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태춘(오른쪽)과 그의 아내인 박은옥은 올해 함께 호흡을 맞춘 지 40주년이 됐다. 두 사람은 예술성과 사회성을 아우르는 명곡을 잇달아 내놓으며 가요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제공
정태춘·박은옥이 1993년 발표한 ‘92년 장마, 종로에서’ 음반 재킷.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제공
노래는 짧은 예술이다.
세계사적으로 예외인 판소리를 제외하면 기껏해야 4~5분이면 끝난다.
영화처럼 모든 상황과 인간의 성격을 다채롭게 보여줄 수 없고, 장편소설처럼 깊이 있는 세계 인식을 보여주기도 힘들다.
충격처럼 다가왔다가 환영처럼 사라지는 게 음악이다. 하지만 집단적 일체감을 고양시키는 데엔 노래만한 장르도 없다. 집단적 주술이 강렬할수록 그 최면이 사라지고 난 뒤의 공허함 또한 짙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 하나의 작은 노래가 한 시대의 내면을 입체적이고도 광활하게 포착할 때가 있다. 올해로 활동 40주년을 맞는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걸작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바로 그런, 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민중의 가객’ 정태춘의 등장
짧지만 찬란했던 1970년대 통기타 영웅들의 리스트는 긴급조치 시대의 어둠 속에서 정태춘이라는, 연예인이라기엔 다소 촌스러운 이름으로 마무리된다.
경기도 평택 출신인 정태춘의 음악적 사표는 김민기였다. 그는 김민기와 이정선의 중간쯤에서, 그리고 이장희와 김정호의 반대편에서 이들이 획득한 대중적인 명성의 교두보를 확보한다.
‘시인의 마을’과 ‘촛불’을 담은 78년의 성공적인 데뷔 앨범은 가물거리던 싱어송라이터의 등잔에 다시 불을 붙였을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시정을 우리 대중음악사에 추가했다.
‘시인의 마을’과 ‘여드레 팔십리’는 그 이후 이어지는 담시적인 발라드의 시발점이 됐다. ‘서해에서’는 ‘떠나가는 배’의 프롤로그이며, 대중성을 견인했던 ‘촛불’의 낭만적인 선율은 ‘사랑하는 이에게’ 시리즈로 다시 현현하게 된다.
평균적인 취향을 가진 대중은 ‘촛불’ 같은 애틋한 소야곡에 만족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시인의 마을’과 ‘서해에서’의 질박한 미의식을 존중했다.
전형적인 농촌 가정 출신인 그의 노래는 본능적으로 땅의 숨결을 포착하고 있었다. 그는 삶의 피상적인 반짝거림보다 그것을 살아내는 허덕거림과 한숨의 여백에 주목했다.
이런 미학을 획득한 대가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브라운관 위주의 스타시스템에 어울리지 않았던 그에게 돌아온 시장의 응답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앨범의 참담한 실패였다.
대도시 변두리에 자리 잡은 시골 출신 젊은 음악가 부부는 생계의 벼랑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국악기를 적극적으로 고용하며 새로운 음의 질서에 도전했던 그는 83년 아내인 박은옥과 공동으로 ‘떠나가는 배’를 성공시킴으로써 두 번째 용틀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통산 다섯 번째가 되는 85년의 성공적인 앨범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느낌표를 찍게 된다.
초기 앨범부터 유신 권력의 하수인이던 공연윤리위원회(공윤)는 정태춘을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검열의 가위손은 ‘시인의 마을’ 가사가 분명 어떤 시인의 글을 도용했을 것이라는 이상한 혐의를 두어 판정을 보류시켰다(이 노랫말이 정태춘의 것으로 판명되자 공윤은 관념적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수정 지시를 내린다). ‘사랑하고 싶소’의 투박한 표현에도 시비를 걸었다.
‘누가 내게 탈춤의 장단을 쳐 주리오’ 같은 대목에서 ‘탈춤’을 ‘생명’으로 수정하라는 지시는 그야말로 식민지 총독부의 검열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의 못마땅함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태춘의 노래는 ‘세련된 순응성’의 질서에 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윤의 검열관들이야말로 ‘민중의 가객’으로 우뚝 서게 될 정태춘의 미래를 이미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데뷔 앨범부터 시작된 공윤과의 불협화음, 그리고 그의 ‘연예인답지 않음’을 조롱한 브라운관의 편견은 정태춘으로 하여금 가슴속에 거역과 분노의 불꽃을 지피게 하는 현실적인 계기가 됐다.
그리고 셀 수도 없는 노래들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왜곡된 채 우리에게 배달됐다.
그는 성공적인 데뷔 이후 두 번째와 세 번째 앨범이 시장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앨범을 통해 정통적인 포크 아티스트로서의 존재를 선명하게 확립시켰다.
수평적으로 길게 끌며 행간의 울림을 극대화하는 5집의 머릿곡 ‘북한강에서’의 첫 여덟 마디를 주목하자.
