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선 첩보소설 ‘고종과 미인계’ 2회

SSI_20180901003102_V.jpg

소설 ‘고종과 미인계’가 실린 미국 포퓰러 매거진 1912년 12월 하반호 표지. 

  
1905년 10월 어느날 서울 남대문 외곽에 있는 애스터하우스 호텔(현 서대문역 농협중앙회 터) 로비로 백인 여성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빈 자리에 앉더니 조선인 웨이터 박군에게 뭔가를 부탁했다. 마침 베델과 나는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때 베델은 하세가와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새로 들어온 그녀를 보더니 그냥 넋을 놓아 버렸다. 


“잠깐!” 그는 갑자기 말을 끊더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버드나무처럼 갸냘픈 몸매를 가졌다.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확신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마 위로 높게 짙은 갈색 머리를 땋아 올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느낌이나 자연스러운 느낌은 없었다. 눈이 너무 불규칙하고 입도 큰 편이었다. 하지만 뭐랄까...독립의 느낌이 묻어났다. 그래. 너무도 매력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자립심과 절제가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얼굴에 어우러져 매우 생기있게 보였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이고 또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왔는지 궁금했다. 사실 선교사나 외교관 아내를 빼면 서울에서 백인 여성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에 있던 호텔 주인 루이(루이 마르탱)를 불러내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었다. 루이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혼자 왔어요. 트렁크 하나에 여행용 가방 하나만 들고서. 라벨에 뭐라고 써 있었더라? 상하이 애스터하우스 호텔, 요코하마 오리엔탈 팰리스...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퍼시픽 메일 그런 게 있던데” 

그때 웨이터 박군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베델의 팔을 툭 쳤다.

“새로 오신 여자분이 뵙자고 하시네요.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SSI_20180901003521_V.jpg

이 소설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서울 정동 애스터하우스 호텔. 현재 서울 서대문역 농협중앙회터다. 정진석 교수 제공 


베델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피어 올랐다. 하지만 눈에는 약간 이상하다는 제스처도 있었다. 베델은 박군과 함께 바를 떠나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나와 루이는 오늘 처음 본 그 신비로운 여성이 누구인지, 또 서울에는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너무 궁금해 아르헨티나산 페르넷 블랑카 맥주를 마시며 내내 떠들어댔다.

1시간쯤 지났을까. 마침내 베델이 문을 열고 다시 나타났다. 그는 나보고 밖으로 나오라는 제스처를 했다. 나는 약간 취기가 올라 프랑스 특유의 기분 좋은 느낌을 풍기던 루이를 남겨두고 나왔다. 

“빌리, 중요한 일이야” 문을 닫으며 베델이 속삭였다 “진짜 중요한 일이야..네 도움이 필요해. 얼른 가야해!” 

베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 2층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숙녀용 응접실’이 하나 있었다. 앞서 베델과 나는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소녀’로 부르기로 했다. 소녀는 우리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라색 눈에서 자신감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양 옆으로 활짝 웃는 입가에서는 그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베델이 우리를 차례로 인사시켰다. “그럼 저에게 하신 이야기를 내 친구 빌리에게도 직접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당신과 같은 미국인이고, 더군다나 아주 용감한 미국인입니다. 나는 이 친구를 친형제처럼 신뢰합니다.”

베델이 날 이 정도로 아꼈나...암튼 이 너그러운 영국인 용사는 평소답지않게 나를 꽤 과장해 칭찬했다. 

