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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9)
6·25전쟁 당시 인민군과 피난민에 섞여 산으로 후퇴하면서 소백산맥 깊은 산골의 외딴집에 머물게 되었다.
(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나는 지금도 소백산맥 깊은 산골의 외딴집을 잊지 못하며, 이름도 모르는 그분들의 은혜를 갚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프다. 6·25 때 이북으로 끌려가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인연이 깊은 집이요,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인민군과 피난민 속에 섞여 지내다가 부모님이 사는 부산에 가게 된 계기가 거기서 만들어졌다.
그 산골 집은 방바닥에 빨간 진흙을 발라 문지르고 또 문질러 돌같이 반들반들하게 빛이 났고 집 앞에 밤나무와 조그만 텃밭이 있었으며, 우리보다 어린 손녀딸과 할아버지·할머니가 같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전세가 불리해진 인민군과 피난민에 섞여 산으로 후퇴하면서 소백산맥 줄기를 타고 그곳까지 내려갔다. 나와 그 집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민군 장교에게 산골 집에 머물겠다고 하니 쾌히 승낙
그 집에서 먹은 보리밥과 밀가루에 버무려 솥에 찐 고추반찬은 진수성찬에 비할 수 없이 맛있었다. (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우리가 머물던 집은 경북 상주와 가까웠다. 상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부모님과 집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친구와 같이 인민군 장교에게 “이곳이 친구의 고향이고 집이 가까우니 우리를 여기 두고 가면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쾌히 그렇게 하라고 승낙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 집의 신세를 지게 됐다.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에는 없다. 국군의 인민군소탕 작전이 있을 때까지 숨어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 사람들은 천사와 같이 순진했다. 자기들도 먹고살기 힘든 전쟁 통에 밥을 축내는 나와 친구가 얼마나 짐스러웠겠는가.
그때 그 밥과 반찬은 잊을 수가 없다. 흰쌀 한 톨도 보이지 않는 보리밥인데 가마솥에서 얼마나 푹 익혔는지 보리밥 같지 않게 입안에서 그냥 녹아 없어졌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었다.
반찬은 텃밭에서 따온 고추를 밀가루에 버무려 솥에 찐 다음 간장과 참기름에 무친 것으로 진수성찬에 비할 수 없이 맛있었다. 간식은 밤송이를 발로 문질러 터져 나온 밤을 입으로 껍질을 벗겨 먹은 하얗고 달콤한 밤알이었다. 그 또한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 나오는 밤은 밤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몰라도 꽤 오래 있었다. 인민군 잔당 소탕작전이 시작된 어느 날 군인과 경찰관이 낮에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의과대학 학생이며 근처가 내 친구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친구 오빠의 이름과 주소를 대며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군인들은 사실 확인을 할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며 돌아갔다.
얼마 후 다시 찾아와서는 신분이 확실하니 같이 가자고 했다. 지옥에서 살아나온 듯 뛸 듯이 기뻤다. 친구의 오빠가 국회의원 출마자이고 집안이 상주에서 이름있는 부자여서 쉽게 사실확인이 된 덕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 집 부산까지 가려고 했지만, 신분증도 없고 경계가 삼엄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마침 해군으로 근무하는 그 집의 친척 동생이 휴가차 나와 인사하러 들렀다. 하늘이 도운 것이었다. 그 해군을 따라 아무 검문도 받지 않고 아무 탈 없이 편안하게 부산 집까지 올 수 있었다.
무남독녀 딸이 죽었다는 헛소문 돌아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 찾을 수 없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사한 사람들. [일러스트=김회룡]
그 산골에서 먹은 밥과 밤 덕분에 뽀얗게 살이 쪄서 갔는데 집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동네 오빠가 헛소문을 듣고 와서 내가 죽었다고 했단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며 딸이 길가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편히 자겠느냐며 집 밖에서 주무셨다고 한다. 어머니도 매일 눈물 속에서 밥 한술 뜨지도 못하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무남독녀인 딸이 죽었으니 집이 망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딸이 뽀얗게 살이 쪄 건강한 모습으로 걸어오니 집에 경사가 났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였다.
그 후 사상범으로 몰려 소년원에 수감되는 등 혹독했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사건을 겪으며 시간이 흘러갔다. 다행히 다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가정을 이루고 의사가 되었다. 당시 살벌한 정치·사회적 분위기에다 사상범으로 소년원 수감까지 된 내 과거 때문에 소백산맥 산골의 그 집을 찾아가지 못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시대가 변해 내 과거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편안한 가정을 갖게 되자 그분들 생각이 났다. 상주 친구를 만나 소백산맥의 그 집을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친구는 너무 많이 변해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은인의 집을 다시 찾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야만 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인이요, 감사하고 또 감사한 사람들이다.
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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