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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노산에 당이 붙는 반응, 즉 당화 반응은 음식의 풍미를 높인다. 까맣게 볶은 커피, 노릇노릇 구운 식빵, 구수한 누룽지 등 ‘당화산물’은 하나같이 입맛을 자극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화산물을 무턱대고 많이 먹으면 노화가 촉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화산물이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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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독일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 로렌의 유복한 집안에서 루이-카미유 마이야르(Louis-Camille Maillard)가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척 총명해 주변 사람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불과 16세에 문학·철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낭시대 의대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과학 및 의학을 공부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을 폭넓게 공부한 마이야르는 특히 화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의학에 화학을 접목해 오늘날 생화학에 해당하는 분야, 즉 인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연구했다. 한편 기초과학의 본질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도대체 단백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제다. 

 

1912년, 34세의 마이야르는 아미노산에서 단백질을 합성하기로 결심하고 이런저런 연구를 하다 특이한 것을 발견한다. 아미노산과 당을 같이 넣고 고온에서 반응시키자 용액이 갈색으로 바뀐 것. 이런 변화에 흥미를 느낀 마이야르는 용액을 분석해 아미노산과 당 사이에 반응이 일어난 걸 발견하고 이를 3쪽짜리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 뒤 마이야르는 단백질 합성이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의학 연구에 전념했다.

 

 

 

마이야르 반응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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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화 반응을 처음 발견한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의사 루이-카미유 마이야르. [위키피디아]

 

 

 

마이야르 자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이 논문은 20세기 중반 식품업계에서 재발견됐다.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할 때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면서 뒤늦게 주목받은 것이다. 연구자들은 아미노산에 당이 붙는 반응, 즉 당화반응을 ‘마이야르 반응’이라 명명했다. 

 

마이야르 반응은 포도당이나 과당 같은 당과 단백질의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 사이에 일어나는 반응을 뜻한다. 음식은 결국 동식물의 몸이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사실상 모든 음식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반응이 잘 일어나려면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고온으로 조리하는 식품에서 특히 마이야르 반응이 잘 일어난다. 

 

커피 원두 로스팅 과정이 그중 하나다. 생두는 빛깔이 회녹색이고 냄새도 약간 비릿하다. 그런데 생두를 볶기 시작하면 점차 갈색을 띠고 커피 특유의 향이 올라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두색은 더 짙어지고 향도 강해진다. 커피를 볶을 때 수많은 화학반응이 일어나지만 이런 색깔의 변화와 향기의 생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바로 마이야르 반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븐에 들어간 밀가루 반죽이 노릇노릇 구워지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것, 석쇠에 올려놓은 돼지갈비가 갈색으로 익으면서 ‘고기냄새’(적당한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는다!)를 풍기는 것도 다 마이야르 반응의 결과다. 

 

밥을 할 때 물을 좀 적게 잡거나 뜸을 좀 오래 들이면 누룽지가 생기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물이 충분할 때는 솥 내 온도가 100도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밥알이 물을 흡수하고 일부가 김으로 빠져나가면 솥바닥을 경계로 불(火)과 맞닿아 있는 바닥 쪽이 건조해져 온도가 100도 이상 올라가면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쌀이 노릇노릇해지면서 구수한 누룽지의 풍미가 만들어진다. 

 

1960년대 후반 과학자들은 혈액의 헤모글로빈 단백질을 분석하다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헤모글로빈에 포도당이 붙은, 즉 당화된 헤모글로빈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혈액 속의 포도당(혈당)과 헤모글로빈의 아미노산 사이에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 결과였다. 당과 아미노산이 만나기만 하면 열을 가하지 않아도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는 게 확인됐다. 다만 속도가 훨씬 느릴 뿐이다.

 

 

‘노화의 지표’ 최종당화산물

1970년대 들어 당화된 헤모글로빈(이를 ‘당화혈색소’라고 부른다) 수치가 혈당 수치보다 당뇨병 환자의 건강을 잘 보여준다는 의견이 나왔다. 혈당은 측정 당시 몸 상태나 섭취한 음식에 따라 편차가 크다. 반면 당화혈색소는 2~3개월간 혈당 변화가 누적된 값으로, 정확도가 높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당화 반응 속도가 반응물의 농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즉 혈액에 포도당이 많으면 당화 반응이 더 많이 일어난다. 그 결과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아진다. 한편 헤모글로빈을 지닌 세포인 적혈구의 수명은 2~3개월이다. 따라서 당화혈색소는 그 기간 혈당치 평균을 반영한다. 보통 당화혈색소 수치 5.6%까지를 정상 범위로 본다. 당뇨병 환자는 이 수치가 7%를 넘지 않게 관리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체내 당화 반응이 헤모글로빈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 몸에 있는 다른 단백질에서도 당화 반응이 일어난다. 1986년 미국 록펠러대 생화학자 앤서니 세라미 교수는 당화 반응으로 시작해 만들어진 다양한 물질에 ‘최종당화산물(advanced glycation end-produc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당화산물이 우리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노화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당뇨 합병증이라고 하는 여러 질병에 최종당화산물이 관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뇨병이 없더라도 나이가 들면 체내 최종당화산물 수치가 올라가고 각종 만성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최종당화산물 수치를 몸의 노화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보는 이유다. 대체 최종당화산물은 우리 몸에서 어떤 일을 하는 걸까. 

 

최종당화산물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먼저 직접 현장에 뛰어드는 방식이 있다. 콜라겐이나 단백질에 달라붙어 교차반응을 일으켜 조직을 딱딱하게 만드는 식이다. 콜라겐은 섬유 단백질로 피부, 근육, 혈관 등에 분포해 해당 조직에 탄력을 부여한다. 최종당화산물이 콜라겐 사이에 끼어들어 꽉 붙들면 탄력이 떨어진다. 그 결과 근육이 뻣뻣해져 힘이 떨어지고 혈관이 굳어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진다.