소녀는 재빨리 방을 둘러본 뒤 복도를 살핀 다음 문을 걸어 잠궜다. 그리고 매우 낡고 흔들거리는 램프 아래 세명이 원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소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강한 힘이 있었다. 과거 남성에게 지시를 내린 적이 있고 지금도 그런 위치에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SSI_20180901005159_V.jpg

러시아 극동총독으로 당시 동북아 정책에 깊히 개입했던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1843~1917). 위키피디아 제공 


“나는 지금 상하이에 있는 어떤 높은 분을 대신해서 서울에 왔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소녀는 허리띠에서 작은 금색 연필을 꺼내고 수첩에서 한 페이지를 찢은 다음 그 위에 이름을 적었다. 나는 지금 당장 그분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으려고 한다. 다만 그는 아시아로 진군하는 러시아의 행진에서 걸림돌이 될 만할 것들을 미리 제거하려는 매우 영민한 사람이라고 해 두면 소개가 충분할 것 같다. 극동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큰손’(러시아 극동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 추정)이라고 해 두자. 내가 종이에 씌여진 이름을 확인하자 소녀는 종이를 잘게 잘게 찢어 자신의 지갑 속에 집어넣었다.

어르신의 마지막 순간, 집에서 맞이하게 해야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2)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증가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2...

Nugurado, 조회 수 553

삼식이는 왜 마눌이 무서울까? 참 이상하네 [출처...

강인춘의 마눌님! 마눌님!(48) 삼식이가 된 나는 그날부터 마눌이 아니, 마눌님이 무서워졌다. 무서워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도 그냥 무서워졌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삼식이 친구들, 쓴 소...

Nugurado, 조회 수 583

[김태훈의 뉴스 저격] '여장부 엄상궁', 日 감시망...

오늘의 주제: 경술국치 108년 그날에 다시 걸어본 '고종의 길'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 경복궁을 빠져나온 고종(高宗)이 어떤 경로로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대한제국 시기 미국 공사관이 제작한 정동 지도...

Nugurado, 조회 수 591

“고종 납치해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조선 첩보소설 ‘고종과 미인계’ 2회 소설 ‘고종과 미인계’가 실린 미국 포퓰러 매거진 1912년 12월 하반호 표지. 1905년 10월 어느날 서울 남대문 외곽에 있는 애스터하우스 호텔(현 서대문역 농협중앙회 터) 로비로 백인 여성...

Nugurado, 조회 수 572

“고종 납치해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최근 발굴 조선 첩보소설 ‘고종과 미인계’ 1회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되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대...

Nugurado, 조회 수 552

포멀과 캐주얼 사이…헨리넥 티셔츠의 매력 [출처:...

양현석의 반 발짝 패션(25) 여름에 중년 남성이 입을 수 있는 상의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남자의 대표적인 상의로는 포멀하게 입는 드레스 셔츠와 캐주얼 셔츠 그리고 폴로셔츠 정도가 주류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여름 아이템...

Nugurado, 조회 수 548

마눌에게 가끔은 인간 삼식이의 본성을 보여야 한다

강인춘의 마눌님! 마눌님!(47) “그래, 나, 백수, 삼식이다. 내가 원해서 허구한 날 집안에서만 주저앉아 있는 거 아니잖아? 그런 내 꼴이 인간 같지 않아 보여? 그래서 당신까지 나를 얕보는 거야?”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 가지...

Nugurado, 조회 수 559

폭격하러 온 미군이었지만…베트남, 매케인 추모 열기

양국 관계 정상화·우호 증진 기여…기념비에 조화들 놓여 매케인 기념비에 헌화, 묵념하는 주베트남 미국대사 [하노이=연합뉴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매케인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10월 26일 폭격 임무를 띠고 북부 ...

Nugurado, 조회 수 532

트럼프의 정부가 아니라 우리의 정부다

리처드 코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는 시를 전혀 알지 못할뿐더러 시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을 터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T.S. 엘리어트가 틀렸다는 사실 정도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시인은 4월을 잔...

Nugurado, 조회 수 510

하나둘 지워지고 있는 낡은 전화번호

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5) 낡은수첩. [사진 김길태] 내게는 까맣고 낡은 작은 수첩이 하나 있다. 5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수첩이다. 수첩에는 친구, 친척, 친지를 이어주는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이제는 그것이 별 쓸...

