연유는 모른 채 말이죠.
가족은 왠지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지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떤가요? 육체적으로는 같이 있다 해도 서로 만의 시간과 생각에 빠져 진짜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르는 것 막히면 탈이 나느니
동의보감의 '통즉불통,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은 모든 흐르는 것은 막히면 탈이 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한의사협회]
설 연휴입니다. 자칫 부딪힐 일이 많아지기도 하는 시기죠. 원래 그런 사람 혹은 당연히 이해해 주어야 할 상대방이 아니라 연휴 하루쯤은 명절 고생한 상대방을 위해 서로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아 힘들었어!! 그러니까~” 식으로 요구하기 전에, 수고를 찾아 인정하고 고마움을 표현해보려 노력해 주세요.
남편은 아내의 눈엔 너무 잘 보이는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을 전혀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내는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다는 빠른 결론이 아니라 그저 지금의 감정을 알아주길 먼저 바랄 수 있습니다.
불행한 부부들을 들여다보면 서로에 대한 빈번한 오해가 있지만, 서로가 오해받아 왔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 들여다봐야 알 수 있고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해야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받아들여집니다.
동의보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 (通卽不痛, 不通卽痛)' 이란 말이 있습니다. 막힌 것을 통하게 해주면 아픈 것이 없어지며, 막혀서 통하지 않으면 통증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의학 서적이니 일차적으로는 기나 혈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모든 흐르는 것은 막히면 탈이 납니다.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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