 

 

‘시커멓게 볶은 아메리카노’에…

최종당화산물은 또 눈의 수정체 안에 있는 단백질에 달라붙어 서로 엉키게 해 빛을 산란시킨다. 그 결과 수정체가 뿌옇게 되는 백내장이 생긴다. 이 역시 나이가 들수록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질병이다. 

 

한편 최종당화산물이 신호분자로 작용해 세포가 자신을 망치게 유도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즉 혈관을 따라 몸을 순환하는 최종당화산물이 조직에 침투해 세포막에 있는 수용체 단백질에 달라붙으면 세포 안으로 신호가 전달돼 일련의 염증 반응이 촉발된다. 그 결과 활성산소가 많이 생겨 세포가 손상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뇌의 신경세포(뉴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실제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같은 나이대의 건강한 사람에 비해 체내 최종당화산물 수치가 높다. 류머티스 관절염 역시 최종당화산물이 염증 반응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 존재하는 최종당화산물 양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당화산물 섭취를 줄여야 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마이야르 반응은 모든 음식 조리 과정에서 발생한다. 생식을 하지 않는 이상 당화산물을 먹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 쓰면 당화산물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 

 

커피를 보자. 20년 전 스타벅스가 진출하며 카페 문화를 선도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두가 시커멓게 될 때까지 볶은 ‘다크 로스팅(dark roasting)’의 풍미에 익숙하다. 그러나 커피 서적을 보면 지나친 로스팅은 커피 본연의 향과 맛(산미)을 오히려 잃게 만든다. 이에 따라 ‘마일드 로스팅(mild roasting)’이 추천되는 경우가 많다. 덜 볶거나 덜 구우면 당화산물도 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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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갈비의 씁쓸한 진실

우리 몸에서 당과 단백질이 반응하면 당화단백질(당화혈색소가 이 상태다)이 생기고 추가 반응을 통해 최종당화산물(AGE)이 만들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몸 곳곳에 최종당화산물이 축적되면 만성질환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 몸에서 당과 단백질이 반응하면 당화단백질(당화혈색소가 이 상태다)이 생기고 추가 반응을 통해 최종당화산물(AGE)이 만들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몸 곳곳에 최종당화산물이 축적되면 만성질환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고기도 수백 도까지 올라가는 ‘굽기’보다 100도 내외까지만 조리하는 ‘삶기’로 요리하는 게 당화산물 섭취를 줄이는 방법이다. 갈비보다 수육이 좋다는 말이다. 같은 돼지고기라도 삼겹살보다 갈비가 훨씬 빨리 탄다. 설탕을 듬뿍 넣은 양념에 고기를 재워 당화산물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기가 탈 때 많이 생기는 아크릴아미드나 이종고리아민 역시 당화산물이며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소식(小食)이 장수의 비결인 것도 당화산물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평소 식습관을 유지할 경우 당화산물 섭취량은 먹은 음식 양에 비례한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 결과를 보면 마음대로 먹은 그룹에 비해 같은 사료를 70%만 먹은 ‘칼로리 제한’ 그룹의 수명이 13% 더 길었다. 반면 칼로리를 제한하되 최종당화산물을 추가한 그룹은 수명이 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노화를 늦추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당화 반응의 원료인 당분 또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음식으로 섭취하는 당화산물의 상당량은 대소변으로 배출된다. 그러나 당분이 체내에 많으면 당화 반응이 가속화한다. 즉 마일드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커피에 설탕이나 시럽을 잔뜩 넣어 마시면, 다크 로스팅의 상징인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그냥 마시는 것보다 오히려 최종당화산물이 더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조리법을 개선하고 당 섭취를 줄여도 우리 몸에서 최종당화산물이 만들어지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혈당을 ‘제로’로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일단 생긴 최종당화산물을 없애거나, 최소한 그 작용을 억제할 방법이 없을까. 

 

우리 몸에는 최종당화산물을 분해하는 생체 촉매 ‘효소’가 여럿 존재한다. 만일 이런 효소가 없다면 최종당화산물이 훨씬 빠르게 축적될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효소 양이 줄어 분해 속도가 떨어지다 보니 최종당화산물이 점점 쌓이는 것이다. 그 결과 노화가 촉진돼 효소를 더 적게 만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당화산물이 더 빨리 축적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이를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라고 한다).

 

 

운동이 살길이다

다행히 과학자들은 그동안 최종당화산물 작용을 억제하는 약물이나 성분을 여럿 찾았다. 과일에 들어 있는 비타민C와 레드와인에 들어 있는 레스베라트롤, 카레의 커큐민 같은 항산화제가 최종당화산물의 해로운 작용을 억제한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있다. 아스피린 역시 몇몇 당화산물의 생성을 줄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최종당화산물 자체를 파괴하는 약물도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몇 가지 후보물질에 대해서는 임상시험까지 진행됐지만 효과가 미미하고 부작용이 있어 상용화엔 실패했다. 당분간 당화산물이나 당분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 섭취를 줄이고 건강보조식품을 챙겨 먹는 게 실천 가능한 대응책일 것이다. 

 

운동이 체내 당화산물 축적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45세 이상 건강한 남녀를 대상으로 매주 2회 1년 동안 태극권 수업을 받은 그룹과 받지 않은 그룹의 최종당화산물 수치를 비교한 결과, 태극권을 한 그룹의 수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운동이 당화산물 축적을 억제하는 과학적 과정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몸 안에 최종당화산물이 쌓이는 걸 막거나 늦추는 방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건강한 생활습관과 뻔한 처방을 꾸준히 실천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말이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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