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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2)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증가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2012년 맞벌이 가구의 황혼육아비율이 50.5%에 달했다. 성인이 된 자녀가 출가해 이제는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난 줄 알고 자기계발이나 취미활동을 시작할 꿈에 부풀었는데, 그것도 잠시다.
자식이 어려운 취업의 문을 통과한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해 아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면 부모로서 거절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지못해 승낙하지만 나이가 들어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젊었을 때와는 천지 차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아이를 안거나 업어주다가 허리나 무릎에 병이 생기기도 한다.
손주 몇년 돌봐주다 폭삭 늙어
이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면 남들 보기에도 폭삭 늙은 할머니가 되고 만다. 이제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보기도 어렵다. 의학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늘어났지만 일상생활을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66세에 불과하다. 기대수명까지 10여년을 남의 도움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맞벌이 부부는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모실 수 없어 대개의 경우 요양원을 이용한다. 그런데 요양원에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우리 부모의 모습이다.
태어나서도 그렇지만 사람은 삶의 막바지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고 감정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요양원에서 그런 지원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더구나 요양원의 서비스는 명목상의 훈련만 거치고 박봉의 임금을 받는 비숙련 노동자가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진의 검진도 피상적이고 형식적이다. 보살핌의 질이 적절한 수준 이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자율성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어디를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룸메이트를 선택할 수 없고 사생활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 때도 있다. 모든 일정을 그곳에서 정해주는 대로 따라야 한다.
대한민국의 건강수명과 기대수명. [자료 통계청]
부모를 요양원에 맡긴 자녀는 애써 요양원에서 잘 돌보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일단 눈에 띄지 않으니 그렇게 믿는 게 마음 편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 쫓겨 이따금 찾아가는데 자녀의 방문이 점차 줄어들면서 부모는 고립감을 느낀다. 집에 갔으면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자식은 부모의 퇴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이 그립고 외롭다.
예전에는 대개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모셨다. 물론 현재와 같은 의료의 질을 기대할 수 없었으나 늘 가족이 부모를 돌보았다. 노인은 고통이야 있었지만 항상 자녀가 곁에 있다는 심리적 안정을 지닐 수 있었다. 심하게 아플 때는 의사가 왕진을 왔다. 지금처럼 첨단 장비는 없었지만 그래도 환자가 외롭게 방치되는 일은 없었다.
소득이 늘어났으나 우리나라 죽음의 질은 예전보다 못한 느낌이다. 조사에 의하면 세계 하위 수준이다. 모두 성장에만 신경을 써서 그런지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늘에 가려져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장소에 있는 사람은 외롭다. 아직 살아 있음에도 산 사람들의 공동체로부터 배제됐다고 생각하면 고독함을 느낀다.
나이 들어선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자조 섞인 얘기를 하지만, 자신이 그런 입장에 처했을 때는 어떻게 해주기를 원할까. 기계 소리가 윙윙거리는 병원 중환자실이나 혼자 독립생활을 할 수 없는 요양원에 있기를 원할까, 아니면 가족의 끈끈한 연대를 느낄 수 있는 집에 있기를 원할까. 삶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어느 곳에 있고 싶은지 생각하면 어떻게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암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 남편마저 사별하자 치료를 거부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할머니가 있다. 아들 내외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함께 길을 나선다. 미국 미시간 주 노마 바우어슈미트(91) 할머니 이야기다. 할머니는 요양원에서의 수동적인 삶보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가는 방식으로 여행을 계속했고 늘 아들이 그 곁을 지켰다.
노인들 집에서 임종 원해
사망장소변화. [자료 통계청]
70대 중반 어르신이 산소 호흡기를 단 채 차로 서너 시간 걸리는 고향에 내려가 마을회관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자녀들은 이미 그 전날부터 고기를 삶고 전을 지지고 하며 술상을 마련했다. 어르신은 한 사람씩 안아주면서 “감사합니다. 저 떠난 뒤에 제 아내 좀 잘 돌봐주세요”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는 “부모에게 효도해라. 고향 잘 지켜라”라고 하면서 대여섯 시간 동안 잔치를 하고 돌아와서 얼마 후에 운명했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느라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손자까지 돌보느라 몸도 많이 상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의 마지막 삶은 과연 누가 지켜주어야 할까. 그 마무리는 당연히 자식이 해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집에서 임종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10%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어르신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가정이나 사회에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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