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전무후무한 스타 신성일. 그는 50여년간 활동하면서 한국영화사에 숱한 걸작들을 남겼다. 출연작 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만 520여편에 달한다. 뉴시스
‘맨발의 청춘’의 극 중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별들의 고향’의 극 중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길소뜸’의 극 중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만추’의 극 중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지난 엄앵란 편에서 나는 신성일을 “특유의 생명력으로 세월을 이겨낸 거대한 배우”라고 규정했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설해왔듯, 그는 그저 영화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연예·문화예술계,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의 전무후무한 엔터테인먼트 스타로 필자의 심상에 머물러 왔다.
신성일은 내게, 그 누구와의 비교도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존재인 것이다. 월간 문화잡지 ‘쿨투라’ 10월 특집 테마 ‘한국영화 100년’ 설문 중, 20세기 한국영화 최고 남배우로 김승호와 더불어 신성일을 선정해 보낸 것도 그래서였다.
일찍이 나는 한국영화사 최고 남자 배우로 김진규를 선택했었다.
그는 숱한 한국영화사의 문제적 수·걸작들의 주역 아닌가. 데뷔작 ‘피아골’(이강천·1955)에서 출발해 ‘하녀’(김기영·1960) ‘오발탄’(유현목·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1961) ‘벙어리 삼룡’(신상옥·1964) ‘성웅 이순신’(이규웅·1971) ‘의사 안중근’(주동진·1972) 등을 거쳐 거장 이만희의 유작 ‘삼포 가는 길’(1975)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대체 왜 내게, 이런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다름 아닌 신성일 “특유의 생명력” 때문이다. 20년가량이면 김진규도 꽤 긴 생명력을 자랑하긴 했다. 하지만 신성일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그는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1960)로 성공적 데뷔전을 치른 이래 ‘야관문: 욕망의 꽃’(임경수·2013)에 이르기까지 53년간 520여편의 공식 출연작에서, 주연으로든 여타 조연이나 단역으로든, 영화 현장을 지켜온 영원한 현역이요, 청춘이었다.
스타성을 감안한 생명력에서 그에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예외적 배우는 딱 한 명뿐. 상기 설문에서 최고 여배우 영예를 차지한 김지미다. 신성일이 최고 남배우로 선택됐으리라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 없을 터.
외모·실력 겸비한, 의리의 사나이
신성일은 여느 배우들과는 달리, 대표작들이 적잖다. 30~40편쯤은 당장이라도 열거할 수 있을 정도다.
그것도 30여년에 걸쳐 두루 분포돼 있다. 1960년대가 가장 많긴 해도. 한국영화 연구자 안태근이 ‘한국영화 100년사’(북스토리)에서 “신성일은 어느 감독을 만나건 간에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얼굴만 잘나서 최고의 배우가 된 것은 아닌 것이다. 감독들과 의리도 대단해 조감독 때 봐두었던 감독들이 데뷔작에서 요청하면 ‘그 친구의 데뷔작이라면 꼭 해야지’라며 사양을 모르던 그였다.
기성 감독들의 부탁인들 마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진술했는데, 입발림용 치사로 다가서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해 10월 4일 그 ‘의리’를 공개적으로 목격·체험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였다. 그날로부터 한 달 뒤인 11월 4일,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앓고 있던 폐암 탓이었다.
1년 전 22회 영화제 때 회고전을 치른 그였다. 그는 중환자의 몸으로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것이다. 청바지에 캐주얼 재킷 차림으로, 정성 들여 닦은 구두를 신고. 그 얼마나 아름다운, 신성일다운 의리인가!
그를 보내며 국민일보 지면에 나는 이렇게 추모했다. “단언컨대 내게 올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의 단 한 명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신성일이었다. 환한 미소를 품은 그 당당함과 품위는, 정확히 한 달 후 저세상으로 떠날 폐암 3기 환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결정적 출세작 ‘맨발의 청춘’(1964)에서 연기한 인물 두수에 직결됐다. …반영웅적 캐릭터들을 자기만의 이미지와 스타일로 멋들어지게 소화해낸 영웅적 스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와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영원한 청춘’ 신성일과 함께”라고.
사실 나는 중학교 적인 70년대 중반 ‘별들의 고향’(이장호·1974)을 통해 만난 이후 줄곧 신성일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 멜로는, 장차 나를 영화 평론의 길을 걷게 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문호와 경아(안인숙 분)가 나누는 마지막 정사의 강렬한 감흥은 지금도 생생히 내 전 존재에 각인돼 있다. 서두에 신성일을 “절대적 존재”로 일컬은 주된 연유다.