Nugurado, 조회 수 2353

‘삼식이’를 우리말 사전에서는 뭐라고 했을까?

[더,오래] 강인춘의 마눌님! 마눌님!(46) “여보! 우리말 사전에 ‘삼식이’를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백수로써 집안에 칩거하며 세 끼를 꼬박꼬박 찾아 먹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래.” “ㅠㅠㅠ....” 얄미운 마눌아...

Nugurado, 조회 수 553

'구렁이 속 선비'를 알아봐 준 그녀가 배반했을 때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14) 얼마 전에 이 지면에서 ‘구렁덩덩신선비’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혐오의 시선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것인데, 이 이야기는 이렇게 저렇게 뒤집어보고 펼쳐보고 할수록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

Nugurado, 조회 수 549

미국 진출 희망기업·창업, 설립 지원·멘토링 서비스

사업모델 분석 및 평가, 4단계 프로그램 운영 국제창업기관 활동 황정주 박사 국제창업기관의 국제파트너십 한국 담당 팀장으로 있는 황정주 박사가 멘터링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 미주 지역으로 진출을 시...

Nugurado, 조회 수 584

소망 소사이어티 교육 세미나 열려

‘소망 유언서’ 쓰기 중요성을 알리는 상황극을 갖고 있다.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모토로 하는 비영리 기관이자 한인 지역 사회에 죽음준비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 및 교회를 찾아가 소망 교육세미나...

Nugurado, 조회 수 569

크리스 박 대표, 정치인 60여명에 후원금

개인·회사 명의 1998년 이후로 159회, 가세티시장 8,650달러 포함 총 10만여달러 그룹 직원들 개인 명의도 17건 달해 유명 건축디자인 개발 업체 ‘아키온 그룹’의 크리스 박(사진) 대표가 LA시 주요 정치인들에게 불법 선거 후...

Nugurado, 조회 수 581

잡채 만들어주는 마눌님, 삼식이가 밉지는 않은가 ...

강인춘의 마눌님! 마눌님!(45) 아파트 산책길 반환점을 막 도는데 “따르릉!” 스마트폰 벨이 울린다. 마눌님이다. “집에 들어올 때 목이버섯 한 팩만 사 와요!” “목이버섯? 그게 뭔데” “그냥 사서 오면 된다니까 그러네” 묻지도 ...

Nugurado, 조회 수 565

"폐하는 사치스럽다" 당 태종에 직언 날...

김준태의 후반전(14) 정적 위징을 중용한 당 태종. [사진 위키백과] 626년 ‘현무문(玄武門)의 변’을 일으켜 황태자이자 친형 이건성을 제거한 당 태종은 이건성을 따르던 신하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끌려온 사람 중에는 평소 태...

Nugurado, 조회 수 524

"나의 임종 순간이 병원 아닌 집이었으면…"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4) 자신의 뜻을 평소 명백히 밝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식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사진 pixabay] 유서는 죽기 전에 자신의 뜻을 밝히는 문서다. 대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쓰지만 생...

Nugurado, 조회 수 553

강인춘의 마눌님! 마눌님!(44)

저녁은? 백수 남편의 겸연쩍은 미소에 담긴 뜻 “저…. 저녁까지 먹고 들어 올 거지?” 여고 동창생 모임이 있어 밖으로 나가려는 나에게 남편은 겸연쩍은 미소를 그리며 떠듬떠듬 묻는다. 어쩌면 저 말속에는 “아니야! 집에 와서...

Nugurado, 조회 수 505

강인춘의 마눌님! 마눌님!(43)

강인춘의 마눌님! 마눌님!(43) 십수 년 전 백수, 삼식이가 된 그 날부터 마눌한테 온갖 모욕과 설움을 뒤집어쓰면서 배운 노하우가 있었다. ‘완벽하게 설거지 끝내는 법’이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닦은 그릇을 흐르는 맑은 물...

Nugurado, 조회 수 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