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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20)

결혼하면서 영국 아동 구호병원을 그만두고 남편 직장이 가까운 부산 동대신동 언덕에 작은 동네병원을 개원했다. 아버지가 신혼 생활을 위해 사 주신 일본식 건물이었는데 길 쪽으로 작은 병원을 만들 공간이 있어 소아과를 개업했다. 
  
부산 대신동 살림집에서 동네병원 개업 

환자를 돌본다는 의사의 본문을 지키면서 살림도 돌볼 수 있는 터전이었다. 감기나 배탈 등 작은 병에 걸린 동네의 아기나 엄마를 봐준다는 생각에 별 부담이 없었다. 꽤 많은 환자가 찾아왔던 대학병원 인턴과 아동병원에서 쌓은 경험으로 진찰·치료·처방을 하고 그들과 세세한 세상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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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를 개업해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때로는 산모의 출산이 임박한 상황에서 산모를 보기도 했는데, 1970~1980년대엔 동네 의사면 과목 구별 없이 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그 시절에는 전문의 개념도, 의료보험도 없어 아프면 찾는 곳이 동네병원이었다. 소아과, 내과, 간단한 외과(봉합까지) 치료를 마다치 않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전문과목이 아닌 병도 다루는 의원이었다. 그때는 동네 의원이 의료체계의 중요한 축이었다. 
  
다행히 치료를 잘하는 병원으로 알려져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때로는 산모의 출산이 임박했다는 보호자가 소아과라는 설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빨리 가자며 떼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산모를 보기도 했다. 1970~1980년대엔 동네 의사면 과목 구별 없이 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리 역시 의사로서 경험은 인턴 때 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과 같이 세밀하게 전문분야별로 나뉜 지식을 갖추지도 않았으며 의료기기도 발달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겁이 없이 환자를 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동네병원을 포함한 의료시설이 절대 부족했던 시절이라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이 조금이라도 나면 여러 종류의 환자가 들이닥쳤다. 
  
의과대학 해부학 수업 때 보통 두 명이 하는 인체 해부를 나 혼자 하겠다고 자청한 적이 많았다. 그것이 내 의사 생활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병의 대부분은 복부 안 내장에서 오는 것이 많다. 특히 내과나 소아과는 여기서 생기는 병이 대부분이다. 
  
생활고 해결을 위해 산부인과 공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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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초기에 배웠던 해부학 수업 덕분에 산부인과 공부를 남들보다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관련사진아님)

  
생활이 어려워져 돈을 벌기 위해 산부인과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해부학 수업은 큰 도움이 됐다. 내 머릿속에는 사람의 배속과 자궁의 구조, 연결 부분이 정확하게 들어 있어 남들보다 좀 더 수월하게 산부인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보고 배우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특히 해부학은 더하다. 지금과 같이 세분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큰 의료사고 없이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의과대학 초기의 해부학 수업 덕분인 것 같다. 
  
부처님은 항상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은 내가 미리 알아두도록 하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신기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한 것을 쉽게 공부할 수 있게 그 길을 가르쳐준 것이리라. 
  
그 후 서울로 이사 와 40년 동안 같은 곳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개업해 많은 산모와 아기를 치료했지만 큰 사고 한번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이 해부학 기초 덕인 것 같다. 
  
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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