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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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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 한곳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선녀동굴 이다. '나무꾼과 선녀'의 설화에 나오는 선녀가 살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중앙포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백 번 천 번도 찍을 수 있어
내 옆에 당신만 있어 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사랑이란 나무도 인생이란 나무도 행복이란 믿음의 나무도
멋있게 키워서 내 품에 안고 가 당신 품에 안겨 주고 싶어
사랑이란 나무도 인생이란 나무도 행복이란 믿음의 나무도
멋있게 키워서 내 품에 안고 가 당신 품에 안겨 주고 싶어
나는야 당신의 사랑의 나무꾼
 
신명 나는 북 장단과 함께 구성진 목소리로 끌어내는 나무꾼의 사랑 노래이다. 당신만 있어 준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사랑·인생·행복 모두 멋있게 키워서 당신 품에 안겨 주고 싶다는 나무꾼의 사랑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러나 내 옆에 당신만 있어 준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섬뜩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면,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무시하는 여자의 오만함이라고 지탄받을까?
 
 나무꾼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어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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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인 '어사용'.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나무꾼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높고 깊은 산을 오르내리며 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거나 주워 모아 장에 내다 파는 걸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나무 팔아 벌 수 있는 돈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으며, 옛 시대에 가장 미천하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이 하던 일이었다.
 
이들이 하는 노래는 딱히 노동요랄 것도 없다. 그저 지게 받쳐 놓고 잠시 앉아 숨을 돌리면서 가진 것 없고 임조차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이나 하는 것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이런 나무꾼의 노래가 ‘초부가(樵夫歌)’ 혹은 ‘어사용’이라고 불리는 ‘나무꾼 소리’다.
 
“…어떤 사람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이 앉어. 핀키 사는마는 내 팔자가 와 이런고. 내 팔자가 와 이런고 못 살겠네 못 살겠네.”
 
“내려간다 내려간다 나무 한 짐을 등 뒤에 지고 내려간다 어랑어랑 어허야 다리가 떨려 내려가고 나 등 뒤에다가는 나뭇짐이 모가지를 누르는데 내려간다 내려간다 배가 고파 못 가겠으니 쉴 터에서 한번 쉬었다 가자 쉬었으면 내려가자 내려가자….”
 
이렇게 신세 한탄하던 나무꾼 앞에 산신령이 나타나면 설화 '나무꾼과 선녀'가 된다. 이야기 속 나무꾼은 위험에 처한 노루를 구해준 덕에 선녀가 목욕하는 연못에 가면 짝을 만날 수 있다는 꿀팁을 얻었다. 노루로 화(化)한 산신령은 어쩌자고 이런 천기누설을 저질렀을까.
 
나무꾼은 그저 노루가 하라는 대로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선녀를 아내로 맞이해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를 둘 혹은 셋을 낳은 이후 ‘이제 와 뭘 어쩌랴’ 싶어 날개옷을 내어 주자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아이들까지 양팔에 하나씩 끼고 그대로 하늘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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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성 없고 자기 처지를 성찰할 능력도 없었던 나무꾼. 애초에 선녀의 날개옷을 훔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었다면 평생 하늘만 쳐다보며 병들어 죽었을까? [사진 유튜브 캡처]

 
선녀와 함께한 결혼 생활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옛이야기에서는 그 과정에 대해 친절하게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저 결혼하였으니 함께 살면서 아이를 몇 낳았다는 시간 흐름만 보여준다. 동화적 환상에서 결혼은 그 이후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라는 끝맺음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나무꾼과 선녀'에서는 오래오래 잘 살기만 할 수는 없는 결혼 생활의 중차대한 위기 상황을 보여준다.
 
이 위기 상황에서 나무꾼은 그저 울거나 속절없이 노루를 만났던 곳을 다시 찾아가 보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다시 나타난 노루는 아이를 셋 이상 낳을 때까지는 절대 날개옷을 돌려주면 안 된다는 조건을 지키지 못한 나무꾼에게 지청구를 줄 수밖에 없다. 결혼 생활에 위기를 초래한 주체는 결국 나무꾼이었던 것이다.
 
나무꾼은 노루가 다시 도와주어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으나 지상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을 버릴 수 없었고, 어렵게 얻은 기회를 또 놓쳐 결국 다시는 하늘나라로 가지 못한 채 수탉이 되어 하늘을 바라보며 꼬끼오 울어댈 수밖에 없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빈곤과 짝없는 설움에 가득 차 신세 한탄으로 세월을 보내던 나무꾼에게 누설된 천기는 나무꾼에게 절대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감히 넘보아선 안 될 존재에게 눈길을 주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가능한 시도였음에도 반드시 지켰어야 하는 조건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나무꾼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다.
 
첫 번째 조건은 날개옷을 내주어도 되는 기한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 조건은 지상의 어머니를 만나는 대신 천마(天馬)에서 내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준 기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참을성 있게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라는 조건은 나무꾼이 선녀와 신뢰 관계를 충분히 갖추는 데 요구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또한 선녀를 좇아 하늘나라 세계에 진입한 이상 이제 나무꾼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었다. 천마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디면 안 된다는 조건은 그래서 제시되었던 것 아닐까. 그러나 나무꾼은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 앞에서 그걸 망각해 버렸다. 어머니가 건네주는 죽 그릇을 받아들기 위해 말에서 내려 버린 것이다. 그 순간 천마는 히히힝 울음소리만 남기고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가 버렸고, 나무꾼은 평생 하늘만 쳐다보다 병들어 죽고 수탉이 되었다.
 
참을성도 없고 자기 처지를 성찰할 능력도 없는 인물이 나무꾼이다. 애초에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야 한다는 방법이 제시되었을 때 그것이 자기 처지에 가당키나 한 일인지를 성찰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선녀가 침해당한 신체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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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백 번 천 번도 찍을 수 있다'는 선언은 여성에겐 끔찍한 소리가 될 수 있다. [중앙포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인권 속 별별 이야기’ 블로그에서도 나무꾼으로 인해 선녀가 두 가지 인권에 해를 입었다고 제시한다. 첫째는 신체의 자유이고 둘째는 행복추구권이다. 낯선 남자에 의해 강제로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날개옷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번번이 무시당하면서 선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백 번 천 번도 찍을 수 있다’는 선언은 그래서 여성에겐 끔찍한 소리가 될 수 있다. ‘내 옆에 당신만 있어 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맹세는 날개옷을 훔쳐서라도 선녀를 곁에 두고 싶어 한 나무꾼의 태도와도 연결되어 마냥 아름답게만 들리진 않는다.
 
순정남의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공격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 발화의 주체와 맥락에 따라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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