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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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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히로카즈 감독은 사회 속 가족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사진 티캐스트]

  
많은 이들이 실제 부모가 되어 보고 나서야 부모의 마음을 알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걸 알 때쯤 되었을 때 부모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는 것이 함정일 뿐이다. 부모와 자식 간이라는 징글징글하게 오묘한 관계에서는 그 원초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골몰하며 수많은 이야기가 피어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 많은 사람이 감화를 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 유사 가족 혹은 대안 가족이라 할 구성원들은 서로 진한 유대감으로 결속하지만, 그 한계 또한 명백하게 보여준다.

감독은 국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회 속에서 가족은 어떤 형태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감독의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도 ‘부모 노릇’은 핏줄이어야만 가능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부모 노릇은 책임감을 동반하며, 어린아이를 어떻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올바르게 키워내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가족’을 ‘책임감’과 연결해 생각하다 보면 보통 머리가 복잡해지는 게 아니다. 부모, 가족은 책임감 없이 존재하기 힘들지만 그 책임감이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큰 짐이 되기도 한다. 
  
무책임한 부모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옛이야기 ‘바리데기’의 오구대왕도 만만치 않다. 바리데기는 부모가 원했던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려졌다. 자신의 소망에만 집착해 자식을 외면한 아버지인데, 바리데기는 병이 깊어진 아버지에게 필요한 약을 구하기 위해 저승길도 마다치 않았고 , 오랜 세월 힘겨운 일을 겪은 뒤 결국 약수를 구해 와 아버지의 목숨을 살렸다. 
  
오구대왕은 버렸던 자식을 자기 목숨 살리는 약을 구해 오라며 저승길로 내모는 아버지다. 이 아버지를 살리는 바리데기는 그저 대단한 효녀였던 것일까. 
  
마을사람이 이름 지어준 ‘오늘이’, 부모 있는 ‘원천강’으로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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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강본풀이'의 오늘이를 통해 가족의 형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그 해답을 우리 무속신화 ‘원천강본풀이’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막한 들판 속 홀로 우뚝 선 ‘오늘이’ 이야기이다. 오늘이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오늘이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이 “네가 오늘 우리를 만났으니 오늘을 낳은 날로 하고 이름을 오늘이라 하자”고 해 오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름을 갖게 된 날 마을에서 만난 한 부인이 오늘이의 부모가 ‘원천강’이라는 곳에 있음을 알려주어, 그제야 자신에게도 부모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름을 얻고 부모가 있는 곳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곳을 찾아가 부모를 만나야 한다. 
  
그런데 그 여정에서 매일 글만 읽는 장상이와 매일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연꽃나무, 야광주를 둘이나 물고도 승천하지 못해 고민하던 이무기, 구멍 난 바가지로 우물물을 푸며 하늘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선녀들을 만났다. 이들은 각자 고민을 털어놓으며 원천강이라는 곳에 가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였고, 오늘이는 그들의 부탁 하나하나를 가슴에 담고 원천강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지기가 아무나 들여보내 줄 수 없다며 막는 통에 서러움에 북받친 오늘이는 통곡을 했다. 그 울음소리는 오늘이의 부모에게도 닿아 결국 원천강의 문이 열렸다. 이제야 만난 부모가 오늘이에게 해 준 말은, 오늘이를 낳은 날에 원천강을 지키라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이곳에 오는 바람에 함께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네가 하는 일을 보면서 너를 보호하고 있었다” 며 다정한 눈빛을 보내는 부모를 보며 오늘이는 부모의 존재를 확인하고 믿을 수 있었다. 아울러 원천강까지 오는 길에 만났던 이들에게 필요한 해답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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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오늘이는 사계절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결말은 오늘이가 원천강에서 부모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오늘이는 자신의 이름을 얻은 곳으로 되돌아왔고, 사계절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 그것은 곧 오늘이가 자신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원천강에는 사계절이 다 있었고, 자신의 부모가 그곳을 지킨다는 것을 알게 된 오늘이는 더 이상 부모와의 관계에만 골몰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 세상 이치를 이미 깨달았으므로 부모가 나에게 잘해주지 못한 게 있는지 캐묻고 따질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오늘이는 자신 스스로 오롯한 존재로서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바리데기는 아버지를 살린 뒤 저승길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 일생의 길고 험난한 여정을 끝마친 이들을 위로하는 신이 된 것이다. 바리데기는 부모와의 관계에 얽매여 효라는 이데올로기를 실천한 것이 아니다. 인간 존재로서 세상 이치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견디어냄의 의미, 오늘이처럼 타인과의 관계 맺음의 소중함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초연해 과제를 수행하고 성공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과 관계 맺음으로 내 문제 해법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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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상처에 골몰하지 않는 아이가 된 듯한 영화 '어느 가족'의 유리. [사진 티캐스트]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야기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주제로 하면서도 결국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주목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에는 이러한 이야기의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그러하지 않을까.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 관계 맺음에서 내 문제의 해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가족’에서 학대당한 다섯 살 아이 유리는 자기 집으로 다시 보내졌지만 더 이상 난간 틈으로 내다보는 시선에 머물지 않는다. 난간 위로 올라선 유리의 시선은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조금은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그 이후의 시간에 희망의 색을 보탠다.

유리의 미래에 잠시나마 그에게 아버지, 어머니 노릇을 해 주었던 오사무, 노부요와 다시 만날 기약 같은 것은 없지만 왠지 유리는 상처에만 골몰하는 아이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이처럼 오사무와 노부요를 기억하며 자기 길을 당차게 잘 갈 것 같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초빙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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