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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후반전(4)
범려(范蠡) 초상화. [그림 김준태]
세 번 자리를 옮기고 세 번 모두 정점에 오른 사람이 있다. 그는 모시던 임금을 성공시켰고, 옮겨간 나라에서 재상이 되었으며, 상인(商人)으로도 명성을 날렸다. 명재상과 장사의 신(神)이라는 이름을 동시에 가졌던 인물,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정치가 범려(范蠡)의 이야기다.
범려는 처음 월(越)나라에서 일했다. 숙적 오나라에 의해 멸망의 위기까지 내몰린 월나라에서 그는 임금인 구천(勾踐)을 도와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는 부국강병을 위한 정책을 주도해 월나라를 강하게 만들었고, 갖은 계책을 써서 오나라의 국력을 소진시켰다. 기원전 473년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왕 구천이 제후의 맹주가 될 수 있었던 데엔 그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대업을 이룬 직후 범려는 곧바로 사직했다. “신이 듣건대, 군주가 모욕을 받으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지난날 대왕께서 치욕을 당하셨는데도 신이 죽지 못했던 것은 참고 기다려 월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오나라가 사라졌으니 신은 그때의 죄를 물어주시길 청하옵니다. 책임을 지고 관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범려의 말을 들은 구천은 놀라서 만류했다. “과인이 오늘을 맞은 것은 오로지 경의 힘 덕분이오. 과인을 버리고 가긴 어딜 간다는 말이오?” 하지만 범려는 듣지 않았고, 그날 밤으로 짐을 꾸려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유래한 범려의 편지
구천(勾踐) [사진 중국 포털 바이두 (www.baidu.com)]
범려는 떠나면서 동료 재상이었던 문종(文種)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적국이 사라지면 모략과 책략을 내던 신하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월나라 왕은 함께 고난을 견딜 수는 있어도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는 인물입니다. 그대도 지금 떠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참혹한 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구천은 틀림없이 효용가치가 다한 문종을 제거하려 들 것이니 빨리 피하라는 경고였다.
무릇 신하가 지나치게 뛰어나면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옥죄는 경우가 있다. 적국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신하의 걸출한 능력은 임금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일단 목표를 이루고 난 뒤에는 부담이 된다. 그러한 지략과 능력을 갖추고 혹시라도 자신에게 반기를 들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더욱이 큰 공을 세운 신하의 명망과 영향력이 왕권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차제에 아예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범려는 구천 역시 이처럼 행동하리라 예견한 것이고, 그래서 주저 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머뭇거리던 문종은 결국 구천으로부터 자결할 것을 명받았다.
그렇다면 월나라를 떠난 범려는 어디로 갔을까? 치이자피(鴟夷子皮)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그는 제(齊)나라에 나타났다. 여기서 그는 큰 재산을 모았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 인심을 얻었다. 범려의 비범함을 알아챈 제나라 왕이 그를 재상으로 임명했지만 “고귀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은 좋지 않다”며 금방 물러난다. 막대한 재산까지 모두 주위에 나눠줘 버린 후 범려는 또 다시 잠적했다.
무역중개·매점매석으로 부 일궈
와신상담도 [사진 중국 포털 바이두 (www.baidu.com)]
이후 범려가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도(陶)라는 고을이다.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새 이름을 내세운 그는 연로한 나이에도 무역중개상을 하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농업과 축산업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저장기술을 발전시켜, 물건이 많을 때 사 쌓아두었다가 희소해지면 내다 팔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윤을 10%만 남긴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이상 범려의 행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공수신퇴(功遂身退, 공을 세우고 나면 물러나야 한다)’의 교훈이다. 흔히 우리는 눈앞의 이해관계에 집착한다. 자신이 이룬 성과에 미련이 남아서, 더 이루고 싶은 일이 있어서, 부귀와 명예를 누리고 싶어서 머뭇거리고 얽매인다.
그러다 보면 상황을 오판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깔끔하지 못한 것도 그래서다.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히 버릴 줄 아는 범려의 자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김준태 동양철학자·역사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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