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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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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지난 13일 전국의 각 투표소에서 시행되었다.

  
또 한 차례 선거 바람이 지나가면서 우리는 매우 익숙한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추잡한 사생활 폭로전과 인신공격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욕설과 성 추문으로 곤욕을 겪은 후보도 있었고, 선거 홍보용 포스터에서 당찬 모습을 내세웠던 젊은 여성 후보는 ‘시건방진’ 사람이 됐다. 
  
정치적인 계산이나 입장 다 떠나서 건조하고 냉정하게 정책이나 가치관에 대한 평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굳이 사람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공격하는 데에는 어떤 감정이 깔렸을까. 시기, 질투? 공격성? 질투심이라면 그 상대가 자신보다 잘난 부분이 무엇이든 하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공격성이라면 그렇게 추잡한 태도로밖에 표출하지 못하는 미성숙을 드러내는 것 외에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문을 욕보이는 인신공격에 대응하는 옛이야기의 자세

전통 사회에서 경쟁 상대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데에는 혈통을 문제 삼으며 가문을 욕보이는 것이 최상급 공격 방편 중 하나였던 같다. 여기 말 한 번 잘못 했다가 평생 고자 대감으로 불리게 된 양반의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영변에 사는 조 진사가 말을 참 잘해서 어떤 사람 말이라도 금방 받아넘길 줄 알았다. 조 진사는 서울의 정승 판서들과 친해서 자주 어울렸는데, 어느 날은 서울에 갔더니 정승 판서들이 무척 반가워하면서 아무개 대감이 워낙 언변이 좋아 자기들이 늘 놀림을 당하기만 하니 오늘 그 대감 코를 좀 납작하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조 진사는 문제없다며 술이나 한잔내오라고 하였다. 잠시 후 그 자리에 아무개 대감도 합석했다. 아무개 대감이 먼저 자신은 서울 재동 사는 아무개 대감이라고 인사했다. 조 진사가 평안도 영변에서 온 조 진사라고 하자 아무개 대감이 그쪽에는 중국 사람이 왕래를 많이 하지 않느냐며 중국 사람이 밤중에도 오고 유부녀 겁탈도 많이 하니까 그쪽에선 아이를 낳게 되면 중국 사람의 아이인지 아닌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했다. 
  
조 진사는 그거 틀림없다며 맞장구치고는, 그런데 거기는 중국 사람의 아들을 낳게 되면 불알을 말총으로 챙챙 감아서 떨어뜨려 버리고는 서울 재동으로 쫓아 보낸다고 했다. 옆에 있던 정승 판서들이 “아무개 대감이야말로 되놈의 씨로구나” 하며 마음껏 놀려댔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조 진사는 조선 시대에 영변에서 살았던 실재 인물이며 조 진사의 자손도 여기 나와서 많이 살고 있다고도 한다. 최대한 고상하게 표현해 소개했지만, 아무개 대감은 혈통으로도 남성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완전히 별것 아닌 사람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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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틀랜드 출신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가 그린 조선의 모습.


성씨를 가지고 인신공격하는 예로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옛날에 안 진사와 명 진사가 살았는데, 명 진사가 안 진사의 성인 안(安) 자는 갓머리(宀)에 계집 여(女)자가 붙은 것이었다. 계집이 갓을 쓴 건 무당이니 안 진사는 무당의 자식이라며 놀렸다. 
  
안 진사가 화가 나서 집에 가 있는데 마침 중이 시주를 청했다. 안 진사가 명 진사에게 놀림 받은 일을 말하자 중은 자기가 대신 보복해줄 테니 지금 명 진사 집에 가 있다가 자기가 그 집에 가거든 자기 성을 물어보라고 했다. 잠시 후 명 진사 집에 가 있던 안 진사가 시주받으러 온 중에게 성을 물어봤다. 
  
중은 한참 부끄러워하다 겨우 입을 떼어 자신은 명 씨라고 했다. 명 씨라고 말하는 게 왜 그렇게 부끄럽냐고 물었더니 중은 자기 선대의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는 산골에 홀로 살았는데 근처 일밤절과 월밤절에 있는 중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할머니와 동침을 해서 아이가 생겼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어 날 일(日) 자와 달 월(月) 자를 붙인 밝을 명(明)을 성으로 지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안 진사가 명 진사에게 중의 아들이라고 놀리자 명 진사는 화가 나서 중을 때리려고 했다. 중은 산으로 도망가 버렸고, 그 후 명 진사와 안 진사는 정직한 말만 하며 잘 지냈다고 한다. 
  
혐오 감정을 이용한 역공의 지혜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에게는 쾌락적 복수심이 있다고 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대상으로 해 무차별 폭로전을 펼치며 그들이 괴로워하고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대중이 미디어를 활용하여 벌이는, 사회를 향한 개인의 복수극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내가 가질 수도 있었던 것을 상대가 갖고 있다는 데에서 자각되고 이것이 비뚤어지면 상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대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공격하게 된다. 정치인끼리의 공방은 지지자 집단으로 확장해 사회적‧세대적 갈등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 현상은 보통 혐오 감정을 깔고 앉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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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박탈감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가 갖고 있다는 데에서 지각되고, 상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대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공격하게 된다. 

  
대개 뜬소문들이 그러한 공격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묻혀 있던 진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위의 이야기들에서는 평안도 영변 출신이라는 것과 성씨의 한자 조합을 해석한 내용이 공격의 근거가 됐다. 단지 공격하기 위해 찾아낸 조건일 뿐 조 진사와 안 진사의 인품이나 능력과는 상관없는데 이에 대해 영변이 그런 동네인 것 맞다고 하고 조상을 들먹이며 누구와 밤을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하며 맞섰다. 
  
파르르 떨며 분노하기보다 오히려 그 혐오 감정 자체를 이용하여 역공한다. 뜬소문을 근거로 한 공격일 때 이 정도 세련된 대응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때로는 실제 사실에 근거한 공격일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차라리 있는 그대로 “맞다, 그렇다, 그동안 숨겨온 것은 죄송하다, 그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 정도 화끈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을까. 
  
사람들은 의외로 그런 일에 냉정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갖는다. 개인적 한계나 잘못은 인정할 줄 아는 책임감 있는 인물, 성심으로 일할 줄 아는 자세와 능력을 갖춘 인물이 나타나 주기를 바랄 뿐이다. 스스로 고고해 일부러 싸우며 내세우지 않아도 타인이 그 향기를 알아차리게 되는 그런 사람을 우리는 더 많이 만나고 싶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초빙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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