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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사 나운규가 감독·주연·원작·각색까지 도맡았던 무성영화 ‘아리랑’(1926)의 극 중 장면들. 그가 만든 영화의 밑바탕에는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이를 위한 실천이 깔려 있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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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리랑’의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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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리랑’의 제작 현장 모습. 민족주의적 주제를 다룬 영화는 30년 가까이 국민적 사랑을 받았으나 이후 필름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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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프로덕션을 설립한 이후 ‘잘 있거라’(1927)를 제작하던 때의 나운규.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올해는 한국영화가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단성사 사장이었던 박승필이 제작하고 신파 극단 신극좌의 김도산이 감독한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가 그 기점이다.

1919년 10월 27일, 우리나라 첫 다큐멘터리 ‘경성전시(京城全市)의 경(景)’과 더불어 단성사에서 개봉돼 기념비적 성공을 거뒀다는, 1권 1000피트 분량의 35㎜ 흑백 무성영화.

그 100주년을 기려 ‘한국영화 100년의 얼굴’을 25명쯤 뽑아보면 과연 어떤 배우들이 등장할까.

고심·상의 끝에 최종 선정한 이들은 다음과 같다.

 

연재 순으로 불러보면 나운규 김승호 신영균 최은희 문희 김진규 김지미 윤정희 최무룡 윤여정 신성일 강수연 안성기 최민식 장미희 이병헌 김혜수 김윤석 한석규 전도연 송강호 하정우 문소리 손예진 전지현이 그 주인공들이다.

 

지난해 10월 26일 ‘한국영화 99주년, 100년의 문턱에서’를 주제로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개최하고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주관한 한국영화 99주년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한국영화 100년, 시대의 변천과 남성 인물의 자화상’에서 나는, 춘사 나운규에 대해 사실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고 싶었다고 말했었다.

 

아는 게 별로 없을 뿐더러 대표작 중의 대표작 ‘아리랑’(1926)의 필름과 대본조차도 없는 마당에, 그저 남들이 써놓은 평가와 감상에 의존해 내 의견을 피력하고 싶진 않아서였다. 가장 그럴듯하게 다가서는 기록들을 옮기는 게 거의 다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끝내 그럴 수는 없었다. 100년 한국영화 역사에서 춘사와, 무엇보다 ‘아리랑’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의의가 워낙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나운규 그는 ‘한국영화의 어떤 자존심’이자 ‘한국영화사의 신화적 변곡점’ 아닌가! 오죽하면 흔히 ‘무성영화의 전성기’라고 평해지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를 가리켜 “존재하지 않는 필름들을 위한 영화사”(‘한국영화사: 開化期에서 開花期까지’, 김미현 책임 편집,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라고 일컫는 연구자까지 있겠는가.

이와 같은 양가성이 나운규를 떠올릴 때마다 으레 찾아오곤 하는 지배적 감정이다. 이 원고도 그렇고 그 세미나 이후 말하고 쓰고 있는, 한국 남자 배우·스타 관련 논의는 그 강의안의 연장선상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쯤은 굳이 강변할 필요 없을 터.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대체 어떤 근거로 춘사의 그런 절대적 존재성이 성립된 것일까. 마침 ‘국가보훈처 독립운동가’(이하 포털사이트 다음 참고·인용)의 ‘나운규 불꽃처럼 온몸을 태우고 스러진 서글픈 천재여’ 편에 눈길 끌기 충분한 진단이 실려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였기에 만드는 영화마다 검열의 가위에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그러한 상황에도 나운규는 영화를 통해 조선인 관객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그가 만든 영화의 밑바탕에는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이를 위한 실천이 깔려 있었다. ‘진정 그가 없었다면 우리들의 지난날이 얼마나 삭막했을지 모를 일이다.’ 1962년 나운규 탄생 60주년 기념을 맞아 오영진이 남긴 추도사의 한 구절이다.”

 

 

 

지독한 검열이야 1996년, 당시의 영화심의가 사실상 검열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과 함께 등급제로 전환되기 이전까지 이 나라의 모든 영화에 해당되는 굴레요 관행이었던 바,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러한 상황에도 나운규는 영화를 통해 조선인 관객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역시 매한가지. 춘사의 적잖은 동료와 선후배들도 그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지 않았을까.

 

출연이든 연출이든 그 둘 다든. 그러나 “그가 만든 영화의 밑바탕에는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이를 위한 실천이 깔려 있었다”는 것만은 나운규와 그의 영화들을 두드러지게 한 예외적 요인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열망·실천이 어찌 춘사 혼자만의 것이었겠는가 싶긴 해도, 나운규 그만이 그런 절대적·신화적 위용을 획득했으니,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을 길 없는 것.

결국 춘사의 독보성과, 그는 물론 당시의 대중 관객들의 독립을 향한 열망 등이 결합돼 요즘말로 시너지 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발생한 것일 터.

춘사 나운규가 시대를 초월했다기보다는 시대의 산물로서 천재였던 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천재들이 그렇듯이….

