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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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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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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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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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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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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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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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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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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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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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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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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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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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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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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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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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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블로그 클럽  
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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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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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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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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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블로그 클럽  
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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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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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핫이슈'인간' 조용필(68)은 재미가 덜하다. 팬들의 매를 맞을 말이지만 실제 만나본 그는 그랬다. 마치 모범답안지를 보는 듯했다. 

그와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그는 줄곧 자기 노래만 부른다. 그에겐 노래방도 훈련장이다. 다른 가수의 곡을 고르는 건 가뭄에 콩나기다.

10년 전이다. 데뷔 40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본인 노래만 반복하면 물리지 않나요." 대답도 그다웠다. "아니요. 매일매일이 연습이죠. 잠시라도 쉬면 표가 납니다." 

이해도 된다. 히트곡이 부지기수니 그것만 불러도 한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생활인' 조용필은 조용하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7년 전쯤 기자가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조카 자랑을 했다. 조용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조용필 장학금? 기획사에 문의해보니 "사실은 맞지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혜를 받은 분들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용필은 2003년 심장병으로 숨진 아내가 남긴 재산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내놓았다. 10년 전 이맘때 조씨가 노래방에서 부른 유일한 남의 노래도 아내가 좋아한 가곡 '떠나가는 배'였다. 그는 2009년 장학재단을 설립, 어려운 중·고생들을 돕고 있다. 

반면 '연습생' 조용필은 집요하다. 외곬 기질이 있다. 그의 승용차에 동승한 적이 있는데 그가 타자마자 AFN(미군방송)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췄다. 차 안에서는 자나 깨나 AFN을 튼다고 했다. 데뷔 시절부터 몸에 붙은 버릇이란다. 외국 최신 음악 경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대중의 기호를 먹고 사는 가수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의무감마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부단한 자기갱신이다. 

덕분에 '가왕' 조용필은 늘 달라져 왔다. 민요부터 댄스곡까지, 발라드부터 록까지 변주를 거듭해왔다. 

어제의 조용필과 오늘의 조용필이 같지 않았다. 노래라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되 그 가지는 다양하게 뻗어왔다. 

남녀·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려온 밑바탕에는 이런 일관성과 유연성이 깔렸다. '영원한 오빠'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닐 터다. 

조용필이 또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무대를 꾸미며 새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팬클럽 연합모임 행사에서 "한국적인 노래를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머지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시도해보고 다른 것도 해보고 방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필이 내놓을 EDM, 5년 전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의 통통 튀는 리듬에 다시 빠져들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외교관' 조용필이 13년 만에 평양 공연을 다녀왔다. 데뷔 50돌 콘서트 준비로 후두염에 걸려 고열·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창을 했다는 후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정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의 노래가 남북을 다시 잇는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남북예술인들 연합무대 리허설에서 "음악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의 부제 '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 '가을이 왔다'처럼 2018년 한반도에 화기(花期)가 쭉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와 정치는 다르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는다. 언제든지 겨울로 돌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와야 봄이 시작되고, 둘 셋 계속 늘어나야 봄이 완성된다. 

지난 반세기 조용필의 발걸음이 그랬다. 천천히, 꾸준히 보폭을 넓혀왔다.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방편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용필이 평양에서 부른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김 위원장의 신청곡 '뒤늦은 후회'는 더더욱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북한의 결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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