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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7)

어둠이 짙게 깔릴 때 우리는 맑은 하늘을 생각한다. 마음이 괴로워 가슴 깊이 어둠이 깔릴 때도 맑은 하늘을 그리워한다.
 
나는 의과 본과 3학년 때 소년원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사상범으로 소위 '빨갱이'라는 죄목의 죄수였다. 성인인 내가 10대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있는 소년원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재력과 유명세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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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10명가량의 고등학생이 사상범으로 10년, 20년, 30년의 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어린 학생들이 무슨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었다고 살인자도 아닌데 어마어마한 형을 받고 울고 있었다. 나 또한 무섭고 기가 막혔다.
 
사상범이 됐던 이유는 이렇다. 학교 기숙사에서 아침을 먹고 있을 때 먼 곳에서 대포 소리 같은 굉음이 들려오고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전쟁이 났다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이미 병원에는 부상병이 한두 명씩 오기 시작하고 우리는 기숙사에서 대학병원으로 소환되었다.
 
북이 남침하고 3일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불과 3일 만에 38선은 무너지고 부상병은 병원을 메울 정도로 늘어났다. 부상병 치료에 정신없으면서도 전시 상황을 물어보면 우리 국군이 잘 싸우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부상병 치료에 밤낮을 가리지 않다 보니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밤낮을 교대하며 치료하기로 했다.
 
우리는 낮 당번이라 선생님의 지도 하에 생리학 교실 지하실에서 지친 몸을 서로에게 의지해 잠이 들었다. 잠결에 '꽝!'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군복 색깔부터 다른 군인이 총을 겨누고 "동무들 나오라오" 했다. 두 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잠에서 깨니 국군은 온데간데없고 인민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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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했던 38선

 
어제까지 같이 있던 그 많던 국군과 부상병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절했고, 공포가 밀려왔다. 밖에는 온통 인민군 부상자뿐이었다. 지하실에서 깊이 잠든 우리를 두고 가버린 것이다. 있는 곳을 몰랐거나 못 찾았겠지. 설마 고의로 두고야 갔겠는가.
 
우리는 그때부터 밀려드는 인민군 부상병을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꼼짝없이 인민군의 포로 아닌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것이 부역이요, 죄인이요, 사상범이 된 것이다. 갑자기 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모·형제도 친척도 없는 고아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친 인민군에게 부모님이 계신 부산 소식을 물어보니 부산도 함포 사격으로 다 점령되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어 눈물만 났다. 이젠 정말 갈 곳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이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자면 인민군을 치료해야만 했다. 이들과 같이 있어야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공포 속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날이 갈수록 우리 상황은 변해 일선 야전병원으로 보내졌고 나는 보위성 야전병원으로 배치되었다. 국군이 연합군의 힘을 빌려 전세가 역전되자 인민군은 당황하기 시작하면서 사나워졌다. 나는 그곳을 몰래 도망쳐 나와 부산이 가까운 고창으로 친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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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파견된 서독의료단은 옛 부산여고 자리에 독일 적십자병원을 세워 1958년까지 수십만명의 한국인들에 인술을 베풀었다. [사진 외교부 제공]

 
그때는 이미 인민군이 후퇴하는 중이라 많은 부상병과 의사는 갈팡질팡하였다. 외상 환자가 많아 그 상처가 곪아 부식하기 시작하니 구더기가 우글우글 상처를 덮어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고 약도 없는 최악의 상태였다. 인민군과 피난민과 부상병이 질서도 없이 엉켜 움직이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뿐인가. 하늘에서는 불붙은 드럼통이 떨어지며 곳곳에 불난리가 났다. 살겠다고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아우성치는 군중 속에 섞여 떼를 지어 간 곳이 소백산맥이었다. 그곳이 소백산맥이라는 것도 인민군 소위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친구의 고향인 경북 상주가 근처였던 것 같다.
 
계속 걷다 보니 내 발 무게가 천근만근이 되어 움직이지 않았고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서 숨쉬기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이곳이 친구의 고향이고 부산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도망칠까? 그러다가 총에 맞아 죽으면 어떡하나. 잘 생각해 보자. 친구와 나는 결정을 못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서로의 손을 꼭 잡곤 했다.
 
드디어 결심하고 한 인민군에게 "여기가 우리 고향인데요, 우리는 여기에 있으면 하는데요" 했다. "동무, 그렇소. 그럼 여기 있다 가보오" 했다. 전쟁 중이지만 사상 논리보다 인정이 먼저인 군인이었다. 정말 고마웠다. 부처님의 돌봄인 것 같았다.
 
삶과 죽음밖에 없는 이런 지옥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무슨 이데올로기니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것이 있겠는가. 평화로운 학창시절 그늘진 나무 밑이나 교실에서 짹짹대고 웃고 떠들며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답시고 변증법적 유물론이나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민주주의가 어떻고 스탈린과 모택동에 열을 올리며 토론 아닌 토론으로 꿈 많은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6·25 전쟁 속 죽음의 문턱에서 갖은 고생 끝에 살아남아 집에 돌아오니 나는 이미 사상범이 되어 있었다.

 
죽음의 문턱서 돌아오니 사상범 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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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목동 예비역 중령이 남긴 '한국전쟁'. 

 
경찰서에 끌려가서 들으니 월북한 친구가 남파 간첩으로 잡혀 와서 내 이름을 댔다는 것이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여학교 동창이었다. 어느 날 학교 기숙사로 찾아와 하룻밤 재워달라기에 그렇게 했는데 친구는 그길로 월북했고 간첩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친구는 내가 간첩을 도왔다고 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고 하룻밤 자고 갔을 뿐이라고 항변을 했지만, 간첩을 도운 사상범이 되고 말았다. 나는 사상과는 아무 상관 없이 경찰서에서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전쟁 중의 감옥이요, 게다가 사상범들을 잡아 가둔 곳이니 아무리 소년원이라 그나마 대우가 다르다고 했지만, 지옥임은 틀림없었다.
 
공포와 굶주림과 암흑밖에 없는 곳. 저 맑은 하늘이 한없이 그리운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저 푸른 하늘만 다시 볼 수 있다면 어떤 고통도 참고 달게 받겠다고 부처님께 맹세했다.
 
그곳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요, 내가 인간이 된 곳이다.
 
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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