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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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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형무소 전경

  
공산주의나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도 없는 내가 형무소로 가게 된 이유는 친구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6·25 전 대학 기숙사의 내 방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낸 친구가 북한 간첩활동을 하다 붙잡혔는데, 내 이름을 입에 올렸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월북했다가 6·25 때 간첩이 돼 남한으로 내려왔다. 
  
6·25 이후의 국내 사정은 공산주의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공산주의에 관한 책만 읽어도(심지어 책을 가지고만 있어도) 경찰서에 잡혀가 바로 형무소로 이송될 때였다. 나는 책 한권 읽어보지도 못한 채 친구의 말 한마디에 빨갱이가 되었고, 형무소까지 갔다. 영문도 모른 채 형무소까지 갔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상황이었다. 


'빨갱이' 누명 쓰고 형무소행

그때 나는 전시연합대학(6·25 때 서울의 31개 대학이 연합해 부산에 만든 학교) 4학년이었다. 의과대학 졸업반인 내가 무슨 시간이 있어서 공산주의 사상에 관한 책을 읽을 시간이 있었겠는가. 물론 나는 그런 책을 한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전쟁이 나 황급히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모든 책을 서울에 두고 왔으니 전공 서적 한권도 없었다. 전쟁 중에 만들어진 전시연합대학에 다니던 우리는 책 없이 선생님의 강의를 받아쓰고 칠판의 글과 그림을 보면서 공부하던 때였다. 그러니 공책뿐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죄도 없이 형무소 소년원에 간 것이다. 나는 '빨갱이'란 이름이 붙은 어린 여학생 10명과 같이 한 방에 수감됐다. 내가 간 방에는 사상범인 여학생뿐이고 잡범(절도범·도적)은 없었다. 어린 여학생조차 사상범이란 죄목으로 그렇게 많이 잡혀 올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이 잡혀 왔겠는가. 
  
당시 아버지가 돈을 써서 나이가 많은 나를 일반 형무소가 아닌 소년원으로 옮겨 주었고, 그 후에도 매일 형무소에 와 거액을 여기저기 뿌리는 덕분에 나는 그나마 혹독한 감방생활을 겨우 버텨낼 수 있던 것 같다. 그때 식사는 소년원이라 그런지 콩밥이 아닌 보리밥이었으며 반찬은 생각나지 않지만, 멸치젓갈이 기억에 남아있다. 가끔 나오던 젓갈이 제일 좋은 반찬이었던 것 같다. 
  
나는 미결수라 며칠 후부터 사식이 들어왔다. 돈을 주고 산 밥이다. 사식은 반찬도 있고 좋았지만 나는 입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음식도 넘어가지 않아 원래 약하던 몸이 숨만 겨우 붙어있을 정도로 나빠졌다. 


혹독한 고문에 피범벅이 된 감방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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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자 일상을 체험하는 체험행사에 참가한 가족들이 일제 교도관으로 분장한 연기자들의 연기를 보고 있다

  
소년원에서도 잔인한 고문이 시도 때도 없이 행해졌다. 한 방에 있던 어린 여학생들도 한명씩 끌려나가 피범벅이 되어 초주검 상태로 들어오곤 했다. 나는 재력가인 아버지 덕분에 고문은 받지 않았다. 약골인 딸이 혹시라도 형무소에서 변을 당할까 두려웠던 아버지는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나를 구해 내겠다고 매일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등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동료들이 차례로 끌려나가 고문을 당하는 살벌한 와중에 드디어 나도 호출을 당했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가니 고문 담당관인 듯한 사람이 조용히 내 얼굴만 보고 학교생활 등 몇 마디 물어보더니 그냥 보내주었다. 이 역시도 아버지 덕분이었을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되던 당시 상황이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긴장과 두려움 속에 숨죽여 며칠을 지내다 다행히 죄가 없다는 점이 인정됐는지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날밤을 새우며 딸을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쇠약해진 몸을 어느 정도  추스른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니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반겨줬다. 반장은 내 옆에 앉아 그동안 놓쳐버린 수업내용을 자상하게 챙겨줘 무척 고마웠다. 


무죄 인정돼 형무소서 풀려나

다정하고 고마운 친구들과 다시 어울리면서 악몽 같던 기억을 마음속 깊이 묻고 다시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전쟁 통에 죽음의 고비를 몇번씩 넘기며 억울한 옥살이까지 경험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 내 의과대학 시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대학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대구 경북 의과대학의 인턴으로 가게 됐으며 의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요즈음 지나간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쓰면서 새롭게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늘 좋은 일만 기억하고 안 좋은 일은 기억 속에서 대부분 지워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년원에서의 시간은 별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일부러 좋은 기억만 남기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낙천적이고 건강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인 것 같기도 하다. 
  
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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