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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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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는 의미의 가족은 최근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진 pixabay]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가족이라고 했다.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는 법의 규정은 최근에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단독가구와 사실혼 가족, 동성 가족이 증가하는 현상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기본 단위로서 가족이라는 개념은 이전 세상을 지탱하던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기반이 되기도 했으니 이제는 그 틀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가족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가족의 따뜻한 품이 그래도 살아갈 힘을 얻게 하고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위안을 갖게 하지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 또한 가족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의 ‘부친살해’ vs 우리 민담의 ‘자녀살해’

태초의 신화에서 전해지는 인간의 시간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고이 이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아버지를 거세하고 넘어서는 아들의 이야기로 나타난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크로노스는 우라노스를 거세한 후 최고 신으로 등극했지만 그 아들 제우스에 의해 타르타로스에 유폐됐다. 
  
아버지들은 거세와 유폐를 거침으로써 아들에게 다음 시간을 물려준다. 우라노스는 자신이 낳은 자식들이 흉측하다며 지하 세계에 감금했고 가이아가 복수를 명하자 막내 크로노스가 가이아의 낫을 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일로 저주를 받은 크로노스는 자신도 자식을 낳자 모두 집어 삼켜버렸다. 그 와중에 어머니 레아의 기지로 살아남은 제우스가 반란을 주도해 아버지 크로노스를 가둬 버리고 이때부터 바야흐로 올림포스 신족의 시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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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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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이그나츠 귄터(Franz Ignaz Günther), 크로노스. [중앙포토]

  
우리 옛이야기에서는 이러한 그리스 신화의 ‘부친살해’ 모티프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자녀살해’ 모티프가 두드러지는 편이다. 그것도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아버지 자신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 봉양이 그 동기가 된다. 우리 이야기의 특이한 현상이라면 부모 봉양을 위해 자식을 버려도 좋다는 의식이 담긴 것이다. 
  
‘손순매아(孫順埋兒)’로 잘 알려진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삼국유사』 권5 ‘효선편(孝善篇)’에 적힌 이야기는 손순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어린 아들이 어머니 밥을 자꾸 빼앗아 먹어 아들을 버리기로 하고 산에 가서 땅을 팠더니 그 안에서 석종이 나왔다는 것이다.  
  
종을 쳐보니 아름다운 소리가 울렸고 손순과 부인은 이것이 아이의 복이려니 하고 도로 아이를 데려왔다. 아름다운 종소리는 대궐에까지 퍼졌고 자초지종을 알게 된 왕은 부부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집과 식량을 하사했다. 
  
부모 봉양을 위해 자식의 희생을 용인하는 예로는 이런 경우도 있다. 부부가 갓난아기를 노쇠한 아버지에게 맡기고 밭일을 하러 나갔는데,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든 사이 갓난아기가 방 안에 있던 화로에 들어가 타 죽어버렸다. 아버지가 나중에 깨어나서 그걸 보고는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며느리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냥 다시 자는 척했다. 
  
며느리는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을 보고는 조용히 안고 나와 뒷산에 묻은 뒤 나중에 들어온 남편에게 아이는 나중에 또 낳으면 된다며 조용히 있자고 했다. 부인의 마음에 감복한 남편은 그 뒤로 밖에서 일하고 들어올 때마다 부인에게 큰절을 올렸고, 그게 소문이 나서 효자비를 하사받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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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손순유허비석. [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하늘이 내린 관계, 인간이 살아내는 시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로되, 그 관계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두 이야기는 현실적으로는 거의 일어나기 힘들 것 같은 상황을 통해 천륜을 말한다. 그만큼의 숭고한 희생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전 시대 빈번했던 유아 살해의 사실을 바탕에 둔 것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리 의식 속에서 ‘자식보다 부모’이긴 했던 듯하다. 그러나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고, 이제는 존속살해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젊은 혈기를 업고 일어난 우발적 범행인 경우도 있지만 50~60대 중늙은이 아들이 70~80대 노인을 폭행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러한 존속살해는 아버지를 거세 혹은 유폐 후 득세하는 아들을 상징하는 부친살해의 모티프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오히려 아버지를 제대로 넘어서지 못한 아들의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부모를 위해 자기 자식의 생명을 버리거나,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도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 분노를 직접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은 아버지 그늘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여린 아이의 심정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부모와 자식은 상생의 지혜 발휘해야  

부모와 자식은 시간이 흘러가는 이치를 알고 이를 따르며 상생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초록 세상을 보며, 겨울의 죽음 뒤에야 초록이 자라남을 새삼 지각하고 무조건적 순응이나 저항은 생명의 흐름을 역행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또한 깨닫는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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