앞의 마디를 물고 이어지는 음의 이 수평계열화는 그가 나중에 ‘민중의 시인’으로 우뚝 서게 될 때, 가령 ‘아, 대한민국’이나 ‘우리들 세상’ 같은 풍자와 분노의 텍스트에 이르러 가장 중요한 음악적 무기가 된다.
그는 통기타와 해금 사이에 가로놓인 음의 비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했다. 그것은 그의 노랫말처럼 ‘강물 속으로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 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는’ 그런 소리의 세계였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이 80년대에도 한국 대중음악사의 의미심장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를 굳힐 것임을 증명했다. 와신상담 끝에 일구어낸 83년 ‘떠나가는 배’와 85년 ‘북한강에서’의 성공은 그와 그의 동반자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그리고 방송 대신 ‘얘기 노래 마당’이라는 전국 순회 소극장 콘서트를 통해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연이 80년대 언더그라운드 돌풍의 진원지인 소극장 콘서트 문화를 선도했다는 점은 부부의 작은 공헌 중 하나일 것이다.
정태춘 통해 거머쥔 ‘표현의 자유’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가장 빛나는 고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꼭 그만큼의 아킬레스건이 존재한다. 그것은 프로페셔널 음악 진영(동아기획군단)과 아마추어 음악 진영(대학가와 노조의 노래패) 간의 의사소통 단절이다.
전자가 메이저 자본의 전횡에 대항해 예술가 정신, 곧 뮤지션십(musicianship) 확립의 기반을 닦았다면 후자는 정치권력에 대한 투쟁을 선포하면서 전투적인 뮤지컬 애티튜드(musical attitude)를 확립시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두 조류는 상대방의 장점을 받아들여 새로운 테제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다시 말해 전자는 후자의 행동하는 철학의 에너지를 품지 못했으며, 후자는 전자가 보유하고 있던 음악적 전문성의 경지를 획득하지 못했다.
각자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완강하게 자신의 성채만을 고집한 것은 양 진영 모두 막강한 대중적 포섭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여유가 이들이 90년대를 넘어서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외는 언제 어디서고 존재한다. 양쪽 진영 사이에 놓인 협곡에 구름다리를 놓으며 언더그라운드 신화의 막바지에 우뚝 선 거목이 다름 아닌 정태춘이었다.
그는 정치적 문제의식과 음악적 문제의식을 동시에 구현함으로써 그의 음악적 출발에 영향을 미쳤던 70년대 김민기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장르의 특성상 정체하기 쉬운 함정에 정태춘과 그의 아내는 빠지지 않았다.
언제나 현실주의적 상상력으로 세계와 자신을 능동적으로 인식했다. 그의 노래들은 바로 그 결실임을 90년의 ‘아, 대한민국’과 93년의 ‘92년 장마, 종로에서’ 두 불법 앨범이 일러주고 있다.
그는 상상력을 유린해 왔던 공윤의 검열을 거부하고 음반을 출시함으로써 곧바로 기소된다. 프로페셔널 음악가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고작 3년이지만, 이 두 장의 앨범 사이에는 극적으로 요동쳤던 세계사와 한국 현대사의 물결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전자는 명백히 87년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한 혁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강인한 투쟁의 세계관을 표명한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기만적인 3당 합당과 보수 진영의 총반격으로 한국의 민중운동은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처절하게 패퇴했다.
혁명의 열기는 한 여름밤의 꿈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따라서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전작에 비해 훨씬 내성적이다.
그것이 90년과 93년 사이의 정세 변화를 반영한 것이지만(그 우울한 그루브는 ‘사람들’에서 절실히 배어 나온다) 그렇다고 정치적 입장과 음악적 독창성으로 날카롭게 벼린 발톱을 모두 뽑아버린 건 아니었다.
이 앨범의 메시지는 직진적 성격이 강한 전작과는 달리 우회적이며 중의적이다. 텍스트의 강인함을 약간 양보하는 대신 부부의 초기 시대를 수놓은 서정성을 다시 불러내 단단한 결정(結晶)으로 응축시키고, 음악적 편성의 여백을 통해 반성적인 통찰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자신의 시대를 잃어버린 자들만의 무공담도 아니며, 자신의 시대를 배신한 자들의 비겁한 후일담도 아니었다.
이들 부부는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했던 종로 거리에서 자신들의 패배를 철저하고도 냉정하게 기술한다. 그리고 아직 남은 희망의 캡슐을 가슴속에 묻는다.
386세대의 전사 꽃다지와 안치환이 공윤의 검열을 묵묵히 받아들일 때도 이들은 불법의 자긍심을 지킨다. 그리고 2년 후, 헌법재판소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공윤을 영원히 역사에서 떠나보낸다. ‘표현의 자유’는 이들 부부에게 주어진 역사의 작은 훈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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