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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10)
제주도로 몰려와 집단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들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제주도에 상륙했다는 예멘 난민 문제로 연일 인터넷상 논쟁이 뜨겁다. 유명 배우가 난민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고, 이에 대해 한 만화가가 비아냥거림을 담은 만화를 그려 공개하면서 또 이러저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면에서 난민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논쟁의 저변에 깔린 혐오 감정에 대해 좀 들여다볼 필요도 있겠다.
내가 익숙한 것, 좋아하는 것에서는 혐오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낯설고 모르는 것, 싫어하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 혐오 감정이다. 좁디좁은 영역 안에서 그 안에 산재한 문제에 몰입하며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던 와중에선 외부에서 온 존재는 그저 낯설다. 더구나 이슬람권에서 온 이들이니 직관적인 느낌상 그들은 일단, 위험하다.
낯선 것을 대하는 두려움은 이야기 속에서 괴물로 형상화된다. 현대의 이야기에서는 좀비가 그 대표적인 형상이 되겠다. 우리 옛이야기에서 좀비 급 낯설고 무섭고 징그러운 괴물이라면, 구렁이가 있다. “구렁이가 뭐 별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 속의 구렁이는 이무기가 되고, 좀 더 살면 용이 돼 승천도 하는 참 희한한 존재이다.
할머니가 낳은 구렁이, 이웃집 셋째 딸이 좋아해
옛날에 한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는데, 낳고 보니 구렁이였다. 할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도 희한한데 그게 또 구렁이다. 이야기 속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징그러우니까 뒤꼍 굴뚝 아래에 짚단으로 덮어 놓고 보지도 않는다. 이웃 장자집 딸들이 아이를 보러 찾아왔다.
첫째 딸이, “할매 할매, 애기 낳았다더니 어디 뒀어요? 어째 방에 애기가 없어요?” 하니 할머니는 “저 뒤꼍에 삿갓으로 덮어 놨다” 했다. 첫째 딸은 삿갓을 들어 보더니, “헤! 하이구매, 징그러워라. 애기라더니 구렁이를 낳았구먼. 아이고 드러워” 하고 침을 탁탁 뱉었다.
다음에 둘째 딸이 오더니 애기 좀 구경하자고 해 할머니가 뒤꼍에 삿갓으로 덮어 놓았다고 하니 둘째 딸도 가서 보고는 더럽다며 침을 뱉고는 “애기 낳았다더니 겨우 구렁이 낳아 놓고 그런다” 하고는 핑 도망갔다.
그런데 구렁이가 셋째 딸과 혼인하고 심지어 훤칠하고 멀끔한 신선비가 되어 과거 시험도 볼 수 있는 능력자 정도 된다면 그 거리낌은 분노가 되어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 더럽고 징그러웠던 것이 이 세상에서 너무도 멀쩡하게 자기 몫을 챙겨간다고 생각하니 가만있을 수가 없던 것이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
할머니가 낳은 구렁이를 보고 첫째 딸과 둘째 딸은 더럽다며 침을 뱉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셋째 딸이 와서 보고는 “아이구우. ‘구렁덩덩신선비’를 낳았네. 할머니!” 했다. 셋째 딸은 뭘 보고 그랬을까. 다들 징그럽다, 더럽다 피한 구렁이가 셋째 딸에게는 어떻게 신선비로 보였을까. 남들과는 다르게 본 셋째 딸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
구렁이는 셋째 딸이 가고 나서 할머니에게 물을 끓여 달라며 목욕을 하더니 허물을 벗고 말끔한 신선비가 되었다. 그리고 장자집에 중신을 넣어 셋째 딸과 혼인한 후 허물을 셋째 딸에게 주며 잘 간직해 달라고 하고는 과거 시험을 보러 떠났다.
그러나 시샘 가득한 두 언니가 허물을 빼앗아 태워 버렸다.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구렁덩덩신선비’는 허물 타는 냄새를 맡은 신선
비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셋째 딸이 신선비와 재회하기 위한 험난한 여행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신선비가 허물 타는 냄새를 맡고는 과거 급제하고 나서 무슨 일인가 싶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변이형이 있다. 언니들 중 하나가 셋째 딸 행세를 하며 선비를 맞이했고, 신선비가 얼굴이 왜 그렇게 얽어 있느냐고 하니 미끄러져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어느 날 연꽃이 예쁘게 피었기에 신선비가 집 안에 꺾어 놓았더니 언니가 아궁이에 넣어 버렸고, 불씨를 빌리러 온 이웃집 할머니가 아궁이에서 구슬을 발견해 집에 가져갔더니 그게 어여쁜 처자가 됐다.
그래서 모든 진실이 드러나고 신선비가 두 언니를 맷돌에 넣고 갈아 버리고는 셋째 딸과 잘 살았다고 한다. 이 뒷부분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다. 짐작들 하셨을 테지만, 이건 ‘콩쥐팥쥐’다.
인형극영화 콩쥐팥쥐. 함부로 타인을 모욕하고 거짓으로 꾸미는 등 악행을 일삼은 언니들은 강력하게 처벌받는다.
‘구렁덩덩신선비’에서 ‘콩쥐팥쥐’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생소하지만 그 서사가 나타내는 바를 잠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갈 만도 하다 싶다. 두 언니가 징그러운 구렁이라며 침을 뱉고 싫어한 데에는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불쾌감도 있었겠지만, 정상적인 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느꼈던 거리낌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구렁이가 셋째 딸과 혼인하고 심지어 훤칠하고 멀끔한 신선비가 되어 과거 시험도 볼 수 있는 능력자 정도 된다면 그 거리낌은 분노가 되어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 더럽고 징그러웠던 것이 이 세상에서 너무도 멀쩡하게 자기 몫을 챙겨간다고 생각하니 가만있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러나 결말은 어떻던가. 이제는 충분히 힘을 갖춘 신선비가 언니들을 처단하고야 말았다. ‘콩쥐팥쥐’에서 환생한 콩쥐가 원님 남편의 힘을 빌어 악행을 처벌했듯이.
설화 전승자들은 함부로 타인을 모욕하고 거짓으로 꾸미는 등 악행을 일삼는 언니들을 그냥 두면 안 된다고 판단했기에 이러한 변이형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악행에 대한 처벌은 악행으로 인해 피해를 본 당사자가 직접 하는 것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복수이기도 하다.
본래대로라면 배우자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좌절해 관계에 위기가 생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거친 후 재회를 이루는 서사였던 것이 뜬금없이 복수의 서사가 되었다. 내가 타인에게 던진 혐오와 차별은 언젠가 내게 그대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모르고 겁나니까 싫어하기 전에 좀 들여다보고 제대로 알려고 해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부터 물정 모르는 소리라며 공격당하기 쉽다는 것도 알지만, 관계의 해법은 사소한 데 있기도 한 법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초빙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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