 

 

 

‘우리 영화 100년’(김종원·정중헌 지음, 현암사, 2005)도 진단하듯, 춘사가 주연에 원작·각본·감독까지 두루 맡은 ‘아리랑’이 선보였던 당시에 이미 영화는 대중들의 사랑을 폭넓게 받는 오락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영화는 1926년을 기해 전환의 기회를 맞이하는데, 그 결정적 기폭제가 “전래의 민요인 ‘아리랑’을 주제가로 내세워 새롭게 활용함으로써 민족 음악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아리랑’이었다.

한국영화사의 그 기념비적 영화는 “단순히 줄거리를 화면에 옮기는 역할로 만족했던 그때까지의 한국영화 수준으로 볼 때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또한 조선인 고유의 감정·사상·생활의 진솔한 일단을 정확히 파악했을 뿐 아니라 시대의 분위기를 짜임새 있게 묘사했다.

단순히 조선의 인물과 풍경에 접근하는 것 이상의 만족을 거두었다.”

 

 

 

각별한 주목을 요하는 것은 민족적 저항을 담은 그 내용도 그렇거니와 영화의 도입부를 장식한 개와 고양이의 비유부터, 침략자의 멸망을 암시하는 진시황의 죽음, 세계 무성영화의 걸작인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탐욕’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막 장면 몽타주 등, 그 당시 관객들로선 상상하기 불가능했을 영화 기법들을 구사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이다.

그 기법들은, 25세에 불과했어도 춘사가 “세계 영화 사조와 적극적으로 교감했을 뿐 아니라 그 이전의 영화들과는 달리 뚜렷한 방법론 위에서 창작했음을 보여준다.”(‘한국영화사’)

 

 

 

이렇듯 ‘아리랑’을 향한 세평이 호의적·긍정적이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호평의 강도가 더 세졌으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물론 아니다. 무엇보다 플롯의 개연성 등에서 크고 작은 흠들을 지적받았다.

그럼에도 ‘아리랑’이 “부인할 수 없는 걸작이라는 게 거의 일치된 견해였다”고, ‘우리 영화 100년’은 전한다. “당대인들에게 ‘아리랑’은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완벽한 걸작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리랑’ 이후 더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계에 뛰어들었으며, ‘영화를 본다는 것’이 한국인 전체의 관심사로 확대됨에 따라 많은 수의 무성영화들이 한꺼번에 만들어졌다.

한국 무성영화의 전성기가 1937년에 타계한 나운규의 생존 시기와 겹친다는 것이 흥미롭다.”(‘한국영화사’)

 

 

 

지금껏 ‘아리랑’을 중심으로, 다소 조심스럽게, 나운규에 대해 말했으나 그의 신화적 위대성이 그 신화적 문제작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공신력 면에서는 가장 신뢰할 만한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등을 빌려, ‘아리랑’ 전후의 이력을 소개해보자. 함경북도 회령 출신이다.

회령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 후 간도로 가, 용정 명동중학을 다니다 1921년 서울로 가 중동중학에 들어갔다. 연안의 비밀 독립단체인 도판부에 가입했던 과거가 발각돼 2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조선키네마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1925) 출연을 계기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윤백남프로덕션이 제작한 ‘심청전’(1925)에서 심봉사 역을 맡으며 비중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아리랑’ 이후 춘사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조선영화계는 그의 영향력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선키네마에서 ‘풍운아’(1926) ‘들쥐’(1927) ‘금붕어’(1927) 등을 찍었고, 독립해서 나운규프로덕션을 만든 후에는 ‘잘 있거라’(1927) ‘옥녀’(1928) ‘사랑을 찾아서’(1928) ‘사나이’(1928) ‘벙어리 삼룡’(1929)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1930년을 기점으로 슬럼프를 맞아 조연을 맡거나 지방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인기에 영합한 무절제한 사생활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방탕한 사생활에 일침을 놓은 대표적 인물이 소설 ‘상록수’와 시 ‘그날이 오면’ 등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영화인이었으며 열혈 독립운동가였던 심훈이다.

와중에 ‘철인도’(1930) ‘개화당이문’(1932) ‘강 건너 마을’(1935) 등 몇몇 영화들을 내놓았지만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는 못했다.

 

연기 면에서는 예외적 경우가 있었으니, 한국영화사의 또 다른 문제적 걸작 ‘임자 없는 나룻배’(감독 이규환·1932)다. 춘사가 삭발을 하는 등 혼신의 연기를 펼친 영화는 성공적이었다.

“‘아리랑’ 이후를 대표하는 무성영화” 등의 평도 얻었다. 춘사는 제작비 부족으로 중단됐던 ‘개화당이문’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더 이상의 상술은 동어반복이 될 터라 생략하련다. 폐결핵과 싸우면서 빚어냈다는 ‘오몽녀’(1937)가 유작이다. 그의 장례식은 많은 영화인들이 모인 가운데 단성사에서 치러졌단다.

 

 

 

이 정도면 춘사 나운규가 어떻게, 왜 ‘한국영화 100년의 얼굴’의 첫 주자로, 역사적인 이 땅의 스타 연기자로 자리 잡게 됐는지 충분히 이해되지 않을까. 한국영화 제작 100년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시대의 자화상으로 손색없는 거인으로서.

 

 

 

 

<전찬일 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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