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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의 님과 남(19)
관계에 문제가 생긴 부부 가운데 이를 개선해 보려고 상담센터를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보다 인식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상담센터를 찾는 것 자체를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알리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부부 사이의 일을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아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남녀의 차이라기보다는 성향의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한국의 경우 대개 아내보다는 남편이 상담을 피하려 합니다. 그리고 나이든 부부 중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뭘 이제 와서 유난스럽게 그러느냐는 분도 많습니다.
부부가 상담센터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사진 freepik]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이를 인지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밟는 겁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하고 전문가를 찾지만 사람의 일인지라 상담이 끝난 후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미리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지난해 말 미국의 한 대학 연구팀은 부부관계의 문제를 인지하고 상담을 시작한 부부가 앞으로 이혼하게 될지, 아니면 관계가 좋아질지를 시작단계에 예측하는 인공지능(AI)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연구를 위해 먼저 스트레스가 심한 부부 134쌍을 대상으로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음성자료를 기계에 입력하도록 했습니다. 음성자료에는 대화의 실제 의미는 제외하고 부부가 얼마 정도의 시간을 대화로 보냈는지, 대화를 언제 어떤 억양으로 나누었는지만 포함했습니다. 순수하게 부부가 대화를 나눌 때의 음성과 관계유지 기간만을 자료로 분석한 셈입니다.
부부 관계 문제, 말 내용과 큰 상관없어
사람 사이 관계의 문제를 그렇게 단순한 자료로만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차후 관계를 회복한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를 비교해 보았더니 생각보다 AI의 자료 분석 결과가 예리했습니다. 부부가 무슨 말을 했는지와는 별개로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지 않고 잘 경청했는지, 대화 중간 언성을 자주 높이진 않았는지에 대한 기록과 분석만으로도 꽤 신뢰도 높은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물론 이번 연구의 목적은 정신건강연구자 등 관련 분야 전문가에게 참고 자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가 평소 얼마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와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려 하는지, 또 나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분위기가 좋은지 등이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말투는 논리가 아닌 감정이다. 자신의 표정과 목소리가 주는 느낌만으로도 상대방의 반응이 달라진다. [사진 Freepik]
일본의 심리학자 나시토 요시히토의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는 책을 보면 상대방을 설득할 때 ‘무슨 말을 할까?’보다 ‘어떤 식으로 말을 전할까?’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말하는 내용 따위는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의 김범준 작가는 말투는 논리가 아닌 감정이라고 말하며 논리정연하다고 해서 그것이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부부가 상담을 받아볼까 하는 고민의 단계까지 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말을 나눌 때 상대에게 전해지는 느낌은 생각보다 관계에 크게 작용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인데다 자막도 없는 영화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목소리와 표정만으로도 어떤 상황인지는 대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가 주는 느낌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됩니다. 공격적인 목소리로 나의 말을 자르는 경우라면 내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이 나를 헤치려고 드는군. 방어해야겠어.’ 그러나 서로를 헤치고 싶은 부부가 있겠습니까?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말 속에 자연스레 묻어나옵니다. 잘 아는 편한 사이라 생각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내 아내, 내 남편에 대해 지금 어떤 감정을 더 많이 품고 계신가요?
불통의 사막서 벗어나는 '부부 장점 적어보기'
행복수업. 최성애 지음.
우리나라 최고의 감정코칭 전문가인 최성애 박사는 행복수업이란 책을 통해 ‘부부의 장점 적어보기’를 권합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의 경우 처음엔 하나도 적기가 힘이 들지만, 개수를 하나씩 늘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50개를 채우게 된다고 하네요. 그리고 적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적은 상대의 장점을 소리 내어 읽어주기 등을 통해 꼭 전달하라고 합니다.
‘타이어의 법칙’이 있습니다.ᅠ사막에서 차가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타이어를 빵빵하게 해 빠져나오려고 할 것이 아니라 타이어의 공기를 빼내 압력을 줄이는 일이 먼저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타이어가 평평해져 바닥 표면이 넓어지면서 모래사막을 빠져나오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불통의 사막에 빠져들어 나오려 애써보지만, 서로의 기준으로 압력을 채우려고만 하는 건 아닐지…. 오래된 부부 사이일수록 서로 간의 압력을 빼내는 노력이 필요하진 않을까요? 압력을 빼는 첫 단계로 내 옆의 아내와 남편의 잊었던 장점 적어보기를 권해봅니다.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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