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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패륜 몰리는 ‘치매가족’
최근 잇따라 살해·자살 발생
중앙시니어센터 관련 세미나
치매 때문에 가족까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미주 한인사회에서 치매와 관련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치매환자 가족의 고통과 비극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매환자 가족들이 치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전문가와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아야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0일 라스베이거스의 한 재활치료센터에서는 한인 노부부가 총상을 입고 숨졌다. 남편 존 김(79)씨가 치매를 앓고 있던 아내 도나 김(83)씨를 돌보다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달 27일에도 83세 남편이 85세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아내의 치매 때문에 힘들고, 아내를 양로병원에 보내기는 싫다”고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도 치매환자 가족들의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치매환자 수는 미국에서 540만 명, 한국도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치매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군은 노인 4명 가운데 1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치매 환자가 늘면서, 환자 가족들의 정신적·신체적·경제적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이혜성 중앙시니어센터 디렉터는 “치매환자 가족들이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몸까지 약해진다”며 “직장생활도 못하게 돼 가계 경제까지 기울어지는 사례가 워싱턴지역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권미경 홉스프링 가족상담소 박사는 치매는 가족병이라고 설명했다.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우울감과 감정 폭발, 환청, 망상이 가족들에게 고통을 준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치매환자를 매일 돌봐야하는 가족들은 혼동감과 상실감, 분노, 좌절감을 겪고 신체적인 고단함을 호소한다”며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지 못해, 환자를 돌보면서 폭언과 폭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치매환자 가족에 대한 지원 체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진명 한국치매가족협회 이사는 “가족들은 치매환자에게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치매환자를 아무리 잘 보살펴도 환자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 따른 좌절감도 호소한다”고 말했다.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는 “많은 가족들이 ‘그 어떤 고통보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일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한다”며 “치매증상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환자는 물론 가족도 함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치매환자는 절대로 개인이나 가족의 힘만으로 보살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조 박사는 “가족과 전문 시설, 정부가 결합된 시스템에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인 커뮤니티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정부 기관에도 한인 담당자 채용을 적극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