두수와 문호만이 아니다. ‘길소뜸’(임권택·1986)의 동진은 어떤가. 50줄 목전의 신성일은, 화영 역 김지미와 함께 이산과 분단이라는 논쟁적 현실을, 머리와 가슴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냉철하면서도 따듯한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묵직하게 연기한다. 이후로도 그는 여전히 건재를 과시한다. 몇 편만 들어보자. ‘레테의 연가’(장길수·1987) ‘코리안 커넥션(고영남·1990) ‘증발’(신상옥·1994) 등이다.
신성일은 이들 영화들에서 각각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연기상과 제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자연기상, 제28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32회 대종상 남우조연상 등을 안는다.
67년 한 해에 51편 출연… 기록적 다작
상기 영화들 전후로도 신성일은 숱한 수·걸작들에서 열연을 펼친다. ‘만추’(이만희·1966)는 필름이 부재해 직접 확인할 길은 없으나, 신성일이 자신의 전작(全作) 중 최고작으로 자천하는 데다 신화적 걸작이라는 세평이 즐비하니, 그 맛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처음 발굴 상영되었고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을 통해 소개된 ‘휴일’(1968)에서의 허무적 연기도 그 짐작에 힘을 보탠다.
김승옥의 걸작 단편 ‘무진기행’을 옮긴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나 이어령 원작을 극화한 이성구 감독의 ‘장군의 수염’(1968) 등도 그럴 만하다.
신성일이 엄앵란이나 김지미, 문희 등처럼 데뷔 직후 바로 스타덤에 오른 것은 아니다. 출연작은 ‘로맨스 빠빠’ 포함 1960년 4편, ‘연산군: 장한사모편’(신상옥) ‘서울의 지붕밑’(이형표) ‘상록수’(신상옥) 등 61년 3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 없이 합격점을 받기 충분한 호연을 펼친다. 그 잠재적 가능성은 11세 연상인 톱스타 최은희와 호흡을 맞춘 ‘사랑의 역사’(이강천) ‘백사부인’(신상옥) 등 60년 작들에서 입증된다.
신성일을 스타로 각인시켜주는 계기는 흔히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로 전해진다. 그 후 여세를 몰아 63년 한 해에만 ‘청춘교실’ ‘혈맥’ 등 21편(총 제작 편수 148편)에서 주연을 맡는다.
70년까지 매년 출연 편수를 늘려나가, 64년 ‘배신’ 등 32편(137편), 65년 ‘흑맥’ 등 34편(161편), 66년 ‘초우’ 등 46편(172편), 그리고 67년에는 ‘안개’ ‘원점’ ‘까치소리’ ‘일월’ 등 51편(185편)으로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운다.
이후 68년 70㎜ 영화 ‘춘향전’을 비롯해 45편(195편), 69년 ‘시발점’ 등 44편(229편), 70년 ‘잃어버린 면사포’ 등 46편(231편)으로 40편선을 유지한다.
71년을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타서, 97년 임권택 감독의 ‘창’에 이르기까지 40년 가까이 93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한 편 이상 출연하는 기록을 세운다.
이와 같은 기록적 다작 속에서도 그와 같은 생명력 있는 행군을 지속적으로 펼쳤다는 것은 한국, 아니 세계 영화사에서도 그 예를 찾기 불가할 신성일만의 독보성이라 평하지 않을 길 없다.
영화평론가 김두호가 “톱스타 신성일의 생애는 우리 영화사의 신화이며 전설이다.
주인공이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영화 팬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배우 신성일’, 김종원 외, 커뮤니케이션북스)는 감회를 피력했던 것은 그만의 감상이거나 과장이라 진단할 수 없다.
문득 이런 의문이 밀려온다. 신성일처럼 외연이 넓은 다채로운 연기를 설득력 있게 펼쳐온 20세기 배우가 우리에게 있었던가.
그러니 어찌 그를 한국영화사 최고 남배우라 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무룡 등 다른 동료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신성일도 연기 이외의 활동을 적잖이 펼쳤다.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외에도 크고 작은 결실과 실패를 맛본 정치 활동, 불미스러운 외도 등이다. 굳이 그것들까지 상술할 필요는 없을 듯.
<전찬일 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