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 내 설치된 키오스크 모습. 외형은 비슷해 보이지만, 각 매장에 따라 고령자 접근성은 제각각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준호 기자)
“나는 이런 거 잘 못 해.” 한 쇼핑몰 패스트푸드 앞, 중년 여성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독백처럼 내뱉으며 뒤돌아본다. 혹시 자신의 말을 듣고 돕겠다 나서는 이가 있을까 싶어서 둘러보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줄만 길어진다. 그러다 결국 뒤 젊은이에게 이거 어떻게 하냐며 운을 뗀다.
이런 광경은 키오스크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업계에 따르면 키오스크 산업은 최근 급성장했다. 설치 현황을 살펴보면 2019년 18만 9951대였던 키오스크는 2023년 53만 6602대까지 늘어나 182.5%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 배경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코로나19 확산이 한몫했다. 비대면 거래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극장이나 식당, 커피숍 등 주요 생활시설의 키오스크 설치가 빠르게 확산됐다. 키오스크 산업 급성장, 부작용도 커 우리 사회는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한 상황인데 키오스크 도입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 부족으로 인한 불편 사항 발생을 꼽을 수 있다.
PC나 모바일 기기 등 디지털 장비가 가진 고유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그들의 접근성을 배려하지 않은 기기를 만나면 당황하게 된다. ‘뒤로가기’와 같은 용어나 이를 표시한 픽토그램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사용에 불편을 느끼지 않지만, 고령자들은 이해하지 못해 화면만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 1만 97명 가운데 키오스크 주문에 어려움을 느낀 사람은 64.2%에 달했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서도 고령자의 51.4%는 키오스크의 복잡한 작동 방법에, 49%는 뒷사람 눈치에, 44.1%는 그림·글씨의 작은 크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버거킹, 커피빈, CGV, 메가박스는 ‘불편’ 현장의 키오스크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어떨까? 본지는 최근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에서 주요 생활시설과 대중교통 시설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분석한 결과를 단독 입수했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올해 8월부터 국내 기차 및 지하철, 영화 발권, 식음료 주문용 키오스크를 대상으로 고령자 접근성 평가를 진행했다. 해당 평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 접근성 시험평가 지침의 세부기준 및 방법과 서울디지털재단의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 등을 바탕으로 고령자 접근성에 관한 30개 항목을 기준으로 진행됐다. 또 실제 고령자들의 사용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성적 평가도 함께 이뤄졌다. 평가는 식음료 기업 7개소 136개 지점, 극장 3개소 28개 지점, 기차 5개 역, 전철(경전철 포함) 15개 노선 160개 역사, 버스터미널 1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생활시설 키오스크 중 구형과 신형이 함께 사용 중인 경우에는 이를 고려해 평가가 이뤄졌다. 대부분 청력 보완, 소리 정보 제공에 인색 평가 결과를 살펴보면 우선 식음료 부문의 경우 롯데리아(88점)와 투썸플레이스(83점), 맥도날드(79점)의 키오스크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버거킹과 커피빈은 저시력자를 위한 보완 장치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한 대비로 더 알아보기 쉬운 화면을 제공한다거나, 메뉴의 확대·축소, 큰 글씨 사용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KFC의 경우, 신형과 구형 키오스크가 함께 사용되고 있어 점수가 낮아졌다. 운영 중인 구형 기기는 실제 고령자들의 정성 평가에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 소비자의 편의성을 고려하면 교체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투썸플레이스는 61점을 기록한 커피빈에 비해 우수한 평가를 받았는데,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관계자는 “투썸플레이스의 경우 접근성 평가를 고려한 컨설팅을 받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전체 심사 항목에서 고른 점수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극장 중에서는 롯데시네마가 압도적인 점수를 얻었다. 롯데시네마 키오스크는 식음료를 포함한 모든 타사 키오스크와 달리 적절한 경고음이나 음성 안내를 통해 시력을 보완할 수 있는 소리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반해서 CGV와 메가박스는 전반적으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주문, 결제 등 주요 과정이 진행될 때 구매와 무관한 멤버십 적립 유도 등 팝업창이 등장해 원활한 조작을 막는 부분도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하고, “조작 부위가 너무 작거나 간격이 좁아 이용이 어렵고, 작은 글씨 크기나 버튼의 색상 대비 미흡 등으로 인해 정보 파악이 어려운 문제도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서울 도시철도 역사 내 모습. 최근에 개통된 시설 일수록 접근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준호 기자)원본보기
대중교통 설치 시기에 따라 접근성 제각각 대중교통에 설치된 키오스크의 경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대중교통 시설에 설치된 티켓 발권기는 다른 사업 분야에 비해 역사가 깊다. 현장에 적용된 시기도 어느 분야보다 빨랐다. 도시철도에서 ‘승차권 자동 발매기’가 국내에 최초 도입된 시기는 1986년 9월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대중교통 시설 발권용 키오스크는 고령자 접근성 평가가 비슷하게 나올 것이라 예상하기 쉽지만, 실제 결과는 달랐다.
각 시설의 개통 시기에 따라 접근성 차이가 눈에 띌 정도로 컸다. 철도의 경우 상대적으로 먼저 운용된 KTX(수원역, 스탠드형)의 키오스크가 낮은 점수(68점)를 받았고, 최근에 설치된 공항철도(서울역) 키오스크는 87점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도시철도도 마찬가지다. 1호선(수원역)의 승차권 발매기는 전체 대중교통 키오스크 기기 중 가장 낮은 점수(70점)를 받은 반면, 최근 개통된 GTX-A(성남역)의 장비는 가장 우수(91점)했다. 고속버스의 경우 점수 자체는 평이(78점)했지만, 실제 고령자들의 사용 경험인 정성평가에서 만점을 받은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장차법에 따른 ‘의무’ 2026년부터 예외 없어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의 이번 평가를 보면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변화가 필요한 사회적 인식이다. 우리 사회나 키오스크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산업 분야에서 고령자 편의성과 배려에 대한 인식 자체가 개선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설치된 지 오래된, 즉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기기일수록 공통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저시력자를 위한 보완 부족이다. 이는 생활시설이나 대중교통 모든 기기에서 거의 대부분 일관되게 나타났다. 또 한 가지는 어렵지 않게 바뀔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장애인·고령자 접근성을 고려해 만든 최신 키오스크의 경우 전체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고령자를 배려하기 위한 기술적인 한계는 대부분 극복된 상태며, 설치와 운영 주체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해소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고령자 접근성이 적극적으로 고려된 공공시설인 대중교통 키오스크(77.6점)는 평균적으로 일반 사업장인 생활시설 매장 내 장비(70.8점)에 비해 높은 평균 점수를 보였다. 물론 고령자 접근성은 단순한 배려의 대상이 아니다. 2023년 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장차법) 개정안에 따라 키오스크는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 및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한 고시’를 준수해야 한다. 개정안 이전에 설치된 키오스크도 2026년 1월부터 법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장차법에 따라 장애인·고령자 접근성이 고려된 키오스크는 올해 1월부터 공공·교육·의료·금융기관, 이동·교통시설 등에서 이미 의무화되었으며, 7월부터는 문화·예술사업자, 복지시설, 상시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내년 1월부터는 관광사업자, 상시 10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전면 확대될 예정이다. 이성일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이사장은 “단지 기기 하나를 바꿔 형식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시설 건축물의 설계나 매장 공사 때부터 접근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사회적 약자의 디지털 장벽을 효과적으로 제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