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유튜브 코드  
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24) 

나이가 90이 넘으니 친구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거나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 가끔이라도 만나는 친구가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그중 매주 일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꼭 만나는 친구가 있다.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은 그 친구는 유일한 낙이 일요일 오전 교회 예배를 마치고 나를 만나는 일이라고 한다. 나 역시 온종일 집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이 친구를 만나는 일요일이면 아침부터 기분이 참 좋다.  
  
고향이 함경도인 50년 지기 친구 

fd559dfe-7cc9-4a6e-9234-ced72453ed75.jpg

고향이 부산과 함경도인 우리는 50년 지기 친구다. 이제 60이 넘은 큰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부형으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 김길태]

  
오늘도 우리 두 노인은 매주 만나는 현대 백화점 커피숍의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고향이 부산과 함경도인 우리는 50년 지기 친구다. 이제 60이 넘은 큰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부형으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니 서로의 가족사를 다 꿰고 있어 늘 할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함께 아이스 커피를 앞에 두고 오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없이 나누며 웃는다. 이곳에는 우리만큼 나이 든 사람은 없다. 둘은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오랜 시간을 한 곳에서 버틴다. 아픈 다리 때문에 이곳저곳 기웃거릴 수가 없다. 입만 살아있는 것이다.  
  
갑자기 친구가 “얘, 우리는 ‘no인(人)’ 이자 노인(老人)이야” 한다. 참 기막힌 발상이다. ‘사람이 아니다’의 no人과 ‘늙은 사람’의 노인. 발음도 같고 뜻 또한 같다. 90을 넘긴 우리 두 사람은 노인이면서 no人인 것이다. “그래 맞아 당신은 천재야.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우리가 이 젊은 애들 속에 앉아 있으니 참….” 서로 마주 보고 한참 웃었다. 
  
몇 시간을 앉아 있는 동안 아무리 주위를 돌아봐도 우리 같은 늙은이는 오지 않는다. 우리 둘은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 no人인 것이다. 이곳에 있는 젊은이들과 달리 우리는 할 일이 없다.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둡다. 다리가 아파 뛰지도 못하고 걷는 것도 힘들다.  
  
9f4ac26c-ad33-4226-8217-270cb0d4302d(1).jpg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딸이 꽃을 보면서 소녀처럼 웃어보라고 하면서 '찰칵'. [사진 김길태]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얼굴은 그 속에 없고 늙은이만 있다. 믿음직스럽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꿈도 희망도 없는 주름투성이의 늙은 얼굴이 그 안에 있다. 활동력과 아름다움도 없고 일에 대한 추진력 또한 없으니 no人, 즉 老人인 것이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늙은 우리는 그래도 밝고 쾌적한 분위기를 즐긴다.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한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몇 시간을 앉아서 즐기다가 오후 3시가 넘으면 주위를 한 번 살펴보고 일어난다.  
  
마치 우리가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 같이 뻔뻔하기도 하다. 매주 오다 보니 주인은 친구인 양 미소를 보내준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회포를 실컷 푼 우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난다. 

  
헤어지기 전 함께 슈퍼에서 일주일 치 장 봐  

헤어지기 전 우리는 슈퍼에 가서 일주일 치의 장을 본다. 면서 소녀처럼 웃어보라고 하면서 '찰칵'. [사진 김길태]유기농야채, 사과, 배, 토마토, 아보카도, 쇠고기, 파, 마늘 등등. 사는 날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사람답게 먹고 살려고 많이도 산다. 장 본 물건들을 배송시킨다. 힘들게 들고 가지 않아도 되니 참 좋은 세상이다. 

  
다음 약속을 한다. 지켜질지는 다음 주가 되어봐야 안다.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온 만남이다. 지금도 일요일마다 만날 수 있는 두 사람의 건강에 감사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두 노인은 no人답게 아주 편안하게 잘살고 있는 것이다.  
  
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email protected] 
  

고고렌트카 웹사이트 방문하기
렌트카 필요하신 분
전화: 213-500-5243
카카오톡: city1709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395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이젠 큰일 날 소리 file Nugurado 308
394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브레드피트 308
393 [국군의 날 특집 다큐] 부산, 1023일의 기억 Nugurado 309
392 불법체류자 단속에 내가 대처할 중요한 행동요령 coffee 309
391 정두언 비극적 선택 드러나는 진실 비밀 아닌 비밀들!(진성호의 직설) Nugurado 312
390 몽고는 왜 공주들을 고려로 시집 보냈나 Nugurado 313
389 돈없던 러시아가 후회하면서 한국에 내어준 최강전차 Nugurado 313
388 [188회_5.18 비밀요원, 39년만 최초증언!]_1 Nugurado 313
387 엄마의 나라 2부 MBC 오늘저녁 해외 입양 알렉스조 313
386 20년차 공무원 출신인 그는 왜 노숙인 되었을까? 휴지필름 313
385 도쿄올림픽, 일본이 "한국 때문에 미치겠다." 라고 말하는 이유 똘똘이 313
384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47] 겉흙 아래 숨어 있던 '초대형 묘역' file Nugurado 314
383 [188회] 5.18 비밀요원, 39년만 최초증언!]_2 Nugurado 315
382 미국법정의 인간미 넘치고 명쾌한 판사님 브레드피트 315
381 가족간 불화로 노숙인 된 그가 대리운전 기사로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 [심층 인터뷰] 휴지필름 315
380 중국 IT공룡 텐센트 상대로 싸우는 남자 [부산 IT기업 특허침해 소송 전말] 휴지필름 315
379 인도네시아가 일본을 밀어내고 한국을 선택한 이유, "세계인구 4위 인도네시아의 목숨을 구하는 한국의 기술력" 똘똘이 315
378 세계 1위 갑부, 이 남자가 한국과 손잡고 일본에 대 충격을 준다 !! 다쓸어 315
377 자신을 혐오한 이웃집 딸들에게 복수극 벌인 구렁이 file Nugurado 316
376 ‘우리민족끼리’ 구호에 숨은 함정 file Nugurado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