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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넘어서도 사랑하고 싶다

Nugurado 2018.03.06 00:12 조회 수 :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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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2)

"90세에 새 삶을 찾아 나선 대한민국 1세대 여의사. 85세까지 직접 운전하며 병원을 출퇴근했다. 88세까지 진료하다 노인성 질환으로 활동이 힘들어지자 글쓰기에 도전, ‘90세의 꿈’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문인으로 등단했다. 근 100년 동안 한국의 역사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을 살면서 웃음과 꿈을 잃지 않고 열정적으로 삶에 도전해 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85세까지 본인이 노인인 줄 몰랐다니 나이는 진정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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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할머니가 손녀에게 카카오톡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김길태]

 
90세 노인의 마음속에도 사랑이, 기다림이, 욕심이 있다. 죽을 때 가까운 나이가 되면 매일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살면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내가 나이 들어보니 그렇지 않다.
 
여전히 잘 보이고 싶고, 예쁜 것을 입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경치 좋은 것을 보고 즐거운 곳에 가고 싶고, 영화나 연극도 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것이 뜻대로 안 되기에 늙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마음대로 될 때는 아직은 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실제 나이가 얼마이든 신체 나이가 늙지 않으면 나이를 잊고 산다. 내가 85세까지 그랬다. 나는 그때까지 늙음을 모르고 살았다. 차를 운전해 가고 싶은 곳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입고 싶은 옷, 내가 보고 싶은 영화나 오페라를 즐기며 살았다.

  
늙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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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가 정답게 산책을 하고 있다.

 
귀가 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눈이 언젠가부터 아름다움을 잘 보지 못하고, 입맛이 제대로 그 맛을 느끼지 못하며 또 자유롭게 어디든지 걸어갈 수 없을 때 늙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럴 때 자식도 품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지면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태로 전락한다. 
 
허나 나는 아직도 할 일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아직도 마음속에 작은 욕심이 남아있는 것을 느낀다. 젊었을 때 노인에게는 이런 것들이 없는 줄 알았다. 없는 것이 아니라 참고 없는 척하며 편안함을 유지하려는 그 마음을 몰랐던 것이다. 늙어 눈이 맑지 않아도, 귀는 덜 들려도, 맛이 옛날 같지 않아도, 마음은 항상 변함없이 보고, 듣고, 맛보고, 싶은 것을 몰랐다.
 
자식에게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있듯이 변함없이 오감을 갖고 작은 욕심과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 인생이며 삶의 희망인 것을 나는 이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제야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드니 참 한심한 것이 인간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늙을 때까지 살아봐야 인생의 깊이를 알고 삶에 대한 후회와 깨달음이 많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온 것도 고맙지만 먼저 떠난 친구들은 경험하지 못한 늙어서 불편한 점이 많다는 것도 알았고 세월의 무게가 주는 삶의 진수를 맛보게 된 것을 고맙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늙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으니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고생스러우면 고생스러운 대로, 고달프면 고달픈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삶에는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늙어서 느끼니 물 흐르는 대로 살아볼 만한 것이 삶인 것 같다.
 
내가 오늘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경험하고 살아온 오랜